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리회인 당회, 그리고 교회회의인 제직회와 공동의회

     당회는 장로교회의 세 가지 치리회, 즉 당회와 노회와 총회 가운데 개체교회의 유일한 치리회에 속한다. 반면에 제직회와 공동의회는 치리회가 아닌 교회회의에 속한다. 오늘날 수많은 개체교회 안에서 이러한 구분과 차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구분이 왜 필요하고 의미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교회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당회와 제직회와 공동의회이다.

     당회가 개체교회의 유일한 치리회라는 것은 당회 이외에는 교회의 어떤 기관과 회의도 치리권, 즉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특히 공동의회조차 치리회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제직회와 공동의회는 현안을 논의하고 결의하는 모임이지, 누군가를, 또는 어떤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하는 모임이 아니다. 당회는 시무목사와 시무장로로 구성되고, 제직회의 회원은 그 개체 교회 시무목사, 장로, 집사, 권사로 하고, 당회의 결의로 강도사, 전도사, 서리집사에게 회원권을 줄 수 있다.” 공동의회의 회원은 그 개체 교회 무흠 세례교인(입교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치리회로서 당회

     당회의 구성원은 시무목사와 시무장로. 시무목사란 담임목사와 부목사 등과 같이 교회의 공식적인 청빙절차를 따라 노회의 허락을 받아 시무하는 목사를 의미하고, 시무의 현장에서 떠난 은퇴목사와 원로목사 및 다른 기관에 소속된 기관목사나 시무처가 없는 무임목사 등은 시무목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무장로에는 휴무장로, 무임장로, 협동장로, 은퇴장로, 원로장로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은 이 가운데 원로장로만 당회에 언권을 가진 자로 참석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이것은 원칙 뿐만 아니라, 형평성에도 어긋난 규정이다. 원로장로에게만 당회의 언권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규정이다.

     헌법에는 당회의 회집을 매년 1회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도 너무 지나치게 느슨하다. 장로회의 당회는 아무리 줄여도 매달 1회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물론 매년 1회 이상의 규정에 매달 1회 이상회집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그 규정은 1년에 1번만 당회를 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장로회정신에 어긋난 것이다. 공동의회가 “11차 이상 정기적으로 회집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떻게 당회가 1번만 소집될 수 있겠는가? 역사상 장로교가 시작될 때 당회는 교회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 반드시 매주 소집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만큼 당회원의 헌신이 장로교에 결정적이라는 의미였다. 이런 희생과 헌신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장로교 당회원의 자격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도장만 찍으려고 하는 당회의 자세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당회는 치리회이기 때문에 교인의 도덕과 영적인 사건을 교회법에 따라 심의하고 판결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질서와 행정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오늘날 이런 일들의 최종 결정권이 마치 공동의회에 주어진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회의 직무로는,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 제반예배 주관; 각종 헌금의 실시와 재정 감독; 소속기관과 단체, 부설기관 감독 지도; 교회의 기본재산 관리등으로 되어 있다.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데 고작 1년에 3-4번 모이는 정도로 과연 그 모든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 두 사람에 의한 독재적 권력이 발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장로교에 속한 수많은 교회는 명칭만 장로교이고, 실상은 결국 1-2명의 독재적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감독체제와 유사한 모습이 아닐까?

이런 독재적 권력의 폐해 때문에 교회는 당회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당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 사안들에 대한 최고 결정권을 당회보다는 오히려 제직회가 갖는 교회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은 공동의회의 권한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사회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공동의회는 개체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회적 현안을 의논하고 결정할 수 있는 모임인 것은 사실이다.

공동의회

     공동의회의 의결 사항으로는 당회가 제시한 사항; 개체교회 예산과 결산 사항; 개체 교회 기본재산의 취득과 처분에 관한 사항; 직원의 선거 사항등이다. 마지막에 상회가 지시한 사항이라는 것이 첨가되어 있는데, 아마도 여기서 상회라 함은 노회와 총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동의회의 상회는 없다. 노회와 총회는 헌법상 당회의 상회다. 그리고 당회가 제시한 사항이라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굳이 상회가 지시한 사항이라는 문구는 불필요하다. 당회는 노회나 총회의 지시사항을 반드시 다루어야 하고, 만일 공동의회를 거쳐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공동의회에 제시하면 된다.

     공동의회의 회원 자격은 해당 교회의 무흠 세례교인(입교인)”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공동의회에 세례 받거나 입교한 청소년들을 참석시키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되는 것이 좋을지 알리고 동참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교회에 대해 함께 고민하도록 책임감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교회를 쉽게 떠나는 젊은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붙들 수 있지 않을까?

제직회

     제직회는 제직회장이 필요로 할 경우, 그리고 제직회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을 때 당회장이 제직회의 당연직 회장이므로 당회장이 소집할 수 있다. 제직회의 의결 사항은 공동의회에서 의결한 예산집행 사항; 예산 추가경정 사항; 보통재산과 특별헌금 관리사항; 기타 중요사항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애매한 것은 기타 중요사항이다. 이런 조항에 의해 제직회의 권한은 강화되겠지만, 당회와 공동의회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제직회가 교회의 제정에 관한 회의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월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조항들도 구체적이지 않아 의결권의 한계가 애매하다.

     제직회의 본래 취지를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된 제직회 회원의 구성이다. 제직회의 본래 취지와 의결권이 무주공산이다 보니 회원권도 무주공산이다. 안타깝게도 제직회가 돈을 관리하는 집단이라 그런지 무슨 권력의 자리인양 착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고 심각하다. 교회의 재정 관리를 위해서는 가능한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잡음과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액셀프로그램을 도입한다든가, 이것을 재정부원 전체가 공유하게 한다든가, 반드시 당회의 최종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과 같은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꼼꼼한 관리감독이 아닌, 그냥 도장만 찍어주는 구조라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꼼꼼한 관리감독이 일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최대의 방해물이 된다면 이것 역시 문제일 것이다.

     원론적으로 제직회장은 목사나 장로가 아닌, 집사 중 한 명이 맡아야 하고, 소집을 당회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는 형식이 본래 제직회의 취지에 합당하다. 그리고 제직회는 교회재정을 잘 관리하고 공동의회에서 결의된 예산안을 함당하게 집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여야 한다. 추경 등 예산에 포함되지 않거나 특별한 재정지출 문제는 반드시 당회와 의논하던지 당회에 보고하여 허락을 득한 후에 추진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회는 공동의회를 소집할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헌법상으로는 의결 사항과 의결 권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자연스러운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교회가 지나치게 대규모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체 교인들 사이에 지체로서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와 같은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이 어려울 것이다.

올바른 교회법 제정

     이 외에도 지금 고신교회의 헌법은 사실 여러 가지 모순과 허점을 안고 있다. 교회법은 제정의 역사가 유구하다. 그러므로 교회법의 역사를 알아야 법정신에 입각한 교회법을 바르게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 또한 교회법의 제정과 개정의 의도가 순수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법이 공명정대하게 바로 설 수 있다. 교회의 당회와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각기 고유한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때 교회는 불편부당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회원들이 사심이 아닌 공심을 발휘할 때,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지상교회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건실하게 세워져 갈 것이다.



* 이 글은 "개혁정론"의 기획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