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 고전어를 배워야 하는가?


서양에서 고전어하면 그리이스어, 즉 헬라어와 로마어, 즉 라틴어를 의미한다. 헬라제국과 라틴제국은 서양 역사의 근간이요 모든 서양 문화의 뿌리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두 제국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를 깊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문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동양인인 우리가 한문도 아닌 서양 고전어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가? 그것은 헬라어가 신약성경의 언어이며 라틴어가 예수님 이후 서양 역사 가운데 1800년 넘게 가장 중요한 기독교 문서를 기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의 뿌리와 역사에 관한 수많은 문서들 역시 원전이 라틴어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주요 개혁주의 관련 서적들 모두 영어 및 기타 현대어로 번역된 번역본의 재번역에 불과하다.


근자에 한국 기독교가 지나치게 서양에 의존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토착화를 부르짖는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토착화를 말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의 형성과 기원과 배경, 그리고 그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토착화가 가능하다. 남미에서 토착화 신학으로 해방신학이 나왔다. 그런데 남미는 이미 종교개혁 시대부터 서구 문명의 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서양 문명과 그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해방신학의 명성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토착화 신학인 민중 신학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민중 신학은 해방 신학을 흉내 낸 아류일 뿐 그 뿌리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단명한 것이다.


요즘 대학은 학문의 연마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시대정신에 맞는 취업 학원으로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왜냐하면 취업 성공률이 곧 입학생을 모셔오는 지름길이고 입학생을 정수로 채워야 학교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대학들은 저마다 취업률을 높이고 입학생을 모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외자 유치를 위해서도 앞 다투어 관심을 끌만한 다양한 이벤트 행사를 하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쇼를 방불케 한다. 이런 쇼를 통해 단기적 취업 학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먼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해마다 절대 학생 수가 줄어가는 이 시대에 끝까지 살아남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특성화 되고 전문화 된 학문의 전당으로 거듭나는 길뿐이다.


특성화란 남다른 독특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다. 자신을 다른 존재와 구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고신대학교의 특성화란 어떤 것일까? 기독교 대학이라는 점에서 “신앙”이 특성화의 대상일 것이고, 수많은 기독교 대학들 가운데 “개혁주의”가 특성화 대상일 것이고,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다수의 대학 가운데 잎만 개혁주의가 아닌, 뿌리와 나무 전체가 “개혁주의”인 학문이 고신대학교의 진정한 특성화 대상이 아닐까? 전문화란 다른 누구보다 그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다. 특성화와 전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 고신대학교가 특성화 되고 전문화 될 때 제대로 된 장기적인 취업 학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꽃도 좋고 열매도 많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려면 토양이 좋아야 한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좋은 밭”처럼.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대학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학문적인 전문화와 특성화를 이룩하려면 결국 “개혁주의”를 살리는 길 뿐이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대학들 대부분은 단지 그것을 구호로 사용할 뿐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그 의미조차 제대로 설명하는 곳이 거의 없다. 이것은 모두 개혁주의의 역사와 신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대로 우리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투자해야 한다. 고전어 학습은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로 전문화하고 특성화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고전어 학습을 통해 개혁주의의 뿌리와 역사를 독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를 우리 토양에 맞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개혁주의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학술원을 개원하고 개혁주의전문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작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학교 전체뿐만 아니라, 교단 전체가 이 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동참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야 할 것이다. 고신대학교 정체성 확립과 생사 여부는 어쩌면 바로 이것에 달린 것이 아닐까?


서양 학자들과 함께 학문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원문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서양 학자들도 1류와 2류로 구분되는데, 그 기준 역시 원문을 다룰 수 있는 능력 여부이다. 원문을 모르면 결국 다른 사람이 연구한 결과, 즉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얼마나 권위가 있겠는가? 이런 점을 고려하여 고신대학교 개혁주의전문도서관은 개혁주의 관련 원 자료 수집과 그 원 자료를 연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계획, 추진하고 있다. 지금 형편으로는 이 일이 신기루를 좇는 것처럼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이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이 꿈이 현실이 되는 날, 고신대학교는 창공을 높이 날아올라 멀리 바라보는 독수리처럼 비상하고 도약하여 높은 곳에 우뚝 선 기독교 학문의 전당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