동일한 곳에서 칼빈은 또한 성례를 기둥기초',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푸시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로 비교한다.

칼빈은 성례가 성령의 도구인 믿음을 확증하는 것에 그의 관심을 돌린다. 그는 먼저 악인에 의해서 성례가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의해서 그 중요성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성례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단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효력을 발휘한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의 거룩한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그의 은혜에 보증을 주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말씀과 성례를 확실히 믿음으로 취하는 자들만 그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시고자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를 베푸시지만, 모두가 다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즉 성례를 통해서 제공된 것은 객관적이지만, 이는 단지 믿음을 통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칼빈에게 성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믿음을 확증하고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믿음을 확증시키고 증진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성례에 이런 특별한 사역을 부여한다. 그러나 성례 자체에 무슨 은밀한 힘이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것을 통해서 성례 그 자체가 믿음을 더하게 해 주거나 믿음을 확증시켜 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나는 성례가 주님에 의해 믿음을 확립하고 증진시키는 목적을 위해서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칼빈은 성례에 대한 어떤 종류의 마술적 이해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기 위해서 엄청난 힘을 쏟아 붓는다. 그는 성례의 요소들 자체에 본래적으로 어떤 힘도 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요소들이 지닌 힘은 성령의 사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주하시는 스승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오직 그의 능력으로 마음을 꿰뚫고 움직여 사모하게 하고 우리 영혼의 문을 열어서 성례를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실 때에 비로소 성례들이 그 역할을 정당하게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성례는 우리 마음에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마치 태양빛이 소경의 눈에 비치고, 귀머거리의 귀에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은 효과밖에는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성례를 이렇게 구분하고자 한다. 즉 성례의 능력은 오로지 성령께 달려 있고, 다만 그 사역만 성례에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성례의 사역은 헛되고 하찮은 것이 되지만, 성령께서 속에서 역사하셔서 그의 능력을 드러내실 때에는 성례가 크나큰 효과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이 이해한 바에 의하면 성례의 사역에 있어서 성령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신다. “말씀이 당신의 귀에 헛되이 울려 퍼지지 않게, 그리고 성례가 당신의 눈에 헛되이 비치지 않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부드럽게 하며, 우리 마음을 진정시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성령의 사역을 떠나서는 성례는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성령이 사역하실 때, 그는 외적인 말씀과 성례를 우리 귀에서 우리 영혼에 전달시켜 주신다.”

 

(번역: 이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