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물든.jpg

 

 

 

『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사직동교회 김철봉 목사

 

 

    본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는 미국에 있는 한국의 벤처 기업 위즈도메인(Wisdomain)에서 세일즈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의식 있는 크리스천 옥성호 형제가 탈고(脫稿)한 글이다. 그는 최근에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1부작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비롯하여, 2부작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연이어 출판하였고, 3부작으로 ‘경영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출판을 곧이어 준비하고 있다. 본서는 출판되면서부터, 아니 출판되기 전부터 한국 교회 안에 센세이션(sensation)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사랑의 교회 원로 목사인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 출판한 책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여는 독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기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거침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서를 통하여 오직 부흥과 성장만을 지향하는 21세기 교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본서가 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인 옥성호 형제가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신도로서 이런 책을 쓰는 것은 보통 용기를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각오하고 본서를 기록했다면, 그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온갖 세상의 방법론과 처세술(處世術)이 만연한 한국 교회의 분위기를 지적하며, 따끔한 채찍질을 가한 것은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와 같은 목사나 신학도가 아닌 평신도가 이런 책을 섰다는 점에서 본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렇다면 저자가 본서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의 핵심 논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작금(昨今)의 기독교가 심리학과 같은 세속적인 학문에 물들어서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 성경의 진리 보다 심리학과 경영학, 그리고 마케팅의 원리들을 더 믿는 사이비 기독교 신앙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심리학이 성경의 원리를 대신하며, 성경 보다 더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 심리학’ 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내적 상담을 비롯한 심리 치료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한국 교회에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의 예리한 통찰력(insight)을 가지고, 심리학이 기독교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을 충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선 본서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서는 크게 다섯 장(chapter)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먼저 첫 번째 장에서는 ‘심리학이 과학인가, 종교인가?’ 에 관한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심리학은 객관적인 과학이라기보다는, 종교의 속성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연구하는 인간의 정신 영역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낼 수 없는 종교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에, 심리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심리학은 진화론에서 비롯된 것이며, 근저에 깔려 있는 사상은 뉴에이지(New Age) 사상이라고, 심리학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심리학도 존재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기독교 심리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기독교 심리학 역시 일반 심리학과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 상담학계를 대표하는 두 주자, 게리 콜린스(Gary R. Collins)와 제이 아담스(Jay E. Adams)를 서로 비교하면서, 특히 심리학을 과학으로 보는 게리 콜린스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학문은 프로이드나 융과 같은 일반 심리학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심리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 되었으며, 단지 ‘기독교’ 라는 용어를 붙였을 뿐이지 기독교 심리학은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 심리학은 성경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 심리학에서는 성경 말씀을 심리학 이론에 맞추기 위해서 임의로 가져온다고 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소위 짜 맞추기 식의 성경 사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 예로 정태기 목사와 주서택 목사, 그리고 시먼스 목사(David A. Seamands)의 의견을 반박하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인용 및 성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 장에서 그의 주장은 더욱 진일보(進一步) 된다. 심리학은 절대로 성경적일 수가 없고, 반기독교 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심리학의 가르침 또는 심리학 이론의 본질이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또한 인간 본성의 선함 혹은 중립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반기독교 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장에서는 기독교가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융(Carl Jung)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적은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는 이단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교회 안에 들어온 심리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거의 폭탄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탄이 심리학의 가면을 쓰고, 교회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장에서는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이라는 주제로 그의 논지를 제시하고 있다. 심리학의 진짜 가면은 무의식이다. 첫째 가면인 자기 사랑을 통해 무의식의 가치를 일깨우고, 그 위에 두 번째 가면인 긍정적 사고를 통해 무의식을 살찌우며, 세 번째 가면인 성공의 법칙의 획득을 통해 무의식에게 결코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날 심리학이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 성공의 법칙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장에서는 기독교는 심리학의 방법론이 필요 없는 오직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종교 개혁자들의 외침과 같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이 성경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이 아닌 오직 성경만으로 기독교는 충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본서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본서를 읽으면서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한국 교회에 이런 실력을 갖춘 인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또 한편으로는 심리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한국 교회를 너무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본서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강한 인상은 저자의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신학적인 깊이는 인정하겠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어쨌든 본서는 한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기독교 심리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크나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본서가 출판된 이후, 본서를 반박하는 수많은 글들이 웹에서, 기고 글에서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기독교가 심리학에 물들어 부족하다’ 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이 반박하는 글을 기록하였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을 가르치는 하재성 교수는 ‘부족한 기독교’ 가 아닌, ‘지혜로운 기독교’ 라고 반박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사회과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심리학이나 혹은 다른 인문과학의 영역에 대해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의심하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의 모습과 같으며, 기독교의 진리가 심리학과 같은 신지식에 의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의심 많은 불안’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필자도 하재성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저자가 심리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심리학의 부정적인 영향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이 저자의 주장처럼 반기독교적인 학문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류의 노력에 의해 발전되어온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심리학도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중심으로 출발한 심리학이 기독교의 진리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는다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결코 심리학에 의해서 반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께서 말씀을 보존하시고, 지키실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렇게 성경을 왜곡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심리학자들도 말씀의 권위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심리학도 얼마든지 성경을 뒷받침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기독교 내적 치유의 권위자들이다. (사실 프로이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심리학들이 심판대 위에 올라온 사실은 재미있는 일이다.) 아마 그들이 본서를 읽었다면, 상당히 감정이 상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과연 저자가 그들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저자는 심리학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리학을 함부로 난도질 해 버리고, 평가절하(平價切下)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심리학에 대해서 비판하려면, 심리학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권위자이어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심리학을 개인적으로 연구했다고는 하나, 심리학에 대한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권위자가 아닌 사람이 함부로 심리학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며, 예의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는 본서를 균형 있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본서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필자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본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자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필요도 없고, 또한 무조건 배척할 필요도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그리고 기독교에, 본서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서는 성경의 진리 보다, 심리학과 같은 세속적인 방법들을 우선시 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경고장과도 같다. 21세기 속에서 복음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꼭 필요한 책들을 쓰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는 옥성호 형제의 이러한 노력을 높이 사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라면, 아무런 검증 없이 세상의 철학과 방법들을 가져오는 현 시대의 기독교의 모습을 냉철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심리학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한국 기독교는 얼마든지 심리학이 미치는 악영향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심리학을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은총의 과학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진리의 성령께서 교회를 보존하시고, 성도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에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