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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를 마치고 단체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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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오후 3시에 고신대 비전관 4401 세미나실에서 개혁주의학술원 주최로 제4회 칼빈학술세미나가 개최되어 1부 예배, 2부 강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1부 예배
이상규 교수(개혁주의학술원 원장)의 사회로 박원택 목사(포항충진교회)가 기도하고 김기해 목사(진해동부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상대위임령으로 유명한 마태복음 28장 19-20절 본문을 봉독한 후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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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김기해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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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야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신학교 교수와 지키도록 훈련하는 자리에 있는 목사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을 세 가지, 즉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과 양육하는 것, 그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인데 여기서 무엇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 학위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닌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제자 양성을 위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성령의 밝혀주시는 바 하늘의 지혜와 지식을 학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교 후 황봉린 목사(진해중부교회)의 축도로 1부 예배를 마쳤다.
2부 강의
이번 학술세미나의 주제는 “한국장로교회의 칼빈주의 수용에 있어서의 이중적 태도”였고 초청 강사는 계명대학교 기독교학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황재범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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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원장 이상규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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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주된 목적은 한국 초기 장로교회의 형성과정에서 주요 신학자들이 칼빈주의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는지 살펴보고자 함이다. 한국장로교회에서 칼빈주의가 상당히 강조될 뿐만 아니라 장로교단의 정체성과 관계된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에 대한 한국장로교회의 수용과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 강의는 그 의의가 깊다.
황교수에 따르면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칼빈주의 수용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대부분 구 프린스톤 학파 출신인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들의 내한과 더불어 시작된 1890년 네비우스 선교방법 즉 三自, 즉 자전(self-propagation), 자급(self-support), 자치(self-government)인데, 이 세 가지의 토대는 바로 “체계적인 성경공부”였으며 이를 통해 “성서문자주의”(Biblicism)가 정형화되었고 이것이 칼빈주의 신학의 틀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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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 황재범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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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장로교회는 1907년에 4개의 서구장로교회들로부터 독립한 노회인 “독노회”를 설립하면서 “12신조”를 채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서문자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관한 신앙고백인 12신조의 1조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구약 셩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니 밋고 행할 본분의 확실한법례인대 다만 이밧긔 업느니라.” 여기서 “확실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infallible”인데 이 단어는 1932년에 “정확무오한”으로 수정번역 된다. 따라서 이 신조는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칼빈주의 색채가 강한 성경문자주의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칼빈주의적 성경문자주의 사상은 평양신학교의 설립자인 마포삼열 선교사(Rev. Dr. 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와 조직신학 교수였던 이눌서 선교사(Rev. Dr. William D. Reynolds, 1867–1951)를 통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교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이눌서 선교사를 “한국장로교회에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토대를 놓은 신학자”로, 또한 “한국장로교회의 보수신학의 창시자들 중의 한 분”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문자주의는 초기 한국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인 박형용(1897-1978)과 박윤선(1905-1988)의 신학을 통해 한국장로교회에 더욱 뿌리 깊게 내렸다는 것이다. 황교수는 주장하기를 박형용과 박윤선은 성경의 축자적 및 완전 영감설, 성경무오설의 입장에서 구 프린스턴 신학을 역사적 칼빈주의와 동일시하여 내적으로 근본주의적 경향을 지닌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경문자주의 신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보수주의적 입장과는 반대로 그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진보주의적 신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진보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가 김재준(1901-1987)이며 그의 진보주의 사상의 계보를 잇는 신학자가 이종성(1922-2011)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193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박형용과 김재준을 중심으로 벌어진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심각한 신학적 갈등과 충돌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김재준과 이종성은 칼빈주의적 성경문자주의를 거부하고 대신에 바르트(Barth)의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황교수에 따르면 한국장로교회에서 칼빈주의가 수용된 것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보수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황교수는 이 양자 모두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데, 왜냐하면 성경문자주의 입장에 선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진보주의자들을 이단적인 자들로 정죄함으로써 더욱 편협해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며, 반면에 정죄를 당한 진보주의자들은 칼빈주의적인 것을 화석화된 죽은 정통주의로 간주하여 통째로 버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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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평을 하고 있는 황대우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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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마지막으로 황재범 교수의 강의에 대한 고신대 황대우 교수의 논평이 있었다. 논평에서 황대우 박사는 네비우스 선교사가 비록 구 프린스톤 학파 출신이지만 그의 선교정책을, 특히 그 가운데 다섯 번째 조항이 말하는 “체계적 성경공부”를 “성서문자주의”로 해석하고, 나아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칼빈주의적 신학의 틀”로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고 논리비약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영감”이라는 용어조차 언급하지 않은 12신조가, 1조에 나타난 “확신한”이란 단어 하나만을 근거로 “성서문자주의를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성서문자주의가 더욱 심화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학문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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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하게 경청하는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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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과 몇몇 목회자들과 교수들이 함께 참여한 칼빈학술세미나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부족으로 인해 학생들의 질의와 토론 시간을 갖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상당수의 외국 학생들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위해 고신대 이신열 교수가 통역을 맡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