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교리교육의 역사와 실제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교리교육은 초대교회의 세례문답 준비교육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교회의 암흑기였던 중세에는 한동안 교리교육이 등한시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개혁자들은 교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체계적인 교리교육을 새롭게 시행하였다. 우리는 당시에 교리교육을 교회교육의 중심으로 삼았던 칼빈의 제네바 교육목회에서 개혁교회 교리교육의 아름다운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칼빈의 ‘제네바 교리문답서’

  칼빈은 제네바에서 교회개혁을 착수하면서 가장 먼저 ‘제네바 교리문답서’(1537년)를 작성하여 교리교육을 시행하였다. 한 때 반대자들로부터 추방당하였던 칼빈이 제네바에 다시 돌아온 후에도 총373문답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제네바 교리문답서”(1542년)를 다시 작성하였다. 칼빈은 자신이 처음 작성한 교리문답서의 서문에서 교리교육의 목표는 (1)다른 영들을 분별하는 능력을 얻게 하고, (2)자신이 믿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변호의 능력을 길러주며,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작성한 교리문답서의 내용은 크게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성례에 대한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문답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경전체에 나타난 구원의 가르침과 윤리적 삶의 표준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문답형식으로 배우도록 하였다. 칼빈은 이 교리문답서에 기초한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자신이 교제하던 영국의 한 성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 교육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선한 씨앗이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는 것처럼 왕성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붕괴되지 아니하고 튼튼히 서 있는 집을 짓기를 원한다면 자녀들이 아주 인상 깊게 이 교리문답서를 통하여 믿음에로 이끌어지도록 염려하고 돌보시오!”

칼빈의 교리교육

  칼빈은 제네바에서의 청소년을 위한 교리교육을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상호협력 속에서 수행하였다. 그는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의 기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세례문답을 시행할 때 부모들도 함께 입회시켜 가정에서의 자녀들에 대한 신앙지도와 지속적인 교리교육을 서약하게 하였다. 가정에서 신앙을 지도해 줄 부모가 없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대부’(代父)를 세워 영적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도록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교리를 배우고 체험하는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의 작은 교회와도 같았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주일 정오에 교리교육을 한 후에 3개월 단위로 교리시험을 보게 하여 합격하면 입교와 더불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칼빈은 교리를 해명하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것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칼빈은 교리문답서를 매년 반복하여 교육할 수 있도록 총52주 분으로 편성하여 매주일 오후예배 시에 교리설교를 시행하였다. 칼빈에게 있어 설교는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하늘의 교리’였다. 성인 새신자들은 3개월 과정의 교리교육과 가정심방에서의 보충교육을 통하여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아침 9시 성경연구 모임을 통하여 장년을 위한 교리교육을 계속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정과 교회의 교리교육은 교회학교였던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더욱 심화되고 완성되었다.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서를 교회교육에서 청소년과 장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통합된 교과과정과 교육내용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의 두 세대 간에 발생하는 이질적인 갈등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교제와 연합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 현대교회 안에 세대 간의 차이가 단순한 사고방식과 정서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신앙의 차이까지 불러와 점차 신앙적 동질성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볼 때 깊이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다.

개혁교회 교리교육의 실제

  이러한 칼빈의 교리교육을 중심한 교육목회 사역은 모든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아름다운 전통과 원리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그가 작성한 제네바 교리문답서는 개혁주의 교회와 학교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1563년)와 “웨스트민스터 대․소 교리문답서”(1647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교리문답서들에 기초하여 오늘도 서구의 개혁교회들은 목사가 직접 자녀들의 교리교육을 감당한다. 교회는 청소년들을 성별과 연령에 따라 여러 반으로 나누고 목사는 매주 사흘 밤을 그들의 교리교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 모든 청소년은 매주 한 시간씩 부모의 책임 하에 의무적으로 교리반에 참석해서 매번 한 두 문답씩 외우고 설명을 듣고 토론에 참여한다. 그리고 오후예배의 교리설교를 통해 교리반에서 배운 교리를 자신의 신앙으로 만들어 가도록 한다. 그들은 18세 정도에 이르러 개인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입교를 하기까지 보통 7년 정도의 교리교육을 받게 된다. 교리교육을 마칠 때가 되면 그들은 대부분 교리문답서를 거의 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교회가 무엇을 믿으며 참된 교회로서의 자기 교회의 위상을 바로 깨닫고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개혁교회 성도들은 성실한 교회생활을 할 뿐 아니라 평생 개혁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 장로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개혁자 칼빈이 보여준 이러한 교리교육의 모범을 잘 이어 받아 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팎의 탈교리적 풍조와 목회적 무관심으로 교회 안에서 교리문답교육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학생신앙운동의 강령에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과 대소교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고 선언되어 있지만 정작 교회교육에서 그 교리문답서 교육을 위한 교재개발과 교육시행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공부의 필수적인 열쇠이며 성경교육의 효율적인 방법인 교리문답교육의 전통을 더욱 발전적으로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칼빈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로 교회를 아름답게 개혁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교리문답교육을 시행하였다. 오늘날도 진정한 교회개혁과 성장 프로그램은 교리교육을 새롭게 실시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