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

  이환봉 교수 (개혁주의학술원장)

 종교개혁 당시에 천주교의 사제주의(sacerdotalism)는 구원의 필수적 매개(necessitas media)인 성례를 집행하는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는 중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선행에 의한 구원 교리와 공적주의 교리, 이와 연관된 면죄부 교리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중보적 능력을 가진 많은 성자들을 만들어 내었고, 그 정점에 마리아를 두게 되었다. 마침내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실상 인류의 공동 대속자(co-redemptrix)와 공동 중보자(co-mediatrix)로 추앙하며 기도와 찬양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적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만이 직면하고 있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서 서정시인 이었던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가 모든 종교가 통합되는 성령의 시대가 도래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의 많은 르네상스 지성인들은 자연 속에도 하나님의 구원적 진리가 드러나 있고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지식에 근거한 자연신학과 자연종교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되 심지어 구원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로”의 원리를 통해 중세의 그러한 모든 인간성 신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하나님만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사도적 신앙을 옹호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성육하신 자기계시이며 구원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성경적으로 확정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완성과 총화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연신학을 반대하였으며,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보편구원론과 종교적 다원주의를 단호히 배격하였다.

  물론 개혁자들이 “오직 그리스도로”를 주장하였다고 해서, 기독론 일변도의 신학을 추구하여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무시하거나 만인 제사장의 원리를 통하여 교회의 직분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만 성경의 가르침(행4:11)을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 안에 이 확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오히려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소리가 높아만 간다.

중세 계몽운동(the Enlightenment)의 미덕이었던 ‘관용’과 더불어 상대주의(relativism)는 18세기 이래 현대 사회의 주요한 신념이 되어 왔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세계의 보편적 미덕이 되어 있다. 특히 오늘날 보다 철저한 상대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터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영향으로 기독교 안에서도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적 다원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천주교가 석가탄신을 축하하고 조계종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것이 종교적 관용과 미덕으로 극구 칭송을 받으며, 주요 일간신문은 “하나님이 절에 가고 부처님이 교회 갈 때” 비로소 평화공존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평하고 있다. 물론 종교 간의 평화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늘 한국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

 오늘 교회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희생을 노래하는 소리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비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는 사라져 가고 오히려 십자가 없는 번영과 영광, 자기긍정과 자력구원의 환상으로 가득하다. 스프롤(R. C. Sproul)이 “자신이 하나님의 검열을 통과하기에 충분히 선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리스도를 그 만큼 더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구하거나 노래할 마음을 점점 잃어 가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무슬림은 각기 그 이름이 다를 뿐 동일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를 표하는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3분의 2에 이른다고 한다. 버지니아 대학교(Virginia University)의 사회학자 헌터(J. Hunter)는 미국 복음주의 신학생의 35%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George Barna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보수 복음주의 개신교도들 중의 35%가 “하나님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죽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는가에 관계없이 구원하실 것이다”는 주장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한국갤럽의 한국 개신교인의 종교의식 조사에서도 불신자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아니다’는 답변이 1989년에는 38.9%였는데 2004년에는 31.3%로 15년 사이에 약 8%가 줄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그리스도 없이도 불신자 구원이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이 8%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인 중에서 “여러 종교 교리는 결국 비슷한 진리를 말한다”에 53%가 “그렇다”라고 답하였으며, 3.9%가 “모름 또는 무응답”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부정하는 보편구원론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4년도 조사에서 개신교가 타종교로 개종한 인구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오직 그리스도로”의 원리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만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 은혜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켜 우리의 칭의와 화해를 온전히 이룰 수 있음을 믿는다. 만약 교회의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이 선포되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믿음을 강권하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복음을 전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