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천

                                                                                                                                                                                       이상규


네델란드가 스페인의 알바공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였다. 덕 윌렘스(Dirk Willems)는 당시의 주류 교회와 다른 재세례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1569년 체포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따르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던 그는 주변의 호위을 받으며 부당한 체포를 피해 간신히 도망할 수 있었다. 비교적 체격이 왜소했던 그는 얼음이 언 연못을 가로질러 도망가고 있었다. 거리는 어두웠고 도망자에게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 때 간수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 달려왔고, 그도 얼음이 언 강 위로 추적해 왔다. 그러나 체격이 컸던 간수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물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다급해진 그는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자에게는 호기였다. 안전하게 먼 곳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박한 호소를 들은 윌렘스는 도망을 포기하고 그가 건넜던 강으로 뒤돌아 갔다. 그리고는 긴 장대를 내려 익사 직전에 있던 간수를 구출해 주었다. 강뚝으로 나온 위렘스는 모닥불을 피어 그의 언 몸을 녹여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윌렘스는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핍박하는 자도 사랑해야 한다고 보았기에 자신의 안전은 우선수위가 아니었다. 사랑을 실천한 대가는 체포였다. 그는 희생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자신을 체포하라고 했다. 사랑을 실천한 대가로 그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에게 착고가 채워졌고, 더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 때의 감옥의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얼마 후 그는 손발이 묶인채로 아스페렌(Asperen)으로 끌려갔고, 그는 그가 살려준 간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형대 위에 섰다. 지금부터 꼭 438년 전인 1569년 겨울의 일이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때의 상황을 그린 역사화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사랑은 기독교가 가르쳐 온 가장 고상한 가치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입술의 봉사가 아니라 행동화하는 실천이다. 사랑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고등종교가 가르치는 보편적인 가치일 것이다. 우리사회가 목말라하는 것은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전(經典)의 전통이 아니라 내가 선 그곳에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희브리말의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라는 말은 흔히 전쟁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히브리인들이 이해하는 샬롬은 사랑이 묻어 있는 현실이었다. 먼 곳까지 보지 못해도 좋다. 우선 내 주변에는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