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통 개혁주의의 대표적 신학자


故 이근삼 박사를 회고하며

고신대학교 전 총장이셨던 故 이근삼 박사는 한국의 역사적 정통 개혁주의의 대표적 신학자였다. 그는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카버넌트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그리고 네덜란드로 건너가 자유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박윤선 박사의 뒤를 이어 미국과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 양자를 모두 소화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1962년 모교인 고려신학교의 교수로 부름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한국교회에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32년 동안 고려신학대학, 고신대학, 그리고 고신대학교의 교수로서 칼빈의 신학과 개혁주의(칼빈주의) 사상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통하여 한국 개혁주의 신학과 사상의 초석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고신대학교의 학장과 총장으로서 학교교육을 통하여 개혁주의의 원리와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헌신을 다하였다.
이근삼 박사는 네덜란드 유학기간 동안에 미국 개혁파 교회들의 노력을 통하여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아브라함 까이퍼(A. Kuyper)의 언약사상과 왕국사상의 구체적 실현과 놀라운 열매들을 직접 확인하고 그 사상적 원리들을 체득할 수 있었다. 까이퍼는 언약사상을 개혁주의 신학의 본론으로 재도입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모든 관계를 언약 관계로 이해하였다. 이 언약 관계는 윤리적 관계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처한 사회와 역사적 정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확고하게 뿌리를 두고 오직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근삼 박사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인간의 문화적 사명을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문화적 사명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어진 언약 즉 창조 시에 주신 땅을 다스리고 주관하고 정복하라는 명령과 그것에 복종하는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언약구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언약구조에서 이탈한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적 사귐을 다시 회복하게 함으로서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속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새롭게 실현되도록 하는 문화적 변혁을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이근삼 박사는 한국의 대부분 기독교대학이 단순히 선교적 차원의 교육이념에만 머물고 있었을 때, 이 박사는 개혁신학의 언약사상과 주권사상에 근거한 개혁주의 문화관을 고신대학교가 지향하는 기독교대학의 신학적 기초로서 제시하시면서 언약의 후손들을 양육하는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언약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삶을 강조하신 바대로 교회개혁을 향한 열정과 헌신,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 선한 청지기로서의 검약한 생활과 희생적 헌신 등으로 제자들에게 많은 인격적 감화를 남겼다. 이근삼 박사는 은퇴하신 후에도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을 통한 세계복음화와 기독교 인재양성을 위해 기독교대학을 설립하시고 그 늙으신 몸이 다 소진되기 까지 남은 마지막 한 줌의 열정까지 다 쏟아 부어 이 땅의 거룩한 한 알의 밀알이 되셨다.
그 분의 평생의 가르침으로 정통 개혁주의 신학은 오늘 한국교회의 신앙으로 뿌리내리고 또한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교육으로 꽃피우게 되었다. 개혁주의자 이근삼 박사는 한국교회의 큰 스승이셨다.

한국 기독 신문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