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그리스도인과 사회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랑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0~22)
‘사회’(society)는 일반적으로 공동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조직을 이룬 인간 공동체를 말한다. 이 ‘사회’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세상’(헬:코스모스 또는 아이온)에 대한 성경의 이해는 양면으로 나타난다. 즉 성경은 세상(사회)을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대상(고후 4:4,5:19)으로 보는가 하면, 동시에 하나님과 원수(약 4:4, 롬 12:2, 약 1:27)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이해도 양극현상을 보인다. 한 편에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한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세상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을 가졌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전적 부패에 근거하여 어차피 망할 악한 세상과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세상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무관심할수록 오히려 그 사회로부터 더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무의식 중에 사회악에 동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한 무관심은 그 대상과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 악한 세상을 항상 직시하면서 사회의 악에 물들지 않는 성별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지켜가야만 한다. 이러한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악한 세상(사회)을 개혁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날 한국교회 중에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강조의 차이로 사회를 적극적으로 개혁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극단적인 진보적 교회는 복음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주는 ‘사회구원’으로 한정시키고, 인간의 노력(투쟁)에 의한 사회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현세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현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복음의 핵심인 영혼구원과 교회의 본질인 복음전파를 망각하고 복음을 정치적, 사회적 이념으로 변질시켜 교회를 그러한 이념의 실현을 위한 사회기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에 극단적인 보수 교회는 복음을 죄로부터 자유를 가져다주는 ‘개인 구원’에만 한정시키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내세의 천국 실현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도 복음과 사회, 교회와 세상의 분리만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인의 세상 속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무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항상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 우리는 육신, 물질, 현세를 멸시하고 영혼, 정신, 내세만을 강조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반대한다. 즉 개인의 영혼구원만을 중요시하거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고대하면서 개인의 경건한 삶에만 중요시하거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고대하면서 개인의 경건한 삶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음전파만으로 이 악한 세상이 자동적으로 개혁될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젖어있지도 않는다. 물론 우리는 복음전도를 통한 개인구원과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이 사회 개혁의 시작과 중심인 것을 인정한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과 일차적인 과제는 전도와 경건을 통하여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전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많아지면 자연히 사회 변혁이 실현된다고 낙관하지는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개인이지만 그 개인이 사회에 의존하고 영향을 받는 정도가 현대의 유기적 사회일수록 더욱 심대하기 때문에 교회는 개인의 변화와 아울러 마땅히 그 악한 사회구조(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개혁주의 교회가 추구하는 복음은 전 삶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복음으로서 개인구원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따라서 이 세상과 사회에 대한 선지자적 비판의식과 제사정적 책임의식, 특히 희생적인 이웃 사랑의 정신에 기초한 영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노력에 의해 이 땅에 우리 스스로 완전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시대만이라도 보다 의로운 좋은 사회를 이룩하게 되면 그 결과적인 복과 유익을 함께 누릴 것이며, 그렇지못하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그 나라의 실현을 대망하면서 오늘의 사랑과 봉사를 다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