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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하는 김진영 목사

개혁주의학술원(원장 이신열 교수) 2회 신진학자포럼이 18일 서울중앙교회(담임 김진영 목사)에서 열렸다. 개혁주의학술원책임학술위원 황대우 박사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에서 김진영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학자들이 되어 달라고 설교했다. 학술원장 이신열 박사의 인도로 제2부 신진학자포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병수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폴라누스(Amandus Polanus)의 생애와 신학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김지훈 박사(대신총회신학교)언약론과 예정론: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 신학의 두 기둥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한병수 박사는 발표를 통해 종교개혁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한 박사는 종교개혁 당시의 순간적인 폭발력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이어 갈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질 때 오늘날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개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박사는 이런 점에서 16세기 개혁자들의 뒤를 이어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나타나는 종교개혁의 후계자들이라 할 수 있는 폴라누스와 고마루스와 같은 정통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강의를 이어갔다.

아만두스 폴라누스 폰 폴란스도르프(Amandus Polanus von Polansdorf, 1561-1610)는 스위스 바젤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로 당대에 신학적 골격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교의학 산출자로 독일에서 20세기 중반부터 조금씩 소개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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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럼 진행하는 이신열 원장

폴라누스 신학 정리

폴라누스 신학을 간단히 정리하면, 먼저 그는 오직 성경에서 이끌어낸 개혁주의 신앙의 기반을 견고히 다지므로 신학을 시작했고, 김나지움 및 대학에서 익힌 논리학을 종합하여 정밀한 교리적 논의를 전개하고 통일된 신학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을 확보했고, 개혁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신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논리적인 방법까지 가미하여 몇 권의 구약성경 주석서를 집필하여 신학의 주석학적 토대를 마련했고, 당시 가용한 모든 교부 문헌들을 독파하고 개혁주의 교회가 교리적인 면에서 어떻게 정통적인 사도시대 교회로 소급될 수 있는지를 밝혀 개혁주의 가르침의 범교회적 보편성을 입증했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개혁주의 신앙과 철학적 방법론과 성경의 주석학적 결과들과 교부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모두 종합한 17 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교의학의 기념비적 범례를 산출해 내었다.

폴라누스 주석 및 성경 해석학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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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하는 한병수 박사

첫째, 그는 종교개혁 선배들이 기초를 닦았던 성경의 자증성”(ἀυτόπιστος) 개념과 성경에 의한 성경해석(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고수하되 가용하고 유용한 모든 수단들을 적정과 절도에 맞게 활용한다.

둘째, 성경의 제 1 저자시며 성경의 지고한 해석자인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모든 해석들과 종교적 분쟁들을 조정하고 판단하는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라고 전제한다.

셋째, 성경의 애매하고 난해한 부분은 보다 명료하고 보다 잘 알려진 본문으로 해명한다.

넷째, 성경의 모든 올바른 해석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목적에서 원리로”(a fine ad principia) 소급하는 분석적인 방법”(methodus analytica)원리에서 목적으로”(a principiis ad finem) 전진하는 종합적인 방법”(methodus synthetica)으로 구분된다.

다섯째, 성경을 연구하며 참된 의미를 발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의 진정성에 대한 확신,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순수한 마음, 선한 양심, 확인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 믿음과 선행에 대한 교리적 지식, 성경 원어들에 대한 능통함, 성경이 성경 자체와 모순되지 않고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는 확신 등이다.

물론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것, 해당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피는 것, 근원적인 자료들을 탐구하는 것, 본문의 세부적인 구문들과 스타일을 연구하는 것, 본문과 유사한 구절뿐만 아니라 상이한 구절과도 대비하는 것, “믿음의 유비”(analogia fidei)를 따라 해석하는 것, 예언자는 다른 예언자에 의해서 제어를 당하기 때문에 다른 해석자의 견해들과 비교하는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

성경의 지속적인 읽기와 묵상,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과 신약의 헬라어 원문에 대한 연구, 성경 전체의 표적이요 주제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지속적인 조준, 율법과 복음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관찰, 바른 순서와 적법한 방법으로 성경의 올바른 의미를 해석하는 꾸준한 고집, 다양한 장르의 표현법에 대한 고려, 성경본문 간의 비교연구, 성경을 설명함에 있어서 새로운 신학용어 고안의 자제, 문법과 수사학과 변증학과 물리학과 같은 일반 학문들에 대한 지식 등의 필요성도 역설한다.

나아가 그는 한 랍비를 통해 6년간의 정통 히브리어 교육 및 유대문헌들을 접하면서 랍비 성경을 비롯하여 데이빗 킴히(David Kimhi)와 아브라함 벤 에즈라(Abraham ven Ezra)와 탈굼 조나단(Targum Jonathan)의 성경 의역서 및 랍비 주석들을 활발하게 이용하며 구약의 헬라어와 라틴어 역본들의 오류와 결함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문헌학적 연구에 있어서도 현저한 성과를 주석에서 선보인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정통신학자들은 연속선상에 있다.

