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결혼예식

 

1. 기독교 결혼의 의미

결혼식은 인생의 중대사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흔히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한다. 물론 요즘은 이혼율이 높아 결혼도 옛날만큼 사회적으로 대단한 일은 아닌 듯하다. 또한 점차 가족보다는 욜로족’(YOLO = You only live once.)을 선호하는 결혼 기피 현상도 한 몫 하는 듯하다. 하지만 기독교는 교회와 사회의 근간을 가정으로 보기 때문에 교회에서 결혼은 여전히 중요한 전통이다. 이것만 봐도 교회는 세상풍조와 함께 휩쓸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출발점이 결혼이다. 남자와 여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남자를 화성 출신으로, 여자를 금성 출신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는 하나라고 가르친다. 하나의 인간이 두 성으로 분화되었는데, 성경은 여자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순서에서 보면 여자는 남자보다 늦게 창조된, 최후의 피조물이다.

인간(에노쉬/아담)은 지상의 모든 동물들과 하늘의 모든 새들처럼 흙으로 지어졌지만 동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유일한 피조물로서 생령이다. 히브리어 아담은 강하면서도 연약한 인간을 의미하는데, 첫 인간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특별한 존재가 바로 여자다. 잠에서 깨어난 최초의 인간 아담은 남자(이쉬)로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인간을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감탄하며 여자’(이솨[])라 불렀다.

그런데 성경은 여자의 창조기사를 여기서 끝내지 않고 가라사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성경 히브리어에서 남자와 여자로 지칭하는 단어는 동일한 단어의 남성명사와 여성명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인간이었으므로 사실상 부모가 없다. 하지만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시대에는 부모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었기 때문에 부모라는 단어는 인류가 곧 계보의 역사임을 예견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라는 두 인격체가 만나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것이다. 결혼은 합하여 하나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협동’(協同)이다. 부부는 합하여 하나가 되는 협동체다. 이 협동체에 관한 사건과 가르침이 창조기사에 이어서 기록된 것은 아마도 결혼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협동체를 통한 새로운 가정의 탄생은 창조의 기적과도 같다.

그렇다면 가정을 하나의 작은 교회라고 주장한 18세기 프랑스 출신의 계몽주의자 볼테르(Voltaire)의 말은 옳은가? 교회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아니므로 가정이 작은 단위의 교회는 아니다. 가정은 생물학적 교제의 단위인 반면에 교회는 영적 교제의 단위이다. 생물학적 단체인 가정과 영적 단체인 교회는 출발점과 토대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구분되어야 하지만 기독교 가정이 언약 공동체와 작은 교회로 간주되는 것은 분명 기독교 전통이다.

 

2. 종교개혁과 개혁교회의 결혼식

결혼에 대한 서구의 전통 즉 기독교 전통은 결혼을 3가지 개념으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성례와 계약과 언약이다. 성례는 천주교 전통의 결혼 개념이고, 계약은 비기독교 전통의 결혼 개념이며, 언약은 개신교 특히 개혁교회 전통의 결혼 개념이다. 사실상 서구의 결혼식은 오래 동안 사회법이나 국가법보다는 기독교 신학에 기초한 교회 전통에 따라 시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결혼은 성례로 시작하여 언약으로 인식되다가 오늘날에는 사회계약으로 바뀌었다.

