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간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의 모든 간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이다. 따라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간구의 내용은 정죄받은 상태에서 구원과 칭의에 관련되는 우리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범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녀들의 죄는 피할 수 없는 무서운 형벌을 앞두고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죄 문제와는 다르다. 그것은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 앞에 아와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자백하는 자녀들의 죄(채무)를 말한다.

 

이러한 구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고 하신 말씀 속에도 잘 나타난다. “목욕”은 영적인 의미에서 중생(칭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발씻음”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인 삶(마 5:40~48)을 살지 못한 죄와 허물을 자백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계속해서 순결하게 보존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상생활의 범죄가 자신들의 칭의를 무효로 만다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거역과 부정한 행위는 아버지에게 수치스러운 모욕(호1~3장, 살전4:3)이 되는 것이기에 진심으로 아버지의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는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올바른 관계는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천국 백성의 윤리, 마 5~7장) 앞에 바로 설 수 없는 우리의 연약성을 아시고 이처럼 사죄의 청원을 통한 죄 용서의 길을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과 무능을 겸손히 인정하면서 우리는 실로 매일 참된 회개를 통한 사유의 은총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근거와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함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수직적 차원의 용서)과 우리가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수평적 차원의 용서) 사이에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 기도는 근본적으로 이미 용서받은 자의 간구이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처럼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는 행위를 조건(근거)으로 하여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당연히 요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간구는 이미 용서받은 자가 하나님 잎에 용서를 구할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을 마태복음 18:21~25에 나타나 있는 “악한 종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엄청난 빚(채무)을 탕감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총을 반사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니며, 이 의무를 지키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은 바로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 상호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이웃에게 반사해야 하며, 그리고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자는 이웃에 대한 용서를 결코 외면할 수 없고, 그 용서를 실천하는 자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용서의 참된 가치를 바로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그 날까지 우리가 연약한 죄인임을 깨닫고 매일의 생활이 회개와 용서를 비는 삶이어야 하고, 동시에 죄 사유의 확신 속에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자신의 삶을 통해 반사함으로 우리의 주위가 항상 용서와 사랑의 세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