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아시아 칼빈학회에 다녀와서 / ‘21세기 아시아 교회’ 칼빈에게 묻다
한·중·일 칼빈학회 연합, 2년마다 개최…대만선교 140주년 기념 의미 갖기도 노무라 교수, 칼빈의 “영적이며 잘 조직된 교회”론서 일본교회 모델 찾아
2005년 03월 07일 (월) 12:00:00 김은홍

네덜란드 유학시절 칼빈과 어거스틴의 신학을 연구한다고 할 때 여러 가지 반응을 경험하곤 했다. 개혁신학의 뿌리를 잘 공부해 달라는 긍정적인 격려가 많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다음 세 가지 부정적인 태도를 접하기도 했던 것이다. 첫째로, 영적인 열정을 중시하는 분들의 반응은 칼빈과 어거스틴의 신학은 너무 가슴이 냉랭하고 차갑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둘째로, 현실적인 목회 감각에 비중을 두는 분들은 칼빈과 어거스틴은 지나치게 이론 중심적이어서 실제 목회 현장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묻곤 했다. 셋째로, 현대신학을 연구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옛 시대의 신학자인 어거스틴과 칼빈이 복잡한 고민들을 안고 있는 현대 교회에 해답을 제공해 줄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16세기 프랑스 사람인 칼빈과 4세기의 북아프리카 인물인 어거스틴, 이들에 대한 연구에 시간을 집중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 반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매우 흥미있는 점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칼빈과 어거스틴이야 말로,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살았던 열정주의자였으며, 그들의 신학은 사변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 시대 속 평생의 목회 현장에서 우러나온 실천적 산물이었고, 그들의 성경 중심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방향성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칼빈과 재세례파의 관계 연구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칼빈 연구가 발커(W. Balker) 박사는, 2003년에 출판된 ‘칼빈과 성경’(Calvijn en de Bijbel)이라는 책에서 왜 이 시대에 칼빈 연구가 필요한지를 서양 신학자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설명했다. 발커 교수에 의하면, 칼빈의 신학은 16세기 이후 유럽과 북미 대륙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국제적인 신앙이었으며, 서양인의 신앙과 영적인 삶, 그리고 서양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칼빈 연구는 오늘날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아시아의 칼빈 연구자로서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칼빈은 프랑스 사람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회를 섬겼던 16세기 신학자이지만, 오늘 21세기에 아시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도 가장 주목해야할 신학자라는 점이다.
그것은 실제로 16세기를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가 거의 평생 목회와 신학을 전개했던 제네바는 로마가톨릭의 종교적 박해와 사보이의 정치적 지배에서 막 풀려난 개신교 도시국가였다. 외부로부터는 제네바를 로마가톨릭으로 되돌리려는 음모가 중단 없이 시도되고 있었고, 제네바 내부에서는 칼빈의 철저한 통치에 대한 발발이 거셌다. 이런 역사적 현실 속에서, 칼빈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예전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교회를 세워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었다. 결국 칼빈이 걸어갔던 길은 생명력이 없는 가톨릭교회의 제도적인 교회 모델도 반대하면서, 동시에 재세례파들이 강조했던 극단적으로 비조직적이고 무질서한 교회론도 배격하고, 양자의 장점을 끌어 모으는 제3의 길, ‘비아 메디아’(via media)을 택했던 것이다.
결국 칼빈은 신생 도시인 제네바에 개혁교회를 세우고 그 신학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했으며, 그 과정과 그 이후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그의 신학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칼빈의 위대한 점과, 그의 가르침이 아시아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칼빈의 신학은 영적으로 복잡하고 어둡던 시기, 옛것을 새것으로 대체 해야만 했던 교회적 사회적 격변기에, 교회와 인간 사회를 건강하게 세워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살아있는 신학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칼빈 연구는 다른 신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세계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가는 추세이며, 아시아 칼빈 연구도 예외가 아니다.
