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계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하나님 지식의 전달 수단인 ‘계시’(啓示, revelation)는 어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어 보이고(헬: apokalypsis, 라: revelatio) 또한 나타내어 보인다(헬: phanerōsis, 라: manifestatio)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것이었으나 당분간 잊어버린 어떤 지식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탐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종류도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객관적으로 인간 자신 밖으로부터,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 지식의 전달을 말한다.
    계시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자유롭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자기 현시(自己顯示, self-manifestation)이다. 이러한 계시는 보는 자가 보고 싶을 때에 스스로 열어보거나 보고 싶은 만큼 보는 것이 아니고, 보여주는 자가 열어 보여줄 때 보여주는 만큼 보는 자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결코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요, 또한 구원의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맺을 길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전2:10, 욥11:7). 따라서 계시 그 자체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어 영생에 이르도록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지만(요20:31)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있다. 우리에게 계시하심은 하나님의 자기 현시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와 권능 그리고 지혜를 나타내시므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롬11:36).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심으로 이루어졌다(시19:1, 97:6, 롬1:20). 그리고 그 모든 계시는 성육신을 통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그 중심과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태초로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같은 영광을 가지셨던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아버지의 독생자요(요1:14),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요, 영광의 광채이시므로(히1:2-3) 이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다름없다(요14:9).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총화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아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시작하셨고(골1:16), 또한 그 아들 안에서 자신의 계시를 완성하셨다(골2:9, 히1:1-2).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시므로 자신을 계시하기 시작하셨고,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구원의 계시를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로고스를 통하지 않은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지식은 모두 인간이 구성한 허구요 자기 투사일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 로고스의 개입 없이는 신 지식이 불가능하며 성립될 수도 없다(마11:27).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하나님 지식을 추구하는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을 스스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연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학자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만 근거하여 항상 신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전달로서의 계시를 그 양식과 내용에 기초하여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와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로 구분한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를 두고서 모든 사람에게 자연세계와 인류역사 그리고 인간(이성과 양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신성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일반계시 자체(per se)는 오늘도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명료하게 주어지고 있지만, 인간은 타락 이후 죄로 인한 영적 맹목 때문에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읽을 수 없게 되었다(롬1:18-25).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계획에 근거하여 보다 적은 사람들에게 오늘날은 성경을 통하여 일반계시의 내용을 포함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과 의 그리고 긍휼과 은혜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구원에 대한 특별계시를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 다 기록되게 하심으로 구원의 계시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셨다.
    이처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섬기기 위하여 모두 필요하고 권위 있으며 명백하고 완전하다. 그리고 두 계시는 서로를 떠나 존재하지도 또한 서로를 떠나 작용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두 계시의 관계는 상호 유기적이며 상보적인 형식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타락 전에도 후에도 일반계시에 비하여 특별계시가 항상 우선성(priority)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타락 이전의 아담은 항상 특별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창조세계에 대한 자기 해석의 출발점과 표준으로 삼아야만 했었다. 그리고 타락 이후에는 인간의 창조세계에 대한 정상적인 해석이 죄로 인하여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특별계시가 구체화된 성경이 사실상 하나님의 진리의 유일한 표준과 원천으로서 그 궁극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 자연을 통해 주어지는 일반계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하나님의 말씀을 풍부하게 하고 중요한 예증들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항상 성경의 특별계시가 자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교정하고 결정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오직 성경만이 모든 신학의 ‘유일한 원천’(principium unicu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