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교회의 머리인가?

*월간 고신 2013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신열 (고신대학교 신학과)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교황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근본적인 의미는 교황의 수위성 (primacy)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교황이 다른 모든 주교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위치를 지닌 자임을 뜻한다. 보니파스 3세 (Boniface III)의 칙령 Una sanctam (1302)에 의하면, 교황은 그리스도의 사제인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교회의 머리이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개신교도로서 특히 개혁주의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로마 가톨릭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떤 성경적 입장을 취해야 마땅한가?


 

 


역사적 발전과정

 

초대 교회에서 교황의 수위성에 대한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기본적 개념이 잠재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 50-117)와 키프리아누스 (Cyprianus, 200-258)는 교황의 수위성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자는 로마 교회가 ‘사랑의 의장 (president of love)’으로서 다른 교회들을 가르치지만 스스로는 가르침을 받지 아니한다고 주장했다. 로마교회가 다른 교회들보다 우월한 이유로서 바울과 베드로가 거기에 머무르면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후자는 베드로가 로마에 정착하고 활동함으로써 초대 교회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그 결과 로마교회가 다른 교회들이 누리지 못하는 우월적 지위를 지니게 되었다고 이해하였다. 그는 로마교회를 원초적 교회 (ecclesia principalis)라고 불렀는데 이는 보편 교회의 통일성이 로마교회에 기초한 것이며 모든 주교들의 권한은 로마교회와 교황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뜻한다. 이러한 교황의 수위성에 대한 암묵적이며 간접적인 증거들은 밀란의 암브로스 (Ambrose of Milan, 340-397)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Where Peter is, there is the church).

이렇게 초대교회에서 교황의 수위성에 대한 이해가 점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이를 수용하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었던 반면에 중세에 이르러 이 개념은 상당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공의회주의(conciliarism)는 감독제주의 (episcopalism)의 집약된 형태로서 교황의 수위성은 사제의 권한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그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시도이었다. 중세 후기에 해당하는 후기 스콜라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이 이론은 교황을 제외한 일반 주교들의 회합으로서 공의회가 교회에서 절대적 수위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면서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고 충돌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피터 올리비 (Peter John Olivi, 1248-1298)는 교황을 적그리스도 (anti-Christ)로 폄하했는데 이는 교황에 대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태도에 대한 전주곡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이후 로마 가톨릭교는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서 교황의 수위성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으며 이는 1869-70년에 개최되었던 제 1차 바티칸 회의에 의해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신학적 의미: 절대 권위와 무오성

 

그렇다면 교황의 수위성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제 1차 바티칸 회의는 ‘교황이 교회의 머리’라는 표현의 의미를 구체화하여 이를 교의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교황의 절대 권위와 무오성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교황은 교회에서 절대적이며 완전하고 보편적인 권위를 지닌다. 이 권위는 질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법적이며 목회적인 차원에 관한 것이다. 이는 교회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주로 보편적 사법권의 교의 (dogma of universal jurisdiction)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모든 교회에 대하여 절대적이며 완전한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교황의 수위성을 규정한다. 그렇다면 이 절대적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는 주교들의 회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수위성은 역사적 발전과정 또는 교회의 내적 필요성에 정초한 것이 아니다. 둘째, 교황은 자신의 권좌에서 (ex cathedra), 즉 그의 사제와 교사로서의 직분을 절대적 사도적 권위와 더불어 행사할 때, 신적 도움을 받아 베드로에게 약속되었던 무오성을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교리적 차원에서 교황의 권위와 수위성은 결코 변경될 수 없음을 뜻하는데 이를 흔히 교황이 지닌 교리적 무오성의 교리 (dogma of doctrinal infallibility of Pope)라고 부른다. 교황의 절대적 권위에는 어떤 제한도 가해질 수 없으며 이는 단순히 감독과 안내의 차원을 초월하여 전적으로 완전한 것이므로 이에 항거하여 일반 공의회에 소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제 교황의 절대 권위에 관한 교의와 그의 교리적 무오성에 관한 교의에 의해서 ‘교황이 교회의 머리이다’라는 명제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제1차 바티칸 회의가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관계인데 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교황은 교회의 가시적 (visible) 머리이며 그리스도는 가시적 머리인 교황에 의해 비가시적 (invisible) 머리로 표상된다. 여기에서 교회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서 비롯된다는 진리가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어디까지나 가시적 머리인 교황의 존재를 필요로 하며, 또한 이런 방식으로 교황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더욱 비가시적인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불분명함이 남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가르침과 개혁 교회의 입장 
  

 

그렇다면 성경은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교회에 대한 교황의 머리됨, 즉 수위성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밝히는가? 이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주 언급되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18:18과 마태복음 16:18-19이다. 로마 가톨릭은 첫 번째 구절에 언급된 매고 푸는 권세에 관한 메타포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권세의 다음의 세 가지 기능에 관한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축출하거나 수용할 권위, 둘째, 의무를 부과하거나 이에서 자유롭게 할 권위, 셋째, 어떤 것을 합법적이거나 금지되어야 할 것으로 선언할 권위. 그러나 이 구절에 언급된 ‘너희들’ 이라는 복수적 표현을 해석함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은 이러한 권세가 다른 제자들에게도 부여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이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베드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에 불과하다. 두 번째 구절에 나타난 베드로의 역할 또한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듯이 그의 수월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의 대변인 (spokesperson)으로서 이들 모두가 대답해야 할 답변을 그가 대신해서 행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또한 예수께서도 베드로를 포함한 그들 모두를 향해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16:15, 20).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18절에 언급된 ‘반석’이라는 단어를 ‘교회’로 간주하여 베드로의 수위성을 부인하려는 개신교적 시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구절들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는 교회에서 베드로의 위치는 무엇인가? '동일한 사도들 가운데 첫째' (first among equals)로서 베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를 다른 사도들 보다 더욱 높여서 존재론적 차원에서 수위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될만한 정당한 근거는 발견되지 아니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4.11.1에서 그리스도께서 천국 열쇠에 해당하는 권위를 실제적으로 사람이 아닌 그의 말씀에 부여하신 것이며 이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사역자로 만드신 것이라고 밝힌다. 주교나 교황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직분 (office)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이를 떠나서는 의미를 상실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나타나듯이 외면화되어 자동주의 (automatism)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말씀의 교회이다. 에베소서 2:20에 나타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라는 표현에서는 직분은 교회의 기초로 이해될 수 없다. 로마 가톨릭의 주장과는 달리 직분은 그 자체로는 교회의 표지가 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이차적 (secondary) 역할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또한 칼빈은 『기독교 강요』 4.2.3에서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직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독립적 기능과 역할을 행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를 떠나신다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 직분은 더 이상 원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며 마치 미신과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부패시키는 부정적 기능만 남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교황이 교회의 머리라는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은 교회를 타락시켰으며 결국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 (Beglic Confession of Faith)』 제 31조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보편적 주교이시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심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