한 예로 4년마다 세계를 돌아가면서 개최되는 칼빈 연구의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칼빈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n Calvin Research)의 2006년 제9회 엠던(Emden) 학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1월말 대만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칼빈학회(Asia Congress on Calvin Research)에 보여준 지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아시아칼빈학회는 한국, 중국, 일본의 칼빈학회가 연합하여 조직된 것으로, 2년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학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인도네시아도 함께하고 있다. 다음 제10회 학회는 2007년에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아시아칼빈학회를 사실상 이끌어 가고 있는 한국칼빈학회는 1년에 4차례 정기 학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칼빈연구’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제9회 아시아칼빈학회는 약 73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05년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대만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이번 학회는 대만 선교 140주년을 축하하는 성격도 겸하게 되어, 더욱 뜻 깊은 모임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학술적인 모임이었지만, 동시에 아시아 칼빈 연구자들의 따뜻한 교제가 돋보이는 모임이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발표된 논문들 중에서는 일본칼빈학회 회장으로서 토호쿠 가쿠인 대학의 교수로 있는 노무라(Shin Nomura) 목사의 글이 흥미를 끈다. 노무라 교수는 현재 네덜란드의 칼빈 학자들과 공동으로 16세기 프랑스어로 기록된 칼빈의 원전들을 강독하고 번역하여 미처 소개되지 못했던 칼빈의 신학적 풍성함을 조명하고 있는 경건하고 의욕적인 칼빈 학자이다.
그가 발표한 논문인 ‘잘 조직된 교회: 칼빈의 예배의 예전적이고 영적인 측면’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동기가 매우 선명하며 연구 방법이 학문적으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밝히듯이, 프랑스 사람으로서 제네바에서 활동했던 칼빈을 연구하는 그의 목적은 일본 기독교회를 성경적으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서 칼빈의 일차 자료들을 연대별로 분석하여 내었던 것이다.
노무라 교수의 논문은 구체적으로 예전학(Liturgy)에 대한 칼빈의 초기의 신학 사상에 초점이 놓여있는 연구이다. 그가 말하고 있듯이, 칼빈의 초기시대부터 개신교 예전이 서서히 발전하여 점차 잘 조직된 형태로 확립되었기 때문에 그 발전의 과정을 연구함으로, 일본과 같이 비교적 기독교 역사가 짧은 교회를 “성경적으로” “복음적으로” 그리고 “잘 조직된” 개신교회로 세우기 위한 신학적 통찰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한국 교회의 경우에도 전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잘 조직된 교회”(eglise bien ordonnee)이다. 이 용어는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규약’(1537년 1월 16일), ‘교회 의식’ (1541년 9월 13일), 그리고 ‘교회 기도와 교회 찬송의 형태’(1542) 등에 나타나고 있다. 노무라 교수는 칼빈이 말하는 “잘 조직된 교회”를, ‘설교-중심적’ 예배나, ‘회중의 권징’, 혹은 교회의 ‘4중 직책’ 등의 개념으로 단순하게 축소시키기 보다는, “성경적인 사상”에 의해서 “철저하게 관통되고” “적절하게 조직된” 조화롭게 연합된 교회의 몸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칼빈이 말하는 교회란, “조직된 공동체”이면서도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라는 균형 의식이 잘 나타나 있는 교회다. 이것은 비아 메디아(via media)로 요약될 수 있는 칼빈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로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인 교황제도 중심의 교회라는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좌로는 만인제사장과 영적 교회론을 극단화 시키면서 교회의 제도적인 측면을 과격하게 허무는 재세례파들의 주장도 배격하는 것이다. 오히려 양 극단의 교회 형태의 장점들을 적절하게 종합하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회론을 가지고 제네바 교회를 세워가려고 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이 성경에 근거한 “영적이면서도” “조직된” 균형 잡힌 교회론이, 로마가톨릭주의나 재세례파주의와 달리, 칼빈주의를 전 유럽과 미주에 역동성 있는 교회 운동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으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네바라는 작은 스위스 도시국가에서 칼빈이 구현하려고 했던 “잘 조직된 교회”의 목표는, 여전히 21세기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교회에 중요한 방향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16세기에나 21세기에나 동일하게 역동적이면서도 질서있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영적인 역동성과 생명력 있는” 공동체라는 특징과, “잘 조직된” 공동체라는 면모가 조화롭게 균형잡힌 교회라고 평가할 수 있고, 이런 한국 교회의 장점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야 말로, “영적”이면서도 “조직적”인 칼빈의 교회론이 잘 적용된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은 앞으로 한국 교회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대만) 등 아시아 교회가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데 있어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믿으며, 이런 공동의 목표는 아시아의 칼빈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더욱 진행하도록 촉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칼빈은 1509년에 태어나서 1564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평생의 사역을 통해 수립된 개혁 신학은 500년을 거쳐 유유히 역사 속에 흐르고 있다. 이 칼빈의 생명력있고 균형잡힌 교회론은 유럽과 미국 대륙을 뛰어넘어, 이제는 한국과 일본 열도와 중국 대륙, 그리고 대만과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시아의 젊은 교회들을 성경적으로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활발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존 칼빈이 21세기 아시아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글=안인섭 교수/총회신학원·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