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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일찍 세례받은 한 늙은 지성인의 이야기”

 

 

                                                                                                       김진하 교수(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회사)

 

1. 타오르는 불꽃같은 유명인의 회심

 

    386년경 밀란에서 살았던 삼십대 초반의 어거스틴은 로마의 수사학 교수로 귀족들의 스승이자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었던, 그래서 로마시민들이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찬양하여 광장에 동상까지 세워주었던 빅토리누스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뇌성벽력 같은 웅변력으로 전통 신들을 옹호해 온 우상숭배자였던 그 노인이 이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십자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헬라어를 모르는 어거스틴이 빅토리누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플라톤 서적들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빅토리누스는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읽으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결단을 내렸다. 믿는 친구인 심플리키아누스 사제에게 “교회로 가자.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교회에 등록하고 성도들 앞에서 신앙을 간증하고, 세례를 받자 온 교회가 열광적으로 그의 이름을 외치며 박수를 치고 기뻐했다. 그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로마 시는 그 뉴스에 너무 놀랐다. 정말 감동받은 사람은 이 이야기를 『고백록』에서 전하는 어거스틴 자신이었다. 자신 또한 빅토리누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마귀의 사슬에 묶여 세속적 정욕과 악한 습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비참한 눈을 바라보며 “오 주여! 내게 찾아 오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내게 힘을 주사 나를 불러 죄악으로부터 돌아서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8.4).

  

   빅토리누스의 회심을 보며 어거스틴은 그 효과를 다음과 예상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자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가 구원의 길을 걸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기쁨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뒤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이 많은 유명인의 회심은 큰 불꽃을 형성하는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했다.

빅토리누스의 회심에 비견할만한 사건이 근래 우리 사회에도 일어났다. 50년 동안 문학평론, 에세이,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심지어 올림픽 개폐회식 대본까지 쓴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 영원한 문화인인 이어령(76) 전 문화부장관이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가 세례를 받으려는 뜻을 밝히자 동아일보는 그 변화의 계기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2007년 4월 12일자 신문에 기사로 실었다(책 134-135 페이지에 기사 전문이 실림). 그리고 삼 개월이 지난 후, 7월 24일 세례를 받자 언론 보도들이 나갔다. <국민일보>는 긴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7월 25일자 신문 기사는 책 150-155 페이지에 실림). 그 기사들은 이 전 장관이 세례 받을 결심을 품게 된 것이 딸 민아 씨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손자의 질병과 사망 등을 겪으면서 빚어진 것으로 본다.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오랫동안 머물러왔던 무신론적 입장을 버리고 신앙의 길로 들어섰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 사건이었다.

  

   필자는 먼저 이 전 장관의 회심을 따뜻한 가슴으로 환영하며 이 사건이 널리 알려져, 어거스틴이 빅토리누스의 회심에서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이 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인기리에 읽혀지기를 바란다. “무신론자들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의 일상에 닥친 도전에 대해 한편으로는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초월과 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 이 전 장관의 희망처럼 이 책을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또 책머리에 “책 제목은 대담하게 붙였지만 나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 서 있다. 누구보다도 이 글들을 아직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고자 한다.”고 썼던 것처럼 전도용으로 건너지기를 바란다. 특히 목회자들은 이 시대의 믿지 않는 지성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믿음에 이르게 되는지, 세례 받는 초신자의 생각하는 바와 상태가 어떤가를 엿보기에 적당한 책이다.

 

2. 어어령 식의 성경이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은 지 약 3년이 지나고 펴낸 책이지만, 정확하게 이 책은 그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구상한 2004년부터 2007년 7월 세례를 받기까지의 기간 동안 자신의 내면의 깨우침과 생활 단상들을 성경의 가르침과 적당히 버무려 담아낸 책이다. 위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저자의 의도가 그러하듯이, ‘영성’에 대한 책들을 보아온 독자들은 책 제목으로부터, 또 이 전 장관이 이전 저술들에서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통찰력, 풍부한 지성을 바탕으로 ‘영성’에 대해서도 전문적이며 깊이 있는 것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본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제 막 세례 받은 입문자가 무슨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는 신선한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들이 가득하고 그래서 재미도 있다. 한 꼭지 안에서도 장면이 자주 바뀐다. 지루하게 느낄 여유를 주지 않고 글은 영상 화면처럼 돌아간다. 하지만 그가 풀어가는 이야기들은 생활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관찰들, 가족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앙적 평범한 가르침과 교회의 관습들과 연결시킨다. 예를 들면 빵을 사면서 성찬과 관련짓고, 병원의 진찰 결과를 심판과 연결한다. 이 전 장관은 교토에서의 외국 생활의 단조로움과 고독, 고향에 대한 향수, 전화 통화, 장보기와 식사 준비, TV, 스포츠, 비만, 아내와 딸과의 전화, 감기 같은 질병, 일기와 계절의 변화, 어머니와 딸과 관련한 가족 이야기, 외손자를 잃는 사건 등등을 성경 이야기로 전개하고 발전시킨다. 세례받기까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종교적인 체험은 일상적인 생활 현장에서 머물고 있다. 깊은 영적인 체험 이야기를 원한다면 딸인 민아 씨의 15년 신앙생활 간증을 담은 제 4부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이 전 장관이 풀어내는 성경 이야기, 자신의 고유한 깨달음을 기초로 하는 강연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람은 다르나 해석은 비슷한 판에 박힌 진부한 설교가 아니다. 하나의 용어, 혹은 한 대목, 한 에피소드에서 깨닫는 것을 자신의 풍성한 지적 세계를 토대로 어어령 식의, 독특한 자기만의 해석을 하고 있다. 목사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기존의 의미를 주지 않기에 새롭고 진기함마저도 느낀다. 예를 들면, 25장 ‘예수님의 두 손, 바위와 보자기’에서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가지고 용서와 화해를 말하고, 또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순을 융합하는 톨레랑스(관용)로 풀고 있다(25장). 흔히 우리가 강조하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속죄의 문제는 언급이 없다. 이런 독특함은 이 전장관이 세례를 받기 전에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교회 신학과 성경해석의 정통에 물들지 않고 독학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3. 너무 일찍 세례 받은 지성인

