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최후의 심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마 25:31~46, 계 20:11~15). 그 날에 신자와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 몸을 입고 심판주 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딤후 4:1, 벧전 4:5, 눅 14:10, 요 5:26~27, 행 10:42, 고전 3:12~15, 고후 5:10).

 

먼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모든 불신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헬라철학에 젖은 아덴사람들에게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 (행 17:30~31)을 대비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고,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롬 2:5, 참고:살전 1:10, 롬 5:9, 엡 5:6, 골 3:6)에 임할 하나님의 “노와 분”을 선언하였다. 그 심판의 날에 각인이 자신이 행한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 (롬 2:6)하실 것이다(참고: 시 62:12, 마 16:27, 고후 5:10, 계 22:12~13). 따라서 그 행위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심판의 형벌에도 정도의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눅 12:47, 마 11:22, 눅 20:47). 그리고 각 사람의 모든 말과 모든 행위, 마음속의 은밀한 것까지 밝히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전 12:14, 롬 2:16, 고전 4:5, 히 4:13).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불신앙을 심판의 근거로 제시하면서(요 3:18,36, 롬 10:9~12, 엡 4:18)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불신자는 최후의 심판에 의한 정죄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확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모든 사람이 정죄 아래 있었다고 가르친다(롬 1:16~18).

하나님은 항상 자신에 대한 증거없이 행하지 아니하셨고(행 14:17), 자신이 만드신 자연세계(롬 1:19~32)와 모든 사람의 양심(롬 2:14~16)을 통하여 그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셨다. 따라서 심판의 날에 그들도 자신의 복음에 대한 무지를 결코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타락한 천사(사단)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마 8:29, 유 1:6, 벧후 2:4). 그리고 성도들이 그들의 정확한 역할은 알 수 없으나 그 심판 과정의 일부에 참여할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6:3, 계 20:4, 마 19:28).

 

또한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모든 신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롬 8:1) 때문에,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신자들(요 5:24)에 대한 심판이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신자들의 은밀한 죄도 마지막 날에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고전 4:5, 고후 5:9~10). 따라서 우리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신자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용서받은 죄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심판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은사와 재능과 기회를 우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잘 사용했는가에 대한 상급으로 나타날 것이다.

 

두 개의 중요한 신약성경의 성구가 내세에서 신자들이 상급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서 “그 날”(13절)에 각자가 행한 “공력” 즉 봉사의 가치가 “불로” 시험을 받음으로써 모종의 평가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만일 그 사람의 행위가 이 불의 시험을 통과하여 그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게 된다(14절). 그 상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 가치가 그 사람이 행한 일의 상대적인 내구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19장 11~26절의 “므나의 비유”에서 왕권을 받아 가지고 돌아온 귀인이 그동안 종들의 행위를 정밀하게 심사하였고, 그 심사에 통과한 종들은 평가를 따라 상대적인 상급을 받게 된다. 왕이 돌아온 후에 상을 주는 기준은 그에게 주어진 책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맡겨진 재능, 은사, 기회, 직분, 전도, 봉사 등이 재림의 때에 주님 앞에서 모종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선하고 충성된” 종으로 입증되면,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보존된 우리의 공로를 보는 만족과 기쁨을 누림으로써 그에 타당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계 4:10~11). 그리고 아마도 천국 생활에서 더 높은 책임이 맡겨지는 보상도 받게 될 것이다(눅 19:17,19).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천국에서 상급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천국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기쁨은 영원토록 한결같이 완전하고도 충만할 것이다. 세상에서 행복의 기준은 흔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지위 그리고 권세 등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신분과 하나님의 인정 즉 하나님을 인하여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그 모든 상급의 근거는 사실상 하나님의 은총에 있다. 칼빈도 이 “보상”은 “종의 품삯”이 아니라 “아들의 기업”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장차 우리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더불어 다함께 영원토록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