1541년과 1561년의 제네바교회법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혼인공시의 공표가 선행되어야 하고, 예식은 양가의 요청에 따라 주일이든 평일이든 설교 시작 전에 거행하되 찬송으로 시작하여 교육 받은 어린아이를 입장시킨 다음 교인들이 입장했다. 1559년의 프랑스개혁교회법에 따르면 결혼 당사자는 결혼 전에 자신들의 결혼 약속을 증명하는 서약서를 반드시 교회치리회에 제출해야 하고 혼인공시를 공표한지 15일 후 주일에 회중 가운데 결혼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개혁교회법은 교회가 결혼 당사자들에 대한 승인이나 충분한 지식 없이 결혼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모든 결혼은 오직 목사의 집례로만 성도의 신앙 회집에서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약혼 후라도 결혼 전에 동거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으며 약혼 후 6주 이상 결혼을 연기하지 않도록 금했다. 모든 결혼은 교회등록부에 등록하도록 했다. 결혼예식에 대해서는 결혼서약과 참석자들의 엄숙한 기도만 언급한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도들의 첫 모임인 1568년 베젤(Wesel) 비밀모임은 결혼할 신랑신부의 이름을 결혼 전 3주 동안 주일 설교단에서 공포해야 하고 금식일 외에는 어느 날이든 결혼식이 가능하며 결혼예식에는 반드시 설교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영국성공회의 공동기도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결혼예식을 기술하는데, 집례자가 만든 결혼서약서에 따라 결혼식이 시작되는데, 결혼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이어서 신랑신부에게 문답을 하고 문답 후에 반지를 끼우게 한 다음 기도하고 강복선언(축도) 또는 시편낭송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에드워드 6(Edward VI) 시절에 공동기도서를 감수한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써(Martin Bucer)는 결혼과 이혼 문제를 가장 세밀하고 폭넓게 다룬 인물로서 결혼을 정부의 일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일로 간주했다. 이런 점에서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면서 동시에 교회적 언약이다. 부써에 따르면 결혼이 비록 성례는 아니지만 거룩한 결혼”(sanctum connubium. 칼빈: sainct mariage. 공동기도서: holy matrimonie)이므로 결혼식도 엄숙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결혼식에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하고 서너 명의 증인도 필요하다.

결혼과 관련하여 부써가 제시하는 성경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권면이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4“8) 부써는 결혼의 모든 과정을 명예의 문제로 본다. 그러므로 결혼과 관련하여 덕스럽지 못하거나 명예스럽지 못한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16세기 개혁교회법들의 공통적인 결혼은 약혼 후에 결혼식을 거행하고 결혼식은 엄숙한 예식으로 성찬일과 금식일 이외의 모든 날에 시행 가능하며 목사의 설교와 권면 및 축복기도, 그리고 결혼서약과 결혼선언 등의 요소를 포함한다. 16세기에 결혼과 관련하여 가장 강조한 것은 결혼 당사자들의 동의가 가장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인데, 이것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 결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3. 제네바 예배서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루터교회 전통이 아닌 개혁교회 전통의 대표적인 결혼예식으로는 16세기의 제네바 예배서(1542/1545. 영어판은 1556)17세기의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1645)에 나오는 내용과 순서를 꼽을 수 있다. 제네바 예배서의 결혼예식에는 결혼공포식을 3 주간 하도록 되어 있다. 결혼식은 설교 전에 시작하여 인간 창조 이야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이 남편과 아내도 한 몸이라는 사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서로에게 지배 권리나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목사의 긴 권면이 따른다.

다음으로 목사가 결혼 당사자들에게 이 결혼이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합법적 결혼인지 묻고 이의가 없으면 다시 이것을 참석자들에게 묻고 이의가 없으면 신실한 남편의 의무사항을 나열하는데, 나열이 끝나면 신랑이 화답한다. 이번에는 목사가 아내의 의무사항을 나열하고 신부가 화답한다. 그러면 목사는 마태복음 19장의 내용으로 권면한 다음 축복기도로 마무리 한다. 요약하면, 긴 권면, 결혼의 합법성 확인, 신랑신부의 맹세 서약, 결혼승인, 축복기도의 순이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결혼예식은 6일 동안 치열한 논의 끝에 통과된 내용이다. 가장 먼저 결혼이 성례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라고 선언하는데, 그 이유는 결혼이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와 국가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하는 새로운 출발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훈계와 지도 및 권면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결혼 당사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결혼이 합법적인 말씀의 사역자에 의해 엄숙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말씀의 사역자가 그들과 알맞게 상담하고 그들에게 복이 임하길 기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의 사역자 즉 종은 목사를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언급하는 상담과 기도는 결혼 전에 결혼 당사자와 목사 주례자 사이에 필요한 규정으로 보인다.

