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성령의 사역(6) : 위로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네번씩이나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라고 불렀다(요14:16, 14:26, 15:26, 16:7). 이 '보혜사(헬:parakletos)'라고 하는 단어는 '위로자'와 '모사(상담자)' 그리고 '대언자'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슬플때에 위로를 주시고 상한 곳을 고쳐 주시며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심령 속에 산 소망과 깊은 안정을 더하사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 때문이다(사63:14, 롬 15:13, 빌 1:19, 벧전 4:14, 행 7:55).

 

특히 '위로자'(comforter)의 라틴어 어원은 "강하게 함으로" 또는 "담대함으로"라는 뜻을 가진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강한 능력이 필요할 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더하시고 담대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담대함으로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전날 밤에 다락방에서 성령에 관하여 길게 말씀하시는 중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에 "또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기 전부터 한 보혜사가 계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고 한것은 그 처음 보혜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대언자'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헬라어는 '…와 나란히'를 뜻하는 '파라'라는 접두어에 "부름을 받은"을 의미하는 "클레토스"라는 단어가 합하여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 "대언자"라는 뜻은 우리 곁에 나란히 서서 우리를 돕기 위하여 부름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고대세계에서 "대언자"는 법정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부름받은 변호인을 말한다. 그처럼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하늘에서는 예수님께서 대언하시고 땅에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령께서 탄원하심으로 우리를 변호하신다는 것이다. 특히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도우사 기도하게 하시고 또한 그 기도가 우리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신다.

 

 오늘날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를 대언하시는 성령의 이 놀라운 위로의 사실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6~27).

 

 성령은 또한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대언해 주신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에 처할 때 이전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말고 무엇이든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고 약속하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를 대신하여 말씀해 주신다.

 성령 하나님은 불신앙의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심으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옹호하시고 또한 불경건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의인들을 변호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신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의 위로는 적극적이며 실제적이다. 이 슬픈 세상에서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한량없는 위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