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이 환 봉 개혁주의학술원장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는 교회개혁의 표어는 이미 “개혁되어진”(reformata)과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reformanda) 교회의 역설적인 두 가지 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개혁교회는 불변하는 성경 말씀을 따라 개혁되어졌기 때문에 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개혁교회는 성경 말씀을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에 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의 표준을 따라 모든 악한 타협을 거부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보다 더 보수적이어야 한다. 또한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의 진리 안에서 모든 악한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주의자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역설적 과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길 즉 보다 더 철저하게 성경적이 되는 길뿐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성경 말씀의 표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변해서 회개해야 하고 또한 너무 변하지 않아서 회개해야 한다.
1.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을 떠나 변하였기에 회개해야 한다.
상황론자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급변하는 세상의 현실과 상황에 따라 항상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생각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는 말의 의미는 새로운 상황에 따라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개혁자들이 요구한 개혁의 핵심은 항상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개혁의 표준은 상황이 아니라 성경이었으며 개혁의 태도는 창조가 아니라 회개였다. 즉 교회개혁이란 상황이 요청하는 새로운 것의 창조와 확립이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옛것의 갱신과 재확립이다.
루터가 95개 조항의 종교개혁 선언문을 회개의 요청과 더불어 시작하였던 것은 회개 즉 성경적 신앙의 회복이야말로 교회개혁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칼빈의 교회개혁도 시대의 요청에 교회가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의 문제 이전에 교회가 성경 말씀의 요구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상 오늘 한국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도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어 변화하지 못한 기능적 실패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가 성경에 충실하여 일치하지 못한 존재론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진보적으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너무 진보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웰즈(D. F. Wells)가 그의 책 “No Place for Truth"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늘 한국교회도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 성경의 교훈과 명령은 뒷전으로 하고 저급한 현대사상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세상의 학문에 성경의 진리를 위한 자리를 내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을 위한 시장경제 논리와 마케팅 전략이 교회성장을 위한 성경적 원리와 방법을 대신하는 것을 본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와 구속의 은혜가 심리학이 말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호갈등과 내적 상처로부터의 단순한 심리적 치유와 안정으로 대체되는 것을 본다. 오늘날 많은 이단과 은사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대신에 인간의 체험과 감정에 기초한 새로운 계시를 앞세워 혹세무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적 원리 대신에 수요자 개인의 요구와 필요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의 원리가 오늘날 교회의 예배, 설교, 전도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경으로”의 원리를 떠나 기독교를 다시 개혁자들이 반대했던 그런 철저한 인간중심적인 종교로 만들어 가는 교회 변질의 현대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정당하고 시대적인 요청이 제아무리 더높다할지라도 성경 말씀을 제쳐두고서 우리 자신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경제학적 생각과 필요를 따라 우리의 신앙을 재구성할 수 없다. 물질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의 가치와 방식을 따라 은밀히 기획되어진 오늘 교회안의 온갖 인위적인 조작은 결국 교회를 갱신하기 보다는 오히려 훼손해 갈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의 영을 따르는 세상의 지혜를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성경 말씀의 표준을 떠나 너무도 변하여 버린 것을 참으로 회개해야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하나님의 영을 따라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변하지 않기에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복음”(good news)으로서 새로운 소식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오래된 편견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시고 우리의 회개와 변화를 격려하기 위해주신 것이다. 참된 회개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선지자들은 거듭거듭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재고하도록 도전하였다.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신앙의 영웅들은 그 시대의 거짓된 요구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를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따라 회개와 변화를 앞서 주도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짓된 전통과 일상으로부터 떠나 생각과 삶에 있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단행하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로운 백성의 조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그의 역사적 뿌리로부터 잘라내시고 새로운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분명한 단절이었고 약속된 미래를 향한 새로운 헌신과 위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일상에 사로잡힌 삶에서 떠나 가나안의 약속의 땅을 향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애굽의 일상의 삶을 그리워하고 다시 포로생활로 되돌아가기를 요구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거역하였다. 구약의 전 역사에 나타난 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자신들의 일상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고 하셨다. 예수님도 이 구절을 인용하여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다(마 15:8-9, 막 7:6-7).
바리새인들은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이라는 사람의 계명 즉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진리로 내세워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전문가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많은 인간적인 전통을 만들고 따르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머물고 있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올바른 해석학적 또는 주석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메시야를 한갓 세상의 군왕으로만 오해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전통과 이해를 책망하여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4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날의 교회역사를 통해 때마다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잘못된 전통을 반성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되돌아올 것을 거듭 요구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요구가 바로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으로 교회를 청결케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였다. 마침내 교회의 신학과 예배와 설교, 그리고 교회생활의 모든 영역이 혁신적으로 새롭게 변할 수 있었다.
개혁자들은 사도들의 성경적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이었지만, 반면에 성경에서 떠난 인간적 전통들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는 매우 급진적이기도 하였다. 개혁자들의 이러한 교회개혁의 자세가 “오직 성경으로”라는 슬로건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오늘 우리도 개혁자들처럼 현대사상의 거짓된 요구에 직면하여 오직 성경을 따라 우리의 신앙을 파수해야하고 또한 전통사상의 편협적인 판단에 대해서도 오직 성경을 따라 날로 새롭게 개혁해 가야 한다. 오직 성경에 순종하기 위해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은 언제나 변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항상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거짓된 세상의 새로운 요구에 타협하지도 않고 동시에 변하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도 않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 있는 개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이 오직 성경으로의 삶 즉 철저한 성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교회개혁의 시대적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과 충족한 근거임을 새롭게 다짐하며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