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큰 스승 이근삼 박사님을 추모하면서
(2007년 1월 29일 고신대에서 고 이근삼 박사님을 추모하며 유가족과 함께 드린 예배 시에 낭독한 추모사 전문)
언제나 맑고 잔잔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사랑하는 이 박사님을 이제 이 땅에서 다시 뵐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지금도 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시다가 또 언젠가 성큼 찾아오셔서 다시 손 내밀어 밝은 미소로 저희들을 반겨주실 것만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이 박사님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바로 이 강당은 우리 학교를 향한 이 박사님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꿈과 소망이 어려 있는 곳이기에, 지난날 그토록 혼신을 다해 열정적으로 외치시던 그 절절한 음성을 지금도 다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선생님을 이 땅에서 다시 뵐 수 없는 한없는 슬픔과 아쉬움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가 이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뵌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산골 합천에 도제직사경회 부흥강사로 오셔서 막연히 목사의 꿈을 키어 오던 저에게 말씀으로 분명한 소명감을 불어 넣어주셨고 특별히 강사실로 불러 좋은 목사가 되도록 축복기도까지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마침내 고신대에 입학하였고 교수님의 각별한 보살핌과 지도를 따라 교수님의 전공인 조직신학 전공 학생으로, 교수님의 뒤를 이은 조직신학 담당 교수로, 총장으로 수고하시는 교수님의 총장사역을 보좌하는 교무위원 등으로 계속하여 30여 년 동안 늘 가까이서 교수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를 수 있는 과분한 사랑을 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을 가진 정말 행복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실 동안에 선생님께 좀 더 큰 사랑과 기쁨을 그리고 더 큰 위로와 보람을 안겨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도 마음 아플 수가 없습니다. 못난 제자이지만 용기를 내어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높은 사랑과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이근삼 박사님은 한국의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선구자이셨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한국에 개혁주의 신학의 씨앗을 심으신 분이시라면 이근삼 박사님은 한국에 정통 개혁주의 신학의 꽃을 피우신 분이십니다. 이 박사님은 일찍이 미국과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하고 귀국하신 이후부터 평생토록 선지자적 열정으로 학교와 교회의 강단에서 역사적 개혁주의 곧 칼빈주의를 가르치시고 외치셨습니다. 이 박사님이 남기신 모든 책과 글 속에는 교회와 시대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가슴으로 쏟아내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열정이 가득 넘쳐나는 것을 봅니다. 그리하여 개혁주의 신학은 오늘 우리 교회의 신앙으로 뿌리내리고 또한 우리 학교의 교육으로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개혁주의 신학을 힘 있게 반포하시던 이 박사님의 시대를 함께 호흡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개혁주의를 듣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리의 큰 축복이요 무한한 긍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근삼 박사님은 한국의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설립자이셨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기독교대학이 단순히 선교적 차원의 교육이념에만 머물고 있었을 때, 이 박사님은 개혁신학의 언약사상과 주권사상에 근거한 개혁주의 문화관을 제시하시면서 언약의 후손들을 양육하는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설립을 주창하셨습니다. 이 박사님은 칼빈학원의 원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신대학 학장, 고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시면서 평생토록 고신대학교를 진정한 기독교대학으로 건설하는 일에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이 박사님의 생애가 바로 기독교대학으로서의 고신대학교의 산 역사였습니다. 이 박사님께서 평생을 바쳐 수고해 오신 기독교대학 건설에 부족하나마 협력하면서 총장님으로 가까이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든 교수들의 자랑스러운 경험이며 너무도 소중한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이처럼 이 박사님이 계셨기에 우리 교회는 참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순정하게 전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박사님이 이끌어 주셨기에 우리 학교는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 올 수 있었습니다.
저가 개인적으로 만난 교수님은 솔직하고 소탈한 성품을 가지셨기에 늘 편한 마음으로 언제든지 찾아가 말씀드리고 의논할 수 있었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의 잘못에 때로는 얼굴을 붉히시고 단호히 책망도하셨지만 서둘러 용서하시고 다독이시며 항상 뒤가 없으신 선생님, 마음에 두신 제자일지라도 ‘내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다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들내지 않으시고 말없이 살피시고 옆에서 도우시며 뒤에서 밀어주시던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가능한 선의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쉽게 양보하시며 자신의 뜻과 달리 결정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시던 선생님, 부당한 일을 당하시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오셔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끝내 비난의 말을 입에 담지 않으시고 항상 은인자중(隱忍自重)하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옛날 가르치던 한 신학생이 기숙사 식권을 살 돈이 없어 집에서 싸온 꽁보리밥 도시락을 숨어 먹으면서 학업을 계속하던 이야기를 교회 앞에 전하시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시던 선생님, 추석 명절에 교회봉사로 고향에 가지 못하고 기숙사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맛있는 사과상자를 보내어 주시던 선생님, 평생을 두고 강사비 등으로 푼푼이 모아 구입하여 친히 연구하시던 손때 묻은 귀중한 수많은 책들을 제자들을 위해 학교 도서관에 모두다 기증해주신 선생님, 세계 어느 곳으로 가시든지 후진양성의 일념으로 남달리 애써 부탁하고 그토록 힘써 호소하여 제자들의 유학의 길을 사방으로 열어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총장 재임 시에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개인적으로 수고한 설교 사례금까지 모두 학교에 기탁하시고 도서관과 기숙사 건축모금을 위해 제자들을 찾아 동분서주하시면서 애타하시던 선생님,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기 위해 항상 이면지를 사용하시던 검약한 생활 속에서도 노후에 자신의 소유로 된 집 한 칸 남기신 것 없이 모든 것 바쳐 헌신하신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사신 선생님, 은퇴하신 후에도 이국땅에서 세계복음화와 기독교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을 설립하시고 그 늙으신 몸이 다 소진되기 까지 남은 마지막 한 줌의 열정까지 다 쏟아부어주심으로 이 땅의 거룩한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선생님이십니다.
그토록 한 평생 교회와 학교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쏟아 부어주신 선생님의 그 큰 사랑과 헌신을 어찌 우리의 짧은 말들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박사님은 우리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실로 우리의 큰 스승이시며 우리의 아름다운 사표가 되십니다. 아직도 학교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운데 늘 마음으로 의지하던 총장님을 잃어버린 우리의 상실감은 너무도 크고 떠나신 그 빈자리가 너무도 넓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모두 이 박사님을 더욱 그리워할 것입니다.
투병 중에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국제전화로 먼 길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는 선생님께 무슨 말로 위로하여 작은 기쁨이라도 안겨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눈물로 감히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총장님의 뜻을 따라 고신대학교를 명문 기독교대학으로 꼭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학술원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계속 널리 확산하겠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귀국하셨을 때 개혁주의 학술원을 방문하셔서 둘러보신 후 그토록 기뻐하시고 간절한 기도로 격려해 주신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우리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질지라도 선생님께서 가신 그 길을 우리도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선생님과 함께하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는 앞길에도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한 평생 동안 우리의 큰 스승 이 박사님과 함께 역사하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이 박사님! 그동안 참 너무도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한 평생 함께해 오신 사모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교수님! 이제는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시 만나 뵈올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명수 강가에서 먼저 가신 요한 칼빈과 박윤선, 홍반식 박사님, 한상동, 주남선, 한명동 목사님을 위시한 모든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 감격의 영원한 찬양을 부르시며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시옵소서!
2007년 1월 29일
큰 사랑을 입은 불초 제자 이 환 봉 (개혁주의 학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