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원성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 이다.


(시90:1-2)




  시간과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영원성(永遠性, eternity)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불변하시다면, 그 어떤 시간도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영향을 끼쳐 하나님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시간의 제한을 초월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영원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에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하나님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거나 잊어버리지도 않으신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이 하나님의 지식을 더하거나 덜하게 할 수도 없다. 언제나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과 사건을 동시적으로 현재로서 생생하게 보시고 다 아신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그 모든 사건들을 여전히 시간 안에서 보시고, 시간 안에서 행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성의 의미를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해보자.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에 있어 언제나 그 어떤 시간의 제한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을 때 물질과 공간이 존재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순간의 연속이라는 의미에서 시간도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처럼 시간 그 자체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한다. 실로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시간의 유일한 절대적 기원이요 원인이 되신다. 그래서 그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또한 시간의 영향을 받음도 없이 존재하신 것이다(시90:1-2, 욥36:26, 계1:8, 4:8, 요5:58).


  하나님은 공간과 그 가운데 있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물질들을 창조하신 비물질적인 영이시기에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공간 속에 있는 물질이 변화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시간”의 제약도 받지 않으신다. 모든 인간은 시간 안에서 존재하기 시작하여 공간 속에서 시간의 영향을 받아 항상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이 있기 전부터 존재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순간의 연속을 경험하시거나 공간 속에서 현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에로의 변화를 겪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원한 현재의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시간의 계기(繼起)를 초월하여 모든 사건을 동시에 현재로서 보신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의식 속에서 항상 현재로서 생생하게 보시고 다 아신다. 신약에서 베드로는 “주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참조; 시90:4)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짧은 세월도 영원히 지속되는 듯이 보일 것이고, 아무리 긴 세월도 마치 방금 일어난 사건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천 년 전의 사건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의식 속에서는 항상 선명한 현재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복잡한 미로(迷路)와 같은 골목길을 따라 줄을 서서 행진하는 무리들의 모든 움직임을 높은 망대에서 동시에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을 항상 동시에 선명하게 현재로서 보시고 아신다(사45:21, 사46:9-10). 정확히 동일한 경험으로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가 장편 대하소설(大河小說)을 다 읽은 후에 그 모든 사건들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우리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사건들을 동시에 생생하게 현재로서 그의 의식 속에서 항상 기억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성과 관련하여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시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행동들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일어난 그대로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관찰하신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기록하기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갈4:4-5) 위함이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의 흐름을 관찰해 오시는 중에 가장 적합한 시간에 이르러서야 즉 “때가 차매”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지만 동시에 시간 안에 내재하셔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과정을 관찰하시고 각 시점에서 자신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다르게 행동하시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행17:30-31). 여기서도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각 시점에서 각각 새롭게 행동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시간의 청조주로서 자신의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신만이 “만세의 왕”(King of the ages)이심을 증명하시는 것이다(딤전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