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이 환 봉 교수 (개혁주의학술원장) 

   오늘날 교회론을 연구하는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 보다는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더 중요시한다. 인간영혼 구원을 위한 교회의 구속적 기능보다는 사회구조 개조를 위한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앞세운다. 이제 교회는 영적 차원에서 겸손히 내려와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대중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 교회가 교회되는 것에 실패한 이유도 세상을 위한 교회가 급변하는 세상에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개혁의 모토인 “semper reformanda”(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를 교회가 세상의 현실과 상황에 개방적 자세를 가지고 항상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생각한 “semper reformanda”의 의미는 새로운 것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의 요청과는 거리가 있다. 개혁자들이 요구한 개혁의 핵심은 항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개혁의 표준은 상황이 아니라 성경이며 개혁의 태도는 창조가 아니라 회개였다. 즉 종교개혁이란 새로운 것의 창조와 확립이 아니라 성경적인 옛것의 갱신과 재확립이다. 루터가 95개 조항의 선언문을 회개의 요청과 더불어 시작한 것은 회개 즉 성경적 신앙의 회복이야말로 교회갱신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교회가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에 회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너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도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지 못한 기능적 실패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지 못한 존재론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칼빈은 교회의 기초를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참된 교회의 표지는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의 성실한 시행에 있다고 보았다. 교회는 항상 신앙과 생활, 그리고 교리와 제도에 있어 오직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직분자의 자격도 성경적인 건전한 교리와 거룩한 생활에서 찾았다. 또한 교회의 연합을 위한 자신의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항상 말씀의 진리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의 진정한 영적 통일을 추구하였다. 즉 칼빈의 교회개혁은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것에 교회가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 교회개혁을 위해 부름을 받은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정당하고 시대적인 요청이 드높다할지라도 성경말씀을 제쳐두고서 우리 자신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경제학적 생각과 필요를 따라 교회를 재구성할 수 없다. 물질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의 가치와 방식을 따라 은밀히 기획되어진 오늘 교회안의 온갖 인위적인 조작은 결국 교회를 갱신하기 보다는 오히려 훼손할 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의 영을 따르는 세상의 지혜를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하나님의 영을 따라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reformanda"는 개혁의 대상이 교회이며 개혁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자신과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에,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자신의 교회를 개혁하신다. 교회는 그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다만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따를 뿐이다. 이처럼 교회개혁은 교회를 개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있기 때문에 교회가 항상 자동적으로 개혁되어지는 것도,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개혁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회개혁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주권적인 뜻과 일정(agenda)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도록 항상 교회의 개혁을 진지하게 희망하고, 성실하게 준비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철저히 순종하며, 소망 중에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개혁을 임의로 조작하려 해서도 안 되지만 교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위한 하나님의 긴박한 요구를 늦추거나 지연시켜서도 안 된다. 사실상 중세교회뿐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교회는 언제나 타락한 세상의 포로가 되기 쉽기 때문에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난날 모든 교회의 역사적 경험과 과제이었다. 오늘 한국교회도 참교회의 본질과 역할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기에 안팎으로부터 제2의 교회개혁을 요구받는 시대에 처해있다. 교회개혁은 회개를 요구한다. 회개는 현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선지자와 사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경고의 말씀은 오늘 한국교회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한국교회가 평양 대 부흥 100주년 정신을 계승하여 다시 한 번 놀라운 갱신과 부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정한 회개운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도들과 개혁자들의 신앙에 기초한 교회의 순수한 본질과 사역을 새롭게 회복하는 운동으로 시작해야 한다.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갱신과 부흥 즉 성경적 칼빈신학 자체의 회복과 부흥이야말로 오늘 한국교회의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고 밝고 건강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장로교회의 최대의 과제인 교회연합도 우리 모든 교회의 위대한 스승 칼빈의 신학 아래 하나 되는 신학운동을 통해 가능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