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교회의 사역(2) : 교제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된 교제 가운데 함께 더불어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또한 영광을 받으신다(롬 15:7).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 (헬:koinonia)는 상호간의 단순한 친교를 넘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공동으로 참여하는(요일 1:3,7, 벧전 3:7) 한 몸을 이룸으로써 서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신령한 교제를 가지게 된다. 실제로 모든 좋은 것들과 자신의 물질적 소유까지도 공유할 수 있었다(행 2:44~45, 5:이하 ).

 

신약의 교제는 손님 대접하기를 실천하며(히 13:2, 벧전 4:9),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며(갈 6: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 주고 모이기를 힘쓰며 (히 10:24), 서로 위하여 간절히 기도함으로써(빌 1:9~11,19)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함께 나누는 사랑의 교제였다. 초대교회는 한 몸을 이룬 지체들로서 서로의 개인적 체험까지도 공유하였기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 하나니”(고전 12:26)라고 하였다. 고통은 함께 나누면 감소되고, 기쁨은 함께 나누면 더욱 증대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당시에 기근으로 인해 고통하는 유대와 팔레스타인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이방인 교회에서 구제헌금을 모아 보낸 것은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도 교제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의 본질적인 표현은 ‘아가페’(헬:agape) 즉 형제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값없이 내어 주는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신약에 나타난 ‘아가페’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 ‘사랑’(아가페)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참고:롬 15:7). 이 ‘아가페’는 자신을 낮추며, 용서하며, 희생하는 갈보리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공동체의 구별된 특징(요일 13:34 이하)과 세상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요 17:23)으로 언급하신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이 되었고,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특징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이러한 사랑(롬 5:5)이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삶 속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신약교회의 교제가 무분별한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오류를 범한 자들과는 교제를 삼갔으며(고전 5:4 이하, 살후 3:14), 사도들의 교훈을 부인하는 자들과도 교류를 끊었다(행 2:42, 갈 1:8 이하). 이처럼 성도의 교제에는 다른 지체들의 죄에 대한 견책과 교정이 수반되었고, 이것은 3단계(개인과 증인, 그리고 공회 앞에서)의 과정을 거쳐 반드시 사랑으로 행해져야만 했다(마 18:15~17).

그러나 끝까지 완악하여 회개치 않을 때는 교회의 영적인 건강과 질서를 위하여 출교시킬 필요도 있다. 교회가 시행하는 이러한 권징의 기본적인 목적은 잘못을 범한 지체를 그 모임에서 제거하는데 있지 않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떠나 다시 의로운 삶으로 돌아와서 성도의 교제를 온전히 회복하는데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래도록 인내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향하여 인내와 관용의 정신을 가지고 언제나 형제의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는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교회를 이룩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