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과 칼빈은 역사와 교회 신학자” | ||||
안인섭 교수, 〈신학지남〉서 국가관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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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교수인 요한네스 디프약이 프랑스에서 어거스틴의 필사본 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이전까지는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문서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26편에 달하는 어거스틴의 편지들과 제롬이 기록한 한 장의 편지였다. 디프약 교수가 발견해 1980년대에 출판된 ‘디프약 편지’들은 특히 황혼기의 어거스틴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이 새로운 편지들이 강조해주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후기 로마 시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목회를 담당하는 전형적인 교회의 신학자이다. 1990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돌보에 의해서 독일에서 일어났다. 독일 마인쯔 시립 도서관에서 필사본들의 목록을 만들고 있던 돌보는 어거스틴의 설교문 26편을 새로 발견했다. 대부분 397년에서 416년 사이에 어거스틴이 했던 이 설교문들도 편찬되어 그의 생생한 초상화를 볼 수 있게 했다. 이 설교문들이 묘사하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로마 제국 말기에 북아프리카 교회를 책임지고 있었던 교회의 지도자였다. 이 두 번의 발견으로 어거스틴의 신학과 목회의 무대가 된 당시의 역사가 연구자들에 의해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안인섭 교수(총회신학원)가 이렇게 새롭게 발견된 어거스틴의 모습과 칼빈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이어, 로마서 13장 1-7절에 나타난 두 인물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생각을 비교,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안 교수는 ‘신학지남’ 2004년 겨울호에 기고한 ‘로마서 13:1-7 해석에 나타난 어거스틴과 칼빈의 교회와 국가 사상’에서, 21세기에 접어든 역동적인 사회 변화 앞에 선 “간혁신학은 이 시대와 교회 앞에서 무엇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던진다. 역사신학자인 안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개혁신학의 근원이 되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 특히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그들의 연구에 초점을 맞춘다. 어거스틴은 당시 세계 그 자체였고 영원한 기독교 제국으로 신뢰받았던 로마가 몰락하는 대 격동기에 교회를 섬긴 인물이었으며, 칼빈은 중세 기독교 천년의 문명이 해체되면서 유럽이 전혀 새로운 근대 사회로 재편되어 가시대의 대 격변기에 신학을 전개했던 인물이라는 데서 안 교수는 오늘 개혁교회가 처한 시대상에 답을 해줄 적절한 인물을 찾은 것이다. 이런 역사신학적 맥락을 깔고 안 교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고전적인 성경의 가르침인 로마서 13장 1∼7절에 대한 두 역사적 인물들의 해석을 비교한다. 안 교수는 먼저 두 사람 모두 “국가의 권력과 위정자의 권위를 절대화하지 않았으며 최고의 권위가 되는 하나님께 귀속시켜 상대화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안 교수는 이어 어거스틴의 경우에는 국가 권력에 높은 권위를 두었다가 점차 하나님 유일 권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비교적 일관성있는 발전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칼빈의 경우에는 악행자에 대한 보다 엄격한 처벌을 점차 강화하는 등 국가의 소임을 점점 강조했다는 “강조점의 차이”를 발견한다. 안 교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어거스틴과 칼빈 두 인물 모두 “교회의 신학자”요 “역사의 신학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