결혼식은 공적 예배를 위한 권위로 지정된 장소에서 공적으로거행해야 하고 고난주간 등과 같은 애도의 날과 공적 예배일인 주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가능하다. 결혼예식은 목사가 기도양식에 따라 기도로 시작하여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간단하게 설교한 후에, 결혼 제도와 관습과 목적을 설명하는 양식을 읽은 다음, 이 결혼을 합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 이의가 없으면 신랑과 신부가 하나님 앞과 회중 앞에서 상호 약속과 언약의 선언을 하도록 한 후에, 그들이 남편과 아내로 하나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기도양식의 기도로 마친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제시하는 결혼예식 순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목사의 기도, 목사의 성경봉독과 설교, 결혼에 대한 간단한 설명 낭독, 결혼의 합법성에 대한 공개적 질문, 결혼을 위한 신랑신부의 상호 약속과 언약 선언, 목사의 결혼승인 선언, 목사의 축복기도. 마지막 순서의 축복기도는 강복선언의 축도(benediction)가 아니라, 목사가 신랑신부의 새로운 출발인 결혼을 위해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4. 초기 한국교회의 결혼식

1924년과 1925년에 연속으로 간행된 한국기독교 최초의 혼례예식서인 <장로교회혼상예식서>(長老敎會婚喪禮式書)에는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결혼풍습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혼례는 성례가 아니라는 것과 일부일처제를 강조하고 집례자의 자격을 결혼한 목사나 교역자로 제한하며 조혼과 강제 혼인을 금하고 하나님의 법과 국법을 어기지 말아야 하며 혼례증인들이 충분해야 하고 반드시 혼인증서를 발부해야 하고 주일에 결혼하는 것을 금하며 주례목사가 혼인명부를 비치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들이 들어 있다.

유럽의 결혼예식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간택 일을 점치는 비기독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그리고 주민등록등본이나 당회보증서를 접수 받아 신분을 확인하게 하고 혼인증서에 양가 혼주와 결혼 당사자, 주례자가 모두 서명하도록 하여 혼인의 적법성을 담보하려고 했다는 점, 또한 지나치게 춥거나 무더운 날씨의 계절을 피해 혼례일자를 정하도록 권고함으로써 양가 및 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려고 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신랑의 예복은 높은 모자와 긴 코트(frock coat), 신부는 면사포와 화관, 그리고 반양제복을 착용하도록 권했으나 당사자의 형편대로 하도록 허용했다. 혼례 즉 결혼예식의 개식은 신랑신부 입장하여 주례자의 오른쪽에 신랑이, 왼쪽에 신부가 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식에 이어서 찬송, 기도, 주례자의 결혼식사, 성경봉독, 설교, 신랑신부의 문답을 통한 서약, 신랑신부 반지 끼워주기, 주례자의 축복기도, 결혼승인 선포, 광고와 기타 축전, 찬송, 축도, 신랑신부 각자에게 혼인증서 수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5.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부합하는 결혼식

 

기독교 역사 속의 다양한 결혼문화는 성경의 가르침과 전통을 반영한다. 성경에는 당시 결혼풍습을 추정할만한 기록들이 있다. 결혼을 위해 신랑은 신부가정에 즉 신부의 아버지와 신부에게 제공해야 할 결혼예물이 필요했는데, 흔히 결혼지참금이라고도 한다. 구약에서 지불된 결혼지참금의 형태로는 현금이나 보물, 의복 등 다양하다. 결혼준비는 양쪽 가정 모두가 참여했다. 이스라엘의 결혼풍습은 고대 근동의 결혼풍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결혼풍습에 따르면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먼저 신부 집으로 찾아 가서 신부 집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에 참여한 후,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데려오는 전체 과정을 의미한다. 성경은 모두 결혼의 중요성과 의미 및 부부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제공하지만 결혼예식 자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성경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결혼예식은 일종의 아디아포라’(adiaphora) 선도 악도 아닌 중립 영역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혼예식이 아디아포라에 속한다면 어떤 형태의 결혼예식이든 결혼예식의 식순이나 형식과 내용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문제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결혼식이라면 성경이 가르치는 결혼의 의미와 원리를 담고 표현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기독교 결혼예식이 경건한 예배로 간주되어 지나치게 엄숙한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도 주의해야 하겠지만 또한 아무런 형식 없이 지나치게 자유로운 방임주의로 변질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결혼, 즉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결혼이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신랑신부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사실 이상이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결혼이라는 의미다. 결혼예식에서는 무엇보다도 주님이 신랑신부의 혼주로 존중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 결혼 당사자인 신랑신부가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나아가 양가의 부모도 존중 받아 마땅하다. 이런 의미에 부합하는 형식이면 족하다. 요즘 유행하는 스몰웨딩(small wedding)이 권장할만한데, 비용은 결코 스몰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식 하객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현대인들은 결혼식 초대장 받는 것을 기분 좋은 일로 여지기 않는 듯하다. 하객으로는 결혼 당사자 외에 양가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면 족하지 않을까? 결혼이 옛날에는 마을 잔치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결혼형식도 현실에 맞게 변해야 한다. 결혼식이 지나치게 화려한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초라한 것도 권장할 일은 결코 아니다. 물론 형편껏 하는 것이 맞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결혼식이어야 한다.

