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유아세례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 17:1~4)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대다수 교회들이 유아세례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로부터 그 정당성은 항상 의문시되어 왔으며 특히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물론 신약 성경은 유아들에게 세례를 줄 것을 분명하게 명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아들이 세례 받는 것을 분명하게 금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유아세례의 정당성에 대한 교리적 논쟁이 보여준 대로 세례의 의미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의 정도에 대한 문제들이 많은 논란을 야기해 온 것은 사실이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세례의 성례는 교회의 회원들에게만 속하여 있고 교회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유아들은 개인적으로 신뢰할 만한 신앙고백을 통해 능동적으로 믿음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유아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성경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유아세례를 베푼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을 강조하여 구약의 할례를 유아세례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이 생물학적인 혈통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을지라도,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민족적 강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가족과 민족적 한계를 뛰어 넘어서 이방인들까지 신앙의 공동체 안으로 영입함으로써 신약에 이르러서는 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양 언약간의 불연속성이 할례와 세례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을 가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아세례를 지지하는 자들은 구약의 할례와 유아세례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구약의 할례는 출생 후 팔일 만에 유아들에게 행하는 가정의례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녀들에게 행하는 의식이었다(잠 17:12).

따라서 신약에서의 세례는 입교의식으로서 할례를 대신하여 믿는 자의 자녀에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할례와 세례가 완전 동일할 것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골로새서 2:11이하에 보면 양자가 동일시되며, 바울은 로마서 3:21~4:24에서 양 언약의 동일성을 은혜와 믿음의 언약으로 표현한 것이다. 할례와 세례는 둘 다 언약의 표징이며 동시에 신앙의 표징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그는 성인으로서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할례를 받기 전에 신앙고백을 하였다. 그는 그러한 신앙의 표징(할례)을 받기 전에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자신의 신앙을 가지기 전에 이미 신앙의 표징(할례)을 받았다. 따라서 이삭 후의 모든 언약의 자녀들도 유아 시에 언약과 신앙의 표징인 할례 곧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구약에서 하나님은 신앙을 나타내기 전에 신앙의 표징이 주어지도록 명령하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신앙을 나타내기 전에 신앙의 표징을 시행하는 것이 오류라고 하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잘못이다.

 

신약에 나타난 세례에 관한 여러 기록들은 주로 이전에 불신자들이었던 성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제1세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유아시기에 신자들의 자녀가 아니었던 당시의 성인 개종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표징이 되는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신앙고백을 해야만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약에 나타는 세례의 약 사분의 일이 모든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행 16:15,31, 고전 1:16, 16:15 이하). 이것은 세례를 받은 가족 중에 유아도 분명히 포함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신약성경이 그 언약적 표징에서 명백하게 유아들을 배제시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아들에게도 그 언약의 표징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초대교회 안에서 당연한 일이 되어 왔던 것이다. 지난 교회사도 이러한 유아세례의 보편적인 시행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