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9788944703225.jpg

 

 

안더스 니그렌 저 [아가페와 에로스]

 

 

황대우 교수

 

 

    Anders Nygren은 스웨덴 Lund 대학을 중심으로 구성된 룬터학파의 대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스웨덴의 룬터학파는 루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간과될 수 없다. 북유렵을 대표하는 3개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루터교 전통의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신학자든 철학자든 20세기 중반 이전에 활동한 이 세 나라 출신들의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루터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만큼 루터라는 인물은 북유럽의 3개국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니그렌 역시 이런 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마도 루터는 그가 위의 책을 쓰게 된 근본 동기였을 것이다. 그가 루터의 이신칭의와 십자가 신학이라는 관점을 통해 기독교의 사랑 개념이 아가페 즉 무동기적 사랑이라고 간파했다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니그렌은 이 무동기적 사랑 즉 신중심적 사랑을 의미하는 기독교 사랑 개념인 아가페와 대등한 평행관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대립관계에 있는 종교적 사랑 개념으로서 동기적 사랑 즉 인간중심적 사랑을 의미하는 헬라 철학종교적 사랑개념인 에로스를 상정한다. 니그렌에 의하면 기독교 역사는, 최소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순수 기독교적 사랑 개념인 아가페와 철저하게 비기독교적인 사랑 개념인 에로스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장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저자가 아가페와 에로스를 우열관계 즉 아가페가 더 고상하고 에로스는 덜 고상하다는 식으로 관계를 설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저자가 경고하는 대로, 아가페를 천상적 정신적 사랑과 같은 고상한 사랑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에로스를 지상적 육체적 사랑이라는 다소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두 사랑 개념은 출발점이 다른 전혀 별개의 것으로 우열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 두 개념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상에 있다.

 

     니그렌은 무동기적인 사랑 개념인 아가페를 기독교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근본적으로 이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하나님께서 아무런 동기 없이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길로써 아가페를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죄인을 향한 이 무동기적 하나님 사랑에 근거할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상의 가치나 중요성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무차별적으로 인간에게 베푸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까지도 사랑하셨는데 바로 아가페이며, 이것만이 하나님과의 교제(Gottesgemeinschaft)를 가능케하는 근거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만이 예수님의 핵심 교리이자 기독교의 2대 강령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인 아가페 개념의 결정체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바르게 이해했다. 즉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사랑이야말로 하나님 사랑 즉 죄인을 아무런 동기 없이 사랑하시는 신중심적 아가페라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바울은 값없이 주어지는 믿음(pistis)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표현했다고 니그렌은 강변한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사랑은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과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 신학에서 그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기독교적 사랑 공식을 제대로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사랑 개념의 순수성이 어느 정도 변형되고 약화되었다고 니그렌은 평가한다. 즉 요한 신학에서 어느정도 헬라철학적 요소가 기독교의 사랑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유입된 것으로 본다. 니그렌에 따르면 이러한 요한 신학은 앞으로 교회사에 나타나게 될 아가페 개념의 설명을 위한 에로스 개념의 도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그렌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신학과 신학자들의 기독교 이해를 세 종류의 사랑 개념으로 분류한다. 이 세 유형은 기독교적 개념인 아가페와 헬라철학종교적 개념인 에로스와 유대교적 개념인 노모스(율법)이다. 첫 번째 것만이 신중심적인 순수 기독교적 사랑 개념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개념은 인간중심적이고 따라서 비기독교적인 사랑 개념이다. 저자는 마지막 세번째 유형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대교회 교부들의 신학을 이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즉 말시온(Marcion) 이산과 교부 이레니우스를 순수 기독교 사랑 개념인 아가페의 대표자로 분류하고, 영지주의자들과 알렉산드리아학파를 기독교를 에로스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한 대표자들로 간주하며, 속사도 교부들과 터툴라안을 유대교적인 노모스 유형으로 분류한다. 니그렌은 터툴리안에 의해 유대교의 노모스 동기가 기독교의 아가페 동기와 절충하게 되었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부인 오리겐에 의해 헬라의 에로스 동기가 기독교의 아가페 동기와 절충하게 되었다고 본다. 에로스 개념과 아가페 개념을 갈등과 충돌 개념으로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상에 있는 두 사랑 개념인 기독교적 아가페 개념과 헬라적 에로스 개념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데, 그 대표가들이 아타나시우스와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 가운데 하나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이다. 니그렌에 의하면 이 종합의 시도는 어거스틴의 신학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인 카리타스(caritas)는 바로 아가페와 에로스의 종합이다. 이것을 니그렌은 종합의 1단계로 보고,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와 스콜라주의를 종합의 2단계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종합을 에로스 동기에 의해 파괴한 것이 르네상스이며, 아가페 동기에 의해 파괴한 것이 종교개혁이라고 니그렌은 주장한다.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인 카리타스가 어떻게 두 평행적인 사랑 개념의 종합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중세 신학으로 연결되는지를 원자료에 근거하여 상세하게 제시하는 니그렌의 설명은 굉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시작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아가페와 에로스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하는 니그렌의 저술은 바로 감탄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론도 비판 받지 않을만큰 빈틈없이 완벽한 것은 없다. 니그렌의 책 역시 이 점에 있어서 예외일 수 없다. 과연 비동기적 기독교 사랑 개념인 아가페와 동기적인 사랑 개념인 에로스는 서로 만날 수도 만나서도 않되는 개념일까? 아가페와 에로스가 만날 경우 아가페는 왜곡될 수 밖에 없는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기독교적 수용성에서 볼 때, 그 두 개념이 영원한 평행선상에 있다는 것은 분명 니그렌이 자신의 설명을 위해 만든 인위적인 구조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가페의 비동기성에 대한 나그렌의 지나친 강조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구속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고려할 여지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것은 니그렌이 주장하는 순수하게 비동기적인 것으로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비동기적 아가페 사랑이라는 니그렌의 가설은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하기에 불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 이외에도 니그렌의 성경에 대한 이해 역시 문제가 있다. 또한 니그렌이 파악한 루터의 사랑 개념이 그가 평가하듯이 순수 기독교적인 아가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루터 역시 어거스틴과 같은 종합적 개념을 인정한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당할 것이다.

니그렌의 기독교 사랑 개념에 대한 분석은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번역자인 고구경 씨는 이 책을 매우 신중하게 번역한 것 같다. 한 단어를 동일하게 번역하지 못한 아쉬움은 거의 모든 번역서들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것이다. 때로 이런 일은 더 정당한 일로 판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언어의 상이성은 사상 뿐만 아니라 문화와 관습의 상이성을 반영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번역은 언제든지 반역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아가페와 에로스]는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에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