이런 연구를 통해 한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 인물들의 신학과 폴라누스 신학으로 확인된 그의 후계자들 신학 사이에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나 철학적 수단의 적법한 활용이나 신학의 교리적 내용에 있어서는 어떠한 갈등이나 대립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성경은 충분하며 완전하여 모든 신앙과 삶의 절대적인 규범이며 성경의 저자요 해석자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며 어떠한 종교적 갈등과 분쟁에 대해서도 궁극적인 판단의 열쇠는 성경 안에서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며 철학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동일한 생각에 근거하여 논리와 수사학의 신중한 활용에 망설임이 없었으며 교리의 내용은 동일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단일하고 동일한 복음 때문에 교부들과 중세 학자들과 중교개혁 주창자들 및 그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들 사이에는 조화와 일치가 있었다는 이 모든 면에서 16세기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에는 일정한 연속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 박사에 의하면, 종교개혁시기가 말 탄 자와 싸워야 하는 긴박한 전쟁의 때이었다고 한다면,” 17세기는 핍박과 위협의 수위가 다소 수그러든 보행자와 경주하는 상대적인 평화의 시기였다고 한다. 한 박사는 시대의 바뀐 양상에 걸맞은 형식적 변화의 필요성에 따른 신학의 형식적 변화17세기에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진리의 항상성은 보존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 진리의 항상성과 동시에 신학의 형식적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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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럼 단체사진

두 번째로 김지훈 박사의 발제가 이어졌다. 김 박사는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칼빈주의적 예정론자요, 제네바 신학자 베자와 함께 타락 전 선택론(Supralapsarismus)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네덜란드 신학자 프란치스쿠스 고마루스에 대해서 발표했다.

고마루스의 생애

고마루스는 1563130일 브뤼께(Brügge)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인문주의자이면서 학교를 개혁하는데 역할을 했던 존 슈투엄(J.Sturm, 1507-1589)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80년에는 노이슈타트(Neustadt)로 옮겨 갔다. 거기에서는 그는 우르시누스(Z.Ursinus), 짱키우스(J.Zanchius), 토사누스(D.Tossanus)에게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유명한 신학자인 유니우스(F.Junius Sr.)와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처제와 결혼을 하였다. 1582년 영국으로 넘어가서 공부를 하였는데, 옥스퍼드 대학에서 휘테커(W.Whitaker) 밑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1584년 석사 학위를 마쳤다. 1585년 하이델베르그 대학으로 와서 공부를 계속 하였다. 1586년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있는 네델란드 이민자 교회에서 일하기 시작하였으나, 1594년 시의 명령으로 교회를 떠났으며, 동일한 해에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94년 고마루스는 레이든 대학의 신학 교수로 부름을 받았고, 159468일 레이든 대학에서 취임사를 하였다. 그 때 했던 강연의 주제는 언약론(de foedere Dei)이었다. 이로 인해서 레이든 대학은 절정을 맞기 시작하게 되는데, 세 명의 탁월한 신학자 유니우스, 루카스 트렐카티우스(Lucas Trelcatius Sr.) 그리고 고마루스로 인한 것이었다. 김 박사는 고마루스의 예정론과 언약론에 대한 신학을 자세히 살핀 후 다음과 같이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했다.

교회의 위로와 사명으로서의 예정론과 언약론

고마루스의 신학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인 예정론과 언약론은 또한 교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과 같다. 한 교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가 성도의 인식과 인과율을 넘어서는 무조건적인 것임을 가르쳐 준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기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또 다른 한 교리는 그렇게 은혜 받은 성도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수행해가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가르쳐 준다. 구약 이스라엘 민족과 신약 교회의 하나님은 침묵하신 채 자신의 일만 하시는 운명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며 칭찬하시고 야단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언약론은 이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 사이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두 모습을 모순 없이 그대로 제시하며, 이 두 모습이 한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이 두 가르침을 통하여 교회와 성도에게 있어야 할 두 가지 내용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위로와 사명이다. 교회가 가지는 위로는 세상의 인과율과 부패를 뛰어넘는 신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교회를 사랑하셨으며, 독생자를 주어 그 사랑을 증명하셨다. 그 독생자를 희생하신 사랑은 교회의 구원의 완성을 보증한다. 선택하신 그 분이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교회는 죄와 세상의 가치관의 역류 속에서도 이 사랑에 자신의 위로를 두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한다.

예정은 교회의 위로이며,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내용이다. 동시에 교회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명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분의 백성이 이 땅에서 성도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 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분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부심과 자각과 책임감을 져야 하며,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언약의 대상자에까지 높이셨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성경의 구속사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을 하나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인 존재로서 이끌어 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이 고취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겸손과 자부심, 은혜와 책임, 위로와 책망이 모순되지 않으며, 동시에 존재한다.

예정론과 언약론은 이 두 가지를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가르쳐 준다. 교회는 이 두 기둥을 두 다리로 삼아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장성하는 충만으로 나아간다. 이 두 교리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은 지금도 교회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