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87주년 특집-개혁 교회의 큰 샘, 네덜란드 - ?개혁신학 세계화의 견인차 - 캄펜 신학대학교
성경 향한 불같은 ‘열정의 150년’ 칼빈주의 실천적 견인차…개혁신학 국제화 목표, 인재양성 진력
2004년 10월 25일 (월) 12:00:00 김은홍

종교개혁이후 17세기와 18세기를 지난 네덜란드 사회는,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1795년에 프랑스 군대가 네덜란드에 입성한 후, 1810년에는 프랑스에 완전히 합병되고 말았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사회적 불안정과 분열, 그리고 세속주의가 풍미하게 되었다. 1813년에 네덜란드 왕실이 옹립되면서 새로 형성된 왕실 개혁교회는 권위주의화 되어갔으며, 신학도 교회 현장과 상관없이 세속화 및 사변화 되어갔다.
그러자 헨드릭 더 콕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정신과 도르트신조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경건 운동과 더불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캄펜신학대학교 출현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일단의 개혁교회들이 1834년에 네덜란드 왕실 개혁교회와 결별하게 되는 ‘압스케이딩’(분열: Afscheiding)이 발생한다. 그것은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영성이었던 삶 속에서의 경건을 회복하고, 신학과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교회와 신학 개혁에 대한 열망이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 속에서 열매 맺은 것이었다. 이 ‘압스케이딩’의 교회 개혁 운동은 1854년 12월 6일에 캄펜에 신학교를 세움으로, 학문성과 실천성을 겸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캄펜신학대학교의 공식적인 출발이 되는 것이다. 이 교회 운동은 1869년에 총회를 열어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라 지칭했다.
한편, 1880년에 영역주권을 주창하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대학교’(de Vrije Universiteit)를 세운 아브라함 카이퍼를 따르는 일단의 교회들이 1886년에 네덜란드 국교회를 떠나게 되며 이를 ‘돌레앙찌’(슬픔: Doleantie)라고 한다. 압스케이딩의 교회 가운데 기독개혁교회에 잔류할 것을 고수하는 일단의 교회들을 제외한 대다수 교회들과 돌레앙찌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1892년에 네덜란드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를 형성하게 되며, 이때부터 캄펜신학대학교와 자유대학교는 형제 대학의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 네달란드개혁교회 안에서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1944년에서 1945년에 신학적, 정치적 이유로 분리해 나가 31조파 혹은 프레이허마크트(Vrijgemaakt)교회를 세웠으며, 같은 캄펜에 신학대학교를 수립하게 되었는데, 주로 한국의 고신 교단과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캄펜엔 현재 두 개의 신학대학교가 존재하고 있으며, 필자의 글은 주로 한국의 합동 교단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본래의 캄펜 신학대학교에 관한 것이다. 바로 이 캄펜신학대학교에서 개혁교회 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k)의 저자이자 위대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가 1883년부터 1902년까지 거의 20년을 교수로 역임했으며,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거봉인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 교수가 평생을 사역했다.
2004년 5월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개혁교회들이 170년 만에 공식적으로 연합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개혁교회의 교단은 캄펜 신학대학교가 속해있던 네달란드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와, 네덜란드의 왕실이 속해 있던 네덜란드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이다. 여기에 극소수의 소규모 네덜란드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합세해서, 네덜란드개혁교회(Protestant Churches in the Netherlands)가 새롭게 창립된 것이다. 캄펜신학대학교는 교회의 신학교라는 그 역사적 전통을 그대로 이어 여전히 이 네덜란드개혁교회(PCN)의 신학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캄펜신학대학교는, 네덜란드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멀리 보면, 이미 14세기부터 시작된 교회 내 교회개혁운동과 16세기 칼빈의 종교개혁과 17세기 칼빈주의 운동을 그 원점으로 삼으면서, 직접적으로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의 세속화, 사변화와 권위주위화에 맞선 교회 및 신학개혁과 사회개혁운동, 그리고 21세기의 교회 연합운동의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 수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네덜란드 개혁주의는, 칼빈주의 사상과 삶의 뿌리요 그 실천적 전파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통해서 스코틀랜드 등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헝가리, 루마니아의 트랜실베니아지역, 남아공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등에까지 이 개혁교회의 신학이 전해졌다. 물론 그 개혁신학이 한국 칼빈주의와 한국 개혁교회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캄펜신학대학교 150주년 학술회의 자료집의 서문이 잘 말해 주듯이, 이 대학교는 신학적 학문 세계와 교회 현장에 필요한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해온 사역에 매우 큰 긍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네덜란드는 물론 프랑스와 독일의 대학에서도 수준 높은 교수들을 영입하여, 개혁교회의 신학교로서 교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개혁신학과, 그 개혁신학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이번 개교 150주년 개념 학회를 위해서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전 세계의 모든 졸업생 개혁 신학자들을 항공료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하여 이번 학회에 초청한 일이다.
개혁신학의 국제화라는 것은 다시 표현하자면, 각 민족과 사회 공동체에 개혁신학과 복음의 정신에 입각한 신학자, 기독교 지도자를 세운다는 것인데, 이런 정신에 입각해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우리만큼 매우 준비된 장학 제도를 통해서 동유럽과 아시아와 남미와 아프리카의 우수한 신학도들을 초청해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기독교 운동을 이끌었던 알란 부삭(Alan A. Boesak)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캄펜신학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경우였다.
한국의 적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 대학에 유학하여,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한 후에, 한국의 칼빈주의적 신학대학과 장로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한국 개혁신학의 확립을 위해서 학문적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150주년 컨퍼런스를 기념해서 출간한 책인 ‘종교개혁의 열정’(Passion of Protestants)의 서문을 보면 이 대학에서 의미부여 하고 있는 명확한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종교개혁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 본 후에, 성경을 향한 불같은 열망(the fire of passion: for the Scriptures)을 언급하면서 이것을 기념 서적의 제목으로 정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처럼 종교개혁 사상의 가장 중심적인 모토중 하나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이다. 성경과 성경의 정신에 근거한 열정으로 부단히 개혁되는 교회가 되도록 신학하는 것, 즉 개혁신학의 고전적인 명제인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는 것이 이번 학회의 근간에 흐르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글=안인섭 교수
(총회신학원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