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어 승리의 혁명, 종교개혁
작성자: 황대우
교회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종교개혁은 자국어 승리의 혁명이었다. 16세기 자국어 성경과 자국어 설교, 그리고 자국어 신앙교육, 이 세 가지가 중세교회의 거의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학자와 귀족과 성직자들만을 위한 라틴어 성경을 대신하여 모든 국민을 위한 자국어 성경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예배 개혁 역시 언어의 혁명이었다. 즉 미사 중심의 보는 예배 대신에 설교 중심의 듣는 예배로 바꾸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라틴어 설교가 사라지고 대신 자국어 설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중세에는 몇몇 극소수의 장소와 집단에서만 가르쳐진 신앙교육이 종교개혁을 통해 대중화되었는데, 이것 역시 종교개혁자들이 자국어로 작성한 수많은 신앙교육서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혹자는 종교개혁을 “언어사건”으로 정의하는데, 이유는 중세 신학자들이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Vulgata) 역본의 언어를 종교개혁적인 교회 용어들로 바꾸어 번역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천주교에서 “고해”로 번역한 것을 “회개”로, “사제”로 번역한 것을 “장로” 혹은 “목사”로 바꾸었고, “감독”도 “말씀의 종” 즉 “목회자”로 이해했다.
1516년 에라스무스가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문 편집본의 출간을 필두로 루터가 1522년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숨어 있으면서 에라스무스(Erasmus) 판을 참고하여 번역한 신약성경의 독일어번역, 1525년 출간된 틴데일(=틴들. Tyndale)의 신약성경의 영어번역판, 1535년에 출간된 올리베땅(Olivetan)의 신약성경의 불어번역판 등 자국어로 성경 전체가 번역되기 시작했다. 물론 중세에도 성경 가운데 일부가 자국어로 번역되었지만 신구약 성경 전체가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시대다.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라틴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국어 성경과 더불어 자국어 설교를 들려주었다. 자국어 설교는 자국어 성경과 함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나타냈다. 높은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라틴어를 배운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자국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자유민과 상인들은 물론, 수노 즉 집안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종은 대부분 자국어를 깨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어깨 너머로 라틴어를 깨친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일자무식인 사람들조차도 이전과 달리 직접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유는 자국어를 익힌 비슷한 신분의 동료가 낭독하는 성경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1962-1965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도 자국어 설교를 금기시했다. 자국어 설교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다. 13세기 설교를 강조하는 걸식수도원들이 설립되면서부터 걸식수도사들에 의해 자국어 설교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국어 설교가 미사를 대체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자들 덕분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자국어 설교는 자국어 번역 성경의 연쇄적인 출판과 더불어 교회역사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루터는 말하기를, “진리는 능변보다 강하다. 성령은 천재보다 강하며 믿음은 학식보다 위대하다.” “복음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말로써 선포되어 전세계에 들려져야 하고 모든 피조물 앞에 자유롭게 선포됨으로써 귀 있는 자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복음은 더 이상 공적으로 설교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적으로 설교되어야 한다.”
1453년경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종이의 혁명을 가져왔다. 종교개혁은 이 인쇄술이 가져온 문서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인쇄술의 발명은 값비싼 수기(手記) 성경에 비해 훨씬 값싼 성경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쇄술이 발명된 초기에는 면죄부 출판에 가장 많이 활용되었으나, 16세기 초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에는 면죄부를 반박하는 출판물을 생산하는 일에 크게 공헌했다. 16세기 초중반에는 유럽 곳곳에 우수죽순처럼 출판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 출판사들은 라틴어로 작성된 학문적인 책과 더불어 자국어로 작성된 문서들을 경쟁적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인쇄물들은 두꺼운 책보다는 비교적 짧은 문서들이 더 인기가 높았고, 짧은 문서들은 라틴어로 작성된 것보다는 오히려 자국어로 작성된 문서들이 훨씬 더 선호되었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대중성 때문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자국어 설교는 예배에 참석한 청중에게만 한 번 들리고 사라지는 단발성 연설로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설교들이 다른 지역의 개신교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소책자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많은 자국어 설교가 쏟아져 나왔고 이것은 종교개혁 신앙을 격려하고 고무시켰다. 루터는 설교의 이중적 특징으로 “가르치는 것”과 “격려하고 권고하는 것”을 제시했다. 이처럼 교육과 권면으로 구성된 자국어 설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결국 기독교 세계의 개혁이라는 역사적 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었다. 놀라운 종교개혁의 성과에 대해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설교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말씀이 그 모든 것을 해냈다.”
종교개혁자들이 작성한 자국어 신앙교육서들은 가정과 학교와 교회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자국어 설교는 예배 후에도 가족 사이에 들은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종교개혁자들의 자국어 신앙교육서들은 설교 내용을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신앙교육서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앙교육서에 대한 교육은 가정에서는 가장이, 학교에서는 교사가, 교회에서는 목사와 신학교 교수가 주도적으로 담당했다. 이러한 신앙교육은 어린아이들이 글자를 깨치는 문자 교육에도 사용되었다. 즉 종교개혁자들은 쉽고 짧은 어린이용 신앙교육서를 만들어 자국어를 가르치는 도구로 활용했던 것이다.
16세기 자국어 신앙교육서들은 “요리문답” 혹은 “교리문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린이용으로만 작성된 것이 아니라, 신앙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성인용 신앙교육서들도 작성되었고, 또한 어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통합용 신앙교육서들도 많았다. 중세에도 신앙교육서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극소수였고 그것조차도 라틴어를 학습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라틴어로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세 후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근대적 경건”(devotio moderna)의 영향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용 자국어 신앙교육서들이 매우 드물게 지엽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결코 보편적인 교회교육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서에 따른 교회교육, 그것도 자국어 신앙교육서에 기초한 교회교육의 보편화와 대중화는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이었다.
16세기 자국어 신앙교육서들은 자국어 성경과 더불어 유럽의 문맹률은 낮추는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16-17세기는 신앙고백서(Confessio)와 신앙교육서(Catechismus)가 한 쌍으로 작성되었던 최상의 시대, 즉 최고의 부흥기였다. 그 시대의 개신교회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동일하게 고백하는 신앙적 정체성을 위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동일한 신앙고백을 가진 모든 교회공동체가 일심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물려주기 위해 신앙고백서에 부합하는 신앙교육서를 작성하여 교인들을 교육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묘하게 침투한 기독교 이단들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리교육 즉 신앙교육서에 기초한 신앙교육의 부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의 유산 즉 신앙고백에 근거한 신앙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종교개혁자들이 제공한 자국어 설교와 자국어 신앙교육서 모두 내용적으로 자국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시작된 삼중의 자국어 운동 즉 자국어 성경, 자국어 설교, 자국어 신앙교육서는 종교개혁이라는 기관차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었다. 이 세 가지 핵심 동력, 즉 성경과 설교와 신앙교육은 종교개혁의 훌륭한 유산일 뿐만 아니라, 비록 옛날 방식이긴 하지만 오늘날 세속화되고 침체한 한국교회를 갱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이 글 역시 <생명나무>에 기고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