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역사


  2004년 11월 9일, 미국 켈리포니아주 남쪽 17번 고속도로변의 자동차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미모의 여성이 발견되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운전자의 신고로 경찰이 조사에 나섰고, 그 여성은 아리스장(Iris Shun-Ru Chang)이라는 기자출신의 작가였다. 미국 국적의 중국인 2세인 그녀의 중국이름은 장춘루(張純如), 당시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1937년의 남경대학살사건을 추적한 『남경의 강간(The Rape of Namking), 그 잊혀진 대학살』(1997)을 쓴 저자였다. 그녀는 왜 죽었을까? 그녀의 사인은 자살이었지만 사실은 타살에 가까웠다. 그녀는 이 책을 출판한 후 일본 우익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과 협박을 받아야 했고, 계속해서 전화번호를 바꾸고 거주지를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친척들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들과의 교통도 단절해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줄곧 공포와 협박 속에서 살았고, 그 결과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급기야는 자실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수도 남경에서 자행된 일본군인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댓가로 그녀는 죽음의 길로 내몰렸고, 사면초과의 현실에서 결국 피안의 세계에서 안식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책은 출간되던 한해만도 60만부가 팔렸으니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증언을 통해 일본군인의 잔악행위와 그 참상을 폭로했으나, 일본의 우익들은 이를 왜곡과 날조로 가득찬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하고 온갖 험한 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경대학살이 얼마나 잔악했는가를 안다면 작가에 대한 협박 또한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37년 12월 13일, 이 도시가 함락되자 7주간 계속된 대학살에서 26만내지 35만의 남경시민이 처참하게 학살되었는데, 살해된 이를 눕혀 손을 잡게 한다면 남경에서 항주까지 322킬로미터나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흘린 피는 1천2백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살해 방법 또한 잔인했다. 기관총세례는 숭고한 죽임에 속했다. 산채로 기둥에 묶어 총검훈련 대상이 되기도 했고, 휘발유를 덮어쓴 채 산채로 불태워지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목베기 시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산 사람을 총검을 난자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여성들은 강간을 당했고, 가슴을 도려내거나 산채로 벽에 못을 박아 탈수상태로 죽게 하기도 했다. 벌거벗기 여성의 나체에 자행한 혐오스러운 일들은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본 나치 독일인도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반역의 역사는 그 동안 고의적으로 은폐되었고, 숨겨져 왔다. 남경의 강간은 일본역사 교과서에서 누락되었다. 이런 일본의 역사은폐의 분위기가 연구자들의 목을 조였고, 만행에 가담했던 군인들이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런 현실에서 만행의 숨겨진 역사를 발굴해 내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참혹한 악행을 들추어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했고, 용기를 넘어서 죽음을 댓가로 지불한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역사는 숨겨질 수 없고,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어떤 명분으로 덧입힌다 해도 전쟁은 명백한 악이며, 절대 악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