결혼식이란 결혼 당사자가 서로에 대한 맹세 서약을 하는 엄숙한 자리이자 축하 세례와 기쁨으로 충만한 잔치 자리다. 새로운 삶의 미래를 함께 열고 나눌 평생의 동반자와 하나가 되는 축복과 감사의 날이다. 두 사람의 사랑의 합의만 아니라, 가족적이고 사회적이며 교회적인 사건이 결혼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유교적 결혼식에서 벗어나 기독교 전통에 맞는 결혼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 지나치게 화려한, 보여주기식 결혼문화는 지양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결혼 정서로는 여전히 사랑보다 배우자의 조건이나 능력이 더 중요하다.

 

6. 기독교 결혼예식의 특징

기독교는 결혼의 기원을 창세기 222-25절에서 찾는다. 거기서 하나님은 친히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지어주시면서 명령하시길, “남자가 부로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즉 기독교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신성한 제도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결혼 원리는 일부일처제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는 마치 일부다처의 관습을 허용하는 것 같은 기록들이 많지만 명시적으로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구절은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원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결혼제도 역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결혼은 거룩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신적 제도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합법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신랑신부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서로를 신뢰하면서 부부생활을 거룩하고 즐겁게 영위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 즉 배신으로 일부일처의 신성한 결혼제도 역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타락한 가인의 계보로부터 최초로 일부다처의 혼인 관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의 타락한 변형인 일부다처제가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시적으로 허용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살아가는 시대적 환경에 어느 정도 동화되는 것을 임시적이고 일시적으로 허용하신 듯하다.

기독교의 결혼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함 즉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결혼은 믿음의 결혼예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결혼 당사자인 신랑신부의 상호적 믿음이 기독교 결혼의 출발점이다. 여기에 신랑신부의 양가 부모가 계실 경우 양가 부모의 결혼 허락과 결혼식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결혼 당사자 상호간의 신뢰는 거룩함으로 통한다. 이 거룩함이 기독교 결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신뢰가 깨어지면 거룩함도 사라진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신자의 삶에서 요구하시는 거룩함도 사라진다. 신랑신부의 상호 신뢰가 어느 한 쪽에서든 깨어지면 결혼의 거룩함도 사라진다. 두 종류의 신뢰는 불가분의 관계다. 따라서 기독교 결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셨다는 확신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결혼예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전통적으로 목사의 주례 혹은 설교가 그 역할을 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결혼은 기독교 결혼으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상호신뢰에 근거한 서로에 대한 약속인데, 이것이 곧 혼인서약이다. 즉 신랑과 신부가 결혼 그 순간부터 평생 서로를 부부로서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신뢰를 깨뜨리지 않겠다는 맹세의 서약이다. 이 서약에는 최소한 2-3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한데, 오늘날에는 하객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증인들을 따로 세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선포식, 즉 혼인선언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인륜지대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결혼예식은 한편으로 엄숙함과 진지함의 자리여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즐거움과 감사함의 자리여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엄숙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회피하는 것도, 너무 지나치게 자유로워서 진지함을 상실하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결혼예식은 성경적 결혼의 원리에 따라 필요한 기본적인 형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스몰웨딩은 지나치게 화려한 예식과 번잡스러운 예식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만일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형식과 내용조차 쉽게 생략해버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무엇인지 그 원리를 알고 존중할 때 기독교 결혼예식이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하나님의 복과 사람의 축복이 가득한 결혼예식을 위해 신랑신부가 함께 준비해야 한다.


*위 글은 2023년 <기독교보>의 KOL란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