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칼빈' 왜 신앙교육서를 썼나
세계칼빈신학회 주제 논문 논평 ① 존 헷셀링크의 '칼빈의 신앙교육서들에 나타난 교리'
2006년 09월 14일 (목) 00:00:00 기독신문 ekd@kidok.com

심오한 신학자 '필생의 과업' 관례 불구, <기독교강요> 변증의 정수 담아내 아이들과 무지한 성도 수준 맞춰 '경건의 기초교리' 가르치며 고백 유도  

 칼빈주의자들의 큰 잔치, 세계칼빈학회가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독일 엠던에서 열렸다. 제9차 세계칼빈학회에 참가해 21세기 칼빈 연구의 큰 흐름을 조망하고 돌아온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문병호(조직신학), 안인섭(역사신학) 두 교수에게서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들에 대한 소개와 논평을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듣는다.
<편집자 주>
  이 논문을 발표한 헷셀링크(John Hesselink) 박사는 저명한 칼빈 신학자이다. 미국 칼빈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미국개혁교회(RCA) 교단 산하 웨스턴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와 학장으로 오랫동안 봉직하고 은퇴하여 지금은 명망 있는 원로들로 구성된 미국 고등교육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박사는 많은 저술들을 남겼는데, 특히 '칼빈의 율법 개념'(Calvin’s Concept of the Law)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개혁됨에 관하여'(On Being Reformed)는 개혁교회 신앙의 고유성을 훌륭하게 부각시킨 작금의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칼빈의 제1차 라틴어 신앙교육서를 자신이 일생 동안 가르친 조직신학과 개혁신학의 강의안을 토대로 해설한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 주석'(Calvin’s First Catechism: A Commentary)을 10여 년 전에 탈고했다. 이번 세계칼빈학회에서 발제한 그의 논문은 바로 이 책의 논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칼빈(왼쪽 초상)과
그가 집필한 '신앙교육서'의 라틴어판 표지(오른쪽).   종교개혁자들과 후기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교육서(Catechism)를 남기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신앙교육서는 정확한 신학적 교리를 담아야 할 것이며,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하여 교육하기에 유익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고백적이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로 심오한 신학자들의 만년의 작품 목록에 오른다.
  그런데 칼빈은 제1차 신앙교육서를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한 다음해인 1537년 제네바 교회에 헌정한다. 불과 28살의 나이에 기독교교육의 헌장인 신앙교육서를 '신앙교육과 고백'(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이라는 제목으로 모국어로 탈고한 것이다. 이것은 또 이듬해 '신앙교육서 혹은 기독교 교육의 강요'(Catechismus, sive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라는 제하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국경을 넘어서 전체 교회가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곧 추방되었으므로, 그의 제1차 신앙교육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가 스트라스부르에 망명 갔다가 다시 제네바로 귀환하여 교회의 직분과 규율을 확립하기 위하여 '교회 규칙'을 제정한 후, 교리 교육을 위하여 '제네바 교회 신앙교육서'(Le Catéchisme de l’église de Genève)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제2차 신앙교육서는 그곳에서 뿐만 아니라 인근의 개혁 교회들과 성도들의 교리 교육과 삶에 크나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신앙교육서와 마찬가지로 일반 성도들과 아이들을 위하여 불어로 먼저 출판했으며(1542), 이어 다른 언어권의 교회를 위하여 라틴어로도 출판했다(1545).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중요한 교리를 33개 주제로 나누어, 초대 교회의 신앙의 규범(regula fidei)과 같이 문답식이 아니라 서술식으로 다룬다. 그러나 제2차 신앙 교육서는 연중 교육을 위해서 주마다 주제가 분류되는 373개 문답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Catechism)을 '요리문답'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전자의 경우 부적절하다.
  이번 세계칼빈학회 발표 논문에서 헷셀링크 박사는, 어떻게 1537/8 신앙교육서가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과 1539년 제2판의 교량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1539년의 기독교강요가 1542/5 신앙교육서에 반영되는지, 그리고 신앙교육서의 '교리'(doctrina)는 자녀들과 무지한 성도들의 수준에 맞추어 당대 다른 작품들을 단지 용도에 맞게 편집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 집중 고찰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리'는 단순히 가르침에 국한되지 아니한다. 그것은 설교와 선포를 포함한다. 교리의 기원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잇닿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닿는다. 교리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술로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뜻을 알게 하고, 뜻대로 살게 하고, 뜻 가운데 진보하게 한다. 교리 가운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지체가 자라감으로써 교회가 세워진다(aedificatio). 이러한 교리는 보편성을 갖는데, 이에 대한 합의(consensio)의 모델(specimen)로서 신앙교육서가 제시되었다. 칼빈은 이와 같은 취지로 신앙교육서를 본국어(vernacular)와 라틴어로 함께 썼다. 
