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라는 이름의 보편적 가치
1974년 3월 말 부산을 방문했던『25시』의 작가 게오르규(Constant Virgil Gheorghiu, 1916-1992)의 강연은 늘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당시 대학 4학년이었던 나는 루마니아태생의 망명 작가를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강연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날의 인상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부산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당시『문학사상』발행인이었던 이어령교수의 소개로 단상에 오른 그의 첫 마디는 “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믿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삶의 여정이 어떠했기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이 호기심 때문에 책 제목 정도만 알고 있던『25시』를 다시 읽게 되었고, 루마니아의 아픈 역사를 헤아리게 되었다. 오백년에 달하는 오토만제국의 지배, 정치적 압제와 힘 있는 자의 경제적 착취, 가난과 고난의 여정. 루마니아의 아픈 역사와 함께 자신이 겪은 망명의 여정 속에서 게오르규는 인간상실의 비정한 역사를 보았을 것이다. 그 어두운 역사의 질곡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의 소중함을 몸으로 익혔고, 그런 인식이 그의 문학작품 속에 자연스레 묻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자의 죄과는 전 세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고, 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자의 공로는 전 세계를 구하는 자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의 소설『제2의 찬스』에서 한 말이다. 이날 강연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서냉전과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했던 전쟁의 참화, 특히 자신의 경험담은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승무원이었다고 한다. 구식 잠수함에서는 산소 양을 측정하기 위해 토끼를 태우는데, 토끼는 산소와 수압 같은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토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인가를 측정하는 도구였다고 한다. 토끼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면 산소 양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토기는 잠수함 맨 밑에 갇혀 있게 된다. 그런데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에서 토기는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키더니 곧 죽고 말았다. 이제 누군가가 토끼의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다. 게오르규는 인간 토끼로 지목되었고 잠수함 맨 밑바닥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야만 했던 자신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게오르규는 사회를 감시하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의 토끼’에 빗댔다고 하는데, 그가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인권이었다.
오늘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오늘 우리처럼 ‘민족’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국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는 인권이다. 인간생명은 우리 민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동일하게 소중한 것이다. 아우수비츠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고,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엘리 비이젤(E. Wiesel)은 나치 하에서의 고난과 고통의 여정을 그린『밤』(Night)에서 이렇게 썼다. “학살자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학살자를 돕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이 위협받을 때 우리의 의무에는 국경이나 경계가 없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언제나 우리를 고뇌하게 만든다.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