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위기는 무엇 때문인가? - 기독교보 시론 - 

                                                                                                                                                  이환봉 교수(개혁주의 학술원장)

  우리의 선진들은 60년 전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역사적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 개혁자 칼빈의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항상 고신의 정체성으로 자랑스럽게 천명해 왔다. 또한 우리를 한국 개혁주의의 선구자적 교회와 위대한 개혁자의 후예들로 자처해 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생각과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 우리에게 사실상 “개혁주의”는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고 “개혁자”는 힘없는 뒷방 영감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또한 개혁주의는 오히려 목회현장과 교회성장의 걸림돌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아무런 신학적 검토도 없이 온갖 시류를 따라 우선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쫓기에 급급하지 않는가? 마침내 우리는 자의적 고향 상실증과 신학 건망증에 걸려 자신이 어디에 속하였으며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심지어 기사연하는 무책임한 편견과 폄론으로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신학적 유산을 오히려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이 전혀 이유 없는 주장만은 아니라는 것에 우리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오늘 우리 속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기부정의 철저한 순종과 자기개혁의 순수한 열정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는가? 그리고 개혁주의 교회의 순수성과 통일성은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분파주의, 교권주의, 세속주의가 만연해 가지 않는가? 또한 우리의 신학이 오늘 교회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생동적인 힘과 올바른 방향을 때마다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그러면 오늘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위기는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역사적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원전연구를 통한 칼빈의 신학 자체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가 너무도 빈약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개혁주의 본래의 그 정체성과 개혁자들의 생명력을 계속 공급할 수 없었다. 둘째는 개혁주의 신학이 학교의 학문적 연구에 머물고 교회의 목회와 선교 그리고 사회의 생활과 문화에 대한 현실 적합성을 능동적으로 창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은 현대교회와 사회에 대한 주도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칼빈신학과 역사적 개혁주의 연구를 위해 제대로 구비된 전문도서관 하나 없었을 뿐 아니라 학교 6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 전문연구소와 최소한의 연구기반조차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열악한 연구여건 속에서는 앞으로도 교회를 위한 개혁신학의 새로운 부흥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개혁은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의 새로운 부흥에서 시작한다.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갱신과 부흥이야말로 오늘 한국교회의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고 밝고 건강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가장 바른 길이다. 지난날 하나님은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시기 위해 우리 학교와 교회를 세우셨다. 오늘 우리 교회와 학교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도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새로운 부흥에 있다. 「개혁주의 학술원」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새롭게 수행하기 위해 금번에 설립되었다. 개혁주의 전문도서 확충에서부터 시작하여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 학술원을 위한 교회의 기도와 적극적인 후원을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