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지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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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지남/ 책 사진 있음 <신학지남>(총신대 출판부 간) 2008년 가을 호가 발간됐다. 이번 가을 호는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세상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성경에 있다는 의도 아래 다양한 신학분야의 글이 실렸다. 이 가운데 '거룩한 실용주의에 대한 실천신학적 고찰'을 제목으로 발표된 황성철 교수(실천신학)의 글을 요약한다. <편집자 주>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아 교회는 불확실성 속에서 '거룩한 실용주의'라는 도구를 붙잡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실용주의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급기야 신학 자체까지도 심지어는 성경 자체까지도 경시한다. 교회 안에 실용주의가 보편화된 것은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영향이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진리에 대한 존재성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인간 지식의 영원한 가치는 실천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프래그머티즘 철학은 미국의 교육철학과 유럽 전통의 실천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참된 것은 마땅히 실천이나 경험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 이 이론은 교회성장주의와 결합되면서 목회자의 사역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여기에 미국에서 자생한 소위 성공의 신학에 힘입어 거룩한 실용주의는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됐다. 성공의 신학은 교회성장신학과 결합됨으로 교회성장주의 지도자들의 사역관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 대중의 욕구인 '펠트 니드'(a felt need) 충족을 교회성장의 핵심으로 여겼다. 교회의 마케팅 기법들도 성공의 신학과 결합되며 교회성장의 중요한 도구들이 되었다. 이러한 거룩한 실용주의는 사실 실천신학과도 다른 면이 있다. 이론과 실천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천신학과 프래그머티즘은 공통되다. 또 프래그머티즘은 보편주의의 억압적 성격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실천신학과 유사하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에서 말하는 실천의 작동 가능성은 인본주의적이지만 실천신학의 그것은 성령론적 신본주의다. 또 실천신학은 이론과 실체 사이에서 성경이 주는 방법론적 계시가 있다고 본다. 즉 실천신학은 자아의 독창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평가하지만 성경적 보편성을 왜곡하면서까지 명목론적 우연성을 강조하는 반플라톤주의는 아니다. 실천신학에서 주목하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가 주장하는 실용 혹은 효용의 신학적 가치이다. 교회 안에 실용주의가 유입되어 교회에 유용하고 효과를 발휘하여 성장에 도움이 되고 목회에 도움이 되더라도 신학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실천신학에서는 성공적 사역은 정당한 사역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실용주의는 한마디로 진리는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이다. 이러한 프래그머티즘이 교회 안에서 중심적인 흐름이 될 때 거룩한 실용주의라는 도구는 두 가지 양상을 필연적으로 낳는다. 첫째 현대 교회가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강단이 보여주어야만 하는 쇼 장소의 효율적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주의 실천신학의 입장에서 거룩한 실용주의에 대해 목회자와 교인들은 끊임없이 신학적 관점에서 그 실천을 평가하고 비평해 나가야 한다. 먼저 강단에 말씀이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 전반의 사역에 말씀이 선포되고 교육되어지며 실천되어질 때 프래그머티즘은 의미를 갖게 된다. 또 교회 정통실천에서 성례 프락시스가 중요하다. 1년 네 번 이내의 성만찬 시행은 정통실천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불어 자극적인 강단의 시각화와 청각화는 적절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예배 시에 대형 스크린에 목회자의 얼굴을 띄어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자극적인 강단의 시각화와 비트음악과 랩 음악의 유입도 경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유효성이 있는 정통실천에 보다 충실하여야 하고 목회자는 하나님이 제시한 성경의 방법론적 지향점들을 충실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