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하나님의 이적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3~4)

 

‘이적’(異蹟, miracles)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놀라움을 일깨우심으로 자신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비상한 행위들을 말한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들을 주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히 2:4, 고후 12:12, 행 2:33)이라는 세 가지 용어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적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항상 더욱 중요한 그 무엇을 가리키기 때문에 ‘표적’(signs)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신적 계시를 위한 자신의 대리인들(선지자와 사도들)을 보증하시고 입증해 주시기 위하여 이적을 사용하셨다(히 2:3~4).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모세를 보내었다는 것을 보증해 주시기 위하여 모세에게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와 같이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수행하신 그 표적들을 통하여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증명하셨다. 이적은 이적 수행자들인 선지자와 사도들을 하나님의 대변자와 전달자로 입증하고(출 4:1~9, 왕상 17:24, 고후 12:12, 히2:3~4), 구원과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과 복음의 능력을 증시(證示)해 보여주고 있다.

 

‘기사’(奇事, wonder)는 우주의 장엄한 운행과 영아 출생의 비밀과도 같은 일상적이긴 하나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인 경이를 안겨주는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임재와 창조적 능력을 깨닫게 해주는 일로서 ‘이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이적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여전히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능력’(能力, mighty work)은 성경역사에 나타난 대로 무(無)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일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사건(눅 7:11~17, 8:49~56, 요 11:38~44)과 같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행위들을 가리킨다. 이런 사건은 자연의 법과 질서에 의한 자연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이적으로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재창조와 회복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적’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이적을 부정하는 자 특히 성경의 두 가지 최대의 이적인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의 사건을 부정하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일반 과학자들의 이적에 대한 부정은 실상 과학 그 자체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에 적용한 우주에 대한 거짓된(독단적인) 전제에 의한 것일 뿐이다. 전능하사 오직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그 세상 속에 창조적으로 비상한 개입을 수행하실 수 있음을 믿는 것은 조금도 비합리적이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일 뿐이다.

 

물론 오늘날 이단들의 거짓 이적들을 경계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과 열광 속에서의 사역이 새 언약시대의 특징(고후 3:1~4:18)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도 당연히 진리와 사랑 속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의 역사 속에서 복음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전 2:4~5). 물론 베드로에게 돈을 주고 사도의 능력을 사려고 하였던 시몬의 망령된 요구처럼(행 8:21~22) 개인의 명성과 권세를 위해 이적과 능력을 구하여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비록 사도적인 이적은 행할 수 없을 지라도 바울이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이적을 행하였음을 증거 한 것처럼(롬 15:18~19)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이 필요할 때 복음의 신실성을 확증하고 복음사역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며 곤궁에 처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부합하는 놀라운 능력을 구할 수는 있다(행 4: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