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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멀러|이은선|2003년 2월 17일|498page|23cm||15,000||| 
  멀러 교수는 16-17세기 칼빈과 칼빈주의 사이의 연속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지금까지 칼빈 연구가 칼 바르트(Karl Barth)의 우산 아래 있는 대부분 바르트주의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온 것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바르트를 비롯한 바르트 학파는 칼빈과 그 이후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 신학적 연속성 보다는 불연속성이 훨씬 강하다고 평가한 반면에 멀러와 그를 중심으로 한 멀러 학파는 그 둘 사이에 절대적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바르트주의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묘사된 칼빈 신학 전반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멀러의 책 제목은 “적응하지 못한 칼빈” 즉 아직 칼빈 신학이 제대로 알려지지 조차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이다. 강경한 안티바르티안(Anti-Barthian)의 입장에 있는 멀러 교수는 지나치게 연속성을 주장하는 허점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가 한국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칼빈과 칼빈주의: 리차드 멀러 교수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참고하라. 

   멀러 교수는 글을 어렵게 쓰는 편이다. 그의 문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멀러 교수의 글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만으로 이은선 교수의 수고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16-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대한 멀러 교수의 엄청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사상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멀러 교수는 16-17세기를 산 거의 모든 개혁파 신학자들의 신학 세계에 대해 그만의 고유한 식견을 가지고 그것들을 질서정연하게 나열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대단한 개혁주의 연구의 대가다. 그것의 산실이 바로 4권으로 완성된 그의 역작 [후기 개혁파 신학](Post-Reformed Dogmatics)이다. 

   멀러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스콜라주의(Scholasticism)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자신의 주장을 위한 강력한 무기로 삼는다. 그는 이것을 “죽은 정통주의”로 해석해 온 종래의 개념을 포기하고 그 단어가 가진 본래의 사전적 의미(schola)에 따라 “배움”과 “학업” 혹은 “학습법”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것을 근거로 스콜라주의는 중세의 것이든 17세기의 것이든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돕기 위한 방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멀러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종교개혁가들 특히 칼빈에게서도 발견된다. 그 증거로서 멀러 교수는 칼빈이 사용한 아리스토텔레스 방법론을 수집해서 제시할 뿐만 아니라, 16세기 당시에 유행한 인문주의적 학습법인 topus 혹은 loci 방법론으로 보이는 것들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를 위해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사용된 서술 방법과 칼빈이 존경한 멜랑흐톤이 자신의 [신학총론](Loci communes)에서 사용된 방법론을 대조함으로써 그 두 개혁가들의 방법론이 유사하다고 결론 내린다. 이런 방식으로 멀러 교수는 칼빈 역시 가르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를 따르는 칼빈주의자들의 스콜라주의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사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스콜라주의란 칼빈이 미완성한 교수법을 칼빈 이후의 개혁파 신학자들이 좀더 체계적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칼빈과 칼빈주의 사이에 있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좀더 폭넓고 깊은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흐르는 물처럼 단절을 모른다. 반면에 역사는 흐르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물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해 왔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절을 모르는 역사에서 연속성은 분명하지만 불연속성은 애매해진다. 반면에 변화하는 역사에서 불연속성은 확실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연속성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역사는 역사를 평가하는 자에게 그 자체로 찌르는 창과 막는 방패 즉 모순으로 점철된 혼돈 덩어리의 모습일 수 있다.| 멀러 교수는 현재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에 있는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석좌 교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