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칭의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칭의’ (稱義, justification)는 죄인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에 근거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 칭의가 우리의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에 의한것임을 말한다.

 

칭의의 문제는 그것이 공로에 의한 것인가 또는 은혜에 의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선행은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공로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도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롬 3:20)라고 단언하였다. 칭의는 하나의 법정적 혹은 선언적인 하나님의 행위다. 마치 재판관이 법정에서 피고의 무죄를 선언하는것과 같은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림으로써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또한 그렇게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칭의의 필수조건과 도구적인 방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신앙이다(롬 4:23~25, 10:8~13).

우리의 칭의는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우리의 연약한 인간적인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의를 선물로 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갈 2:15~16, 3:24).

 

로마 카톨릭은 칭의를 위한 인간 편에서 행하는 성화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한다. 따라서 칭의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특히 그들에게 있어 세례는 칭의의 최우선적인 도구적 방편이며, 고해성사는 두 번째 회복의 방편이다. 그리고 그 고해성사는 인간이 칭의를 받기에 적합한 공로를 세울 수 있는 성화의 행위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물론 카톨릭도 칭의가 신앙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칭의가 ‘오직 신앙(sola fide)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고 칭의의 필요조건으로서 선행을 추가한다. 사실상 그들은 카톨릭교회의 성례제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은혜의 도움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신앙과 오직 은혜에 의한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에 상반되는 거짓이다.

 

그렇다면 칭의로 인도하는 신앙의 문제와 어떻게 사느냐 하는 행위의 문제는 서로 무관한 것인가? 물론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칭의로 인도하는 것은 신앙이지만 새롭게 탄생한 그 새 피조물의 본래적 성품은 불가피하게 행함을 낳게 됨으로, 칭의는 결국 행함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고 한 반면에, 야고보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약2:24)고 하였다. 서로 상반적인 모순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하나의 진리를 상호 보완적으로 설명 해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선행과 공로를 내세웠던 유대인들의 신념에 대항하여 오직 산 신앙을 통한 은혜의 구원을 선포하였고, 야고보는 명목적인 신앙으로 바른 삶을 등한시했던 죽은 정통에 대항하여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신앙은 거짓 신앙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즉 야고보는 칭의로 인도하는 신앙의 진실성은 그 칭의로 부터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의 결과 속에서 명백해진 다는 것을 재인식시키고 있다. 이처럼 야고보와 바울 모두에게 신앙과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응답의 본질적인 요소였다. 선한 행위는 칭의의 근거로서가 아니라 칭의의 당연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