  제1차 신앙교육서와 제2차 신앙교육서의 차이를 먼저 그 편별(ordo docendi, the order of teaching)에서 찾아본다면, 전자가 율법-믿음(사도신경 해석)의 구조를 취한 반면 후자는 믿음을 율법 전에 다룬 점이 현격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1539년 기독교강요 이후 칼빈이 강조한 성도들을 위한 율법의 규범적 용법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말해 주지는 않는다. 이미 그는 제1차 신앙교육서에서 한 장(17장)을 할애하여 "믿음을 통하여서 우리는 거룩해짐으로써 율법을 순종함에 이른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줄곧 율법의 본질을 삶의 규범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둘의 또 다른 차이점은 제2차 신앙교육서에는 예정론에 관한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편집에 있어서 가장 위치 변화가 심한 교리가 예정론이었다. 이 교리는 초판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섭리의 장에서 다루어져 왔지만 마지막 판에서는 성도의 은혜의 방편의 일부로서 기도론 뒤에 다루어진다. 다만 이중예정론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시종여일했다. 그 이유는 불명하지만 제2차 신앙교육서에 예정론에 관한 부분이 없다는 점이 단지 신앙교육서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현격한 차이로 지적되는 것은, 이전의 신앙교육서와는 달리 제2차 신앙교육서에는 개혁주의의 전적타락 교리에 해당하는 인간(4장), 자유의지(5장), 죄와 죽음(6장)에 관한 장이 없으며, 교회와 국가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간의 전통(31장), 출교(32장), 시민통치(33장)에 관한 주제들도 별도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편 제2차 신앙교육서에서 다루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에 관한 많은 부분들이 제1차 신앙교육서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기독교강요에서 초판 이후 줄곧 "칭의의 부록"이라 불리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던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교리’에 대한 언급이 신앙교육서들에는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와 같이 신앙교육서들의 차이점과 그것들과 기독교강요의 차이점을 일별한 후 헷셀링크는 신앙교육서들과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교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하여 고찰한다.
  먼저 성찬 교리를 통하여 교리의 강화(augmentation)를 다룬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에 있어서 1536년 기독교강요에서는 실체 그 자체(substantiam ipsam)가 아니라 은총에의 참여를 말했다. 그리고 제1차 신앙교육서에서는 성령의 띠(vinculum)로 말미암은 교통(communicatio)이 부각되었다. 이와 같은 강조점의 변화를 거쳐서 1539년 기독교강요에서는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한 참여(participes substantiae eius)가 명확히 공표되었다. 이러한 입장이 제2차 신앙교육서에 또한 명문화되었다.
  그리고 헷셀링크는 성령론을 통하여 교리가 어떻게 시기적으로 정교하게 발전했는지 고찰한다. 1536년 기독교강요에 제시된 교리가 제1차 신앙교육서에서 전개되는 바, 성령이 말씀의 조명, 내적 감화로서의 믿음,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와 더불어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다. 특히 칼빈은 그리스도 안에 한 고리로 묶여 있는 말씀과 성령의 역동적 관계에 수시로 문의한다. 이와 같이 이미 초기 작품에서 성령의 신학자로서 효시를 보였던 칼빈은 제2차 신앙교육서에서 성령의 내적 사역을 기독론적으로 더욱 발전시키는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서 하나님의 후사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거룩한 삶의 교리가 부각된다. 특히 제정된 말씀에 따른 세례를 거행함으로써(signify) 표징(sign)이 의미(significance)가 되는 성례의 신비를 성령론의 관점에서 더욱 심오하게 다루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서 헷셀링크 박사는 신앙교육서의 교리적 기원과 자체 교리성을 설명한다. 기독교강요가 교훈적, 변증적, 고백적이라면 신앙교육서는 그 정수의 선포라고 할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그 한 책의 사람"(man of the single book)이 아니었다. 기독교강요의 신학은 신앙교육서로 흘러들어 갔으며 또한 그곳으로부터 나왔다. 주석의 주해가 교리의 기초가 되었고 설교로 적용되었으며 신학 논문들 가운데 변증되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는 설교를 강조했다. 그는 성령의 신학자였으며 기독교인의 삶의 교리를 강조한 실천적인 목사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가르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앙의 교사였다. 시기적으로 전개된 그의 교리에는 놀라운 일치성과 연속성이 있었다. 반면, 한 신학자가 지식의 부요함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충분한 다양성도 있었다. 신앙교육서는 경건의 기초 교리를 가르친다. 그곳에는 아이들과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맞추심(accommodatio)이 있다. 신앙교육서는, '교리'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지혜를 새겨 주시는 장소이다. 교리는 선조의 가르침에 잇대며 말씀인 성경에 닿아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품속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서는 교리를 가르쳐 고백하게 하는 책이다. 이것이 신앙교육서의 진리성이며 시사성 혹은 역사성이다.
 
논평 = 문병호 교수 /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