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운동 참여는 개혁주의 포기”
[신학 쟁점 / ‘복음주의’ 어떻게 볼 것인가]
2007년 10월 22일 (월) 16:38:28 제론=김홍만 교수 (백석대학교·경평노회)

   
   
오늘날 각광받는 교회사 연구 주제의 하나는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적 규명이다. 좁은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운동에서 나왔다. 먼저 18세기 중엽 이후에 자유주의와 현대주의가 유행하자 그것에 대항하여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및 속죄적 죽음의 교리들을 거부하고 인간들은 선하기 때문에 이성적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진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과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자신들의 신학에 기꺼이 적용하였다. 따라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의 초자연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근본주의 운동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영향을 받음으로 분리주의 양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근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신복음주의가 시작되었다. 1942년에서 43년에 복음주의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가 조직되고, 헤롤드 옥켄가와 칼 헨리를 중심으로 복음주의 운동이 활기를 띄게 되었는데, 1970년 후반부터는 신복음주의를 편리상 오늘날 같이 복음주의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복음주의에 대해서 규정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는 영국의 신학자 데이비드 베빙톤(David Bebbington)의 정의이다. 베빙톤은 “회심, 성경, 평신도의 전도와 선교 및 봉사, 그리스도의 죽음”의 4개의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사가들은 이러한 복음주의 정의 아래에서 역사적 뿌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략 일치된 견해는 18세기의 부흥운동을 그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교회사가로서 휘튼 대학의 마크 놀(Mark Noll)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오늘날의 복음주의 운동의 뿌리를 18세기의 부흥 운동, 즉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놀 교수는 에드워즈와 웨슬리의 부흥 운동을 바벵톤이 정의한 복음주의 범주에서 같은 운동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신학적 태도와 접근이 복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함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에드워즈와 웨슬리의 신학적 차이를 무시하고 외형적인 것에서 공통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즈가 말한 회심과 웨슬리가 주장하는 회심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부흥을 추구한 방식도 다르다. 에드워즈는 철저한 교리를 가르치는 가운데 부흥을 기대했지만, 웨슬리는 감정적 체험과 성결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더욱이 에드워즈의 경우는 자신이 사역하는 동안에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오류를 철저하게 파헤쳤으며, 아르미니우스 주의가 교회에 침투하게 되면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고 세속화 된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웠다.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데도 놀 교수는 자신의 복음주의 시각에서 에드워즈와 웨슬리를 같은 운동으로 간주하면서 역사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복음주의 특징이며, 매우 위험한 함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의 결정적 특징은 신학에 대해서는 묻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특징은 개혁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만약에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이 복음주의 운동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 교수는 이러한 복음주의의 위험성을 “신학 실종”(No place for Truth) 이라는 말로 표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주의이다. 개혁주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변호하면서 교회에 들어온 오류와 이단에 대해서 퇴치(개혁) 하면서 형성된 신학체계이다. 그래서 정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 싸우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구체화 하였으며,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 가운데 있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사도들의 가르침 및 교부들의 가르침을 가지고 개혁을 하였다. 또한 16세기와 17세기의 청교도들은 로마 가톨릭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 도덕률 폐기론 주의들과 싸우면서 개혁주의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으며, 18세기에 에드워즈는 아르미니우스 주의 오류에 빠져 있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종교개혁의 교리를 가르치다가 부흥을 만났다. 19세기에는 환상적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개혁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원리를 가지고 참된 부흥을 견지하였다. 20세기에 자유주의자들이 크게 유행할 때 메첸은 개혁신학으로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천명하였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출발로 하여서 교회에 계속적으로 침투하는 오류와 싸우면서 신학적으로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이 이러한 개혁신학을 포기하면서 복음주의 운동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하면서 그 속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있다.

※김홍만 박사의 이 글에 반론이나 논평을 하실 분은 기독신문으로 연락바랍니다(김은홍 기자 amos@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