 

  예수님의 사역이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로 시작되었듯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저자인 이 전 장관이 세례 받은 사건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병든 아들로 인해 지쳐가는 딸을 위해 최고의 행복을 선물로 주고자 세례 받기를 결심했다. 이를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 넣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세례를 한국에서 받으면 언론에 보도될 것을 염려해서 일본에서 개최한 문화선교집회 ’러브소나타’ 행사 때에 조용히 호텔방에서 하용조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으려 했다. 원한 대로 조용한 세례는 안 되었다. 호텔 홀에서 백 명이 넘는 성도들 앞에서 받게 된다. 그는 세례 받은 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히 “아직 입학도 안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도, 사역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해야지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왜 이 전 장관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자기만의 해석 세계를 보여주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가 받은 세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세례와는 다른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소위 존 H. 웨스터 홉 III 같은 학자들이 말하는 ‘사적 세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세례를 지극히 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호텔에서 하자고 요청했다. 중병이나 임종전의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세례는 교회 밖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교회가 세례의 집행 기관이며 세례는 교회에 입회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례를 행할 때 교회 모든 성도들은 새로 가족에 가입한 형제와 자매를 환영하며 서로 친교하며 평생 한 가족으로 살 것을 서약하는 공동체적인 일이다. 이 전 장관에게 세례를 집전한 하용조목사와 온누리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총회헌법에는 “세례는 전체 교회의 행위이므로, 공중예배에서 회중의 참여가운데 베풀어져야한다.”고 명시했다. 세례는 호텔에서 할 일이 아니다. 또한 그 헌법에는 “이 세례를 받기 전에 당회는 그에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거기에 수반되는 의무와 권리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신앙고백을 포함한 적절한 문답을 한 후, 당회의 결의를 거쳐서 공중예배에서 세례를 받도록 하고, 교인 명부에 기록한다.”고 명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서 세례 요청이 오면 목회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유명인이라고 교육도 생략하고, 장소와 때도 맘대로 결정할 권한을 주어야 하는가? 일반법이 그러하듯이 교회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해야 하지 않는가? 이 전 장관의 세례에는 세례 받을 후보자가 부적합했다기보다는 온누리 교회와 집전한 하용조 목사에게 문제가 있음을 필자는 지적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너무 일찍 준 세례였다. 이 전 장관이 남들 하는 것처럼 오랜 기간을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교육과 훈련을 겪고 세례를 받았다면, 그런 다음에 출간되었다면 아마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더 깊은 영성이 담긴, 더욱 맛깔스런 글을, 더욱 영향력이 있는 책을 독자들이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서평을 닫기 전에 고대 교회는 세례를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주후 200년 경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기록한 『사도전승』에는 세례 받는 자가 3년에 걸친 장기적인 회심과 양육의 과정을 거친 것을 보여준다. 세례는 시작이 아니라 도달할 최종 관문과도 같았다. 교회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성직자의 심사를 거쳐서 카테투멘(Catechumen, ‘듣는 자’라는 의미)이 된다.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확인이다. ‘듣는 자’는 3년 동안 예배에 참석하며 가르침을 받는다. 세례를 받기 전 마지막 심사는 예비자의 생활에서 전향적인 발전이 있었는지, 즉 성실하게 살았는지, 과부와 병자들을 도왔는지, 선행과 봉사의 증거들은 무엇인지를 인도자가 증언해 주어야 한다. 그 심사를 통과하면 부활절 전날 철야를 한 후 동이 트기 전에 물속에 세 번 몸을 담그면서 세례를 주었다.

   고대 교회의 세례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입회식이며 책임 있는 정규 멤버로서 공인받는 사건이었다. 개인의 신앙, 의사 결정에 맡겨진 사적 세례가 아니다. 세례는 공동체적 사건이다. 세례의 주 행위자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이다. 교회는 세례 받을 후보자를 교육, 양육하여 참여와 책임을 분담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세례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성장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법을 배우고, 성경에서 요구하는 신앙생활과 교회의 요구를 이해하고 헌신하게 하고, 또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교제하고 봉사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는 진지한 세례교육을 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약하고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여왔고 그 쓴 열매를 우리 모두가 먹고 있다. 너무나도 가벼운 세례 관습이 바뀌지 않는 한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쓴 맛을 볼 것이 틀림없다.

  이 전 장관은 책의 말미 ‘문지방 위의 대화’에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한다. 그 믿음대로 되어 먼저 된 자들을 능가하는 맛난 글들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하는 ‘나중된 자’로부터 쏟아지길 희망한다. 딸 민아 씨의 기도가 이 전 장관으로 하여금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듯이, 그의 영성과 지성이 통합된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 문지방을 넘 어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