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려지지않은 하나님(The unknown God)
우리 인생의 골수(pith)과 심장(core)이 날마다 그분(the Other) 즉 알려지지 않은 그분과 함께나누는 신비스러운 대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에 직면케 할 것이다.
내가 그 이름 -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 - 을 말할 때(말한다면) 우리의 생각들은 수 백 년 전 아덴(Athens)에서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저 이교도의 도시에 있는 제단과 신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그의 눈이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To the unknow God) 라고 의미심장하게 새겨진 한 제단에 쓸렸던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바울이 그 제단 앞에 섰을 때 그는 그것이 무섭도록 사실적인 방법으로 이교도의 비극(the tragedy of paganism)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한 지고의 존재자(a Higher Being) 즉 한 하나님이 계시며 이 하나님이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근절할 수 없는 직관(ineradicable intuition)이 인간에게는 있다. 인간은 이 눈먼 그리고 눈부신 세계가 마술적인 사건들의 소용돌이로써, 뚫을 수 없는 휘장(impenetrable curtain)을 형성하며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광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인간에게는 이런 볼 수 없는 능력에 스스로 의존하는 애매한 지각이 있다.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찾으려하고 그것에 예배하려고 하는 충동을 느낀다.
바울은 그가 그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제단 앞에 섰을 때 그렇게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중대한 현상을 섬광처럼 알려준다. 이교도에서 우리는 종종 사물들을 잘 안다는 착각(delusion)을 발견하곤 한다. 이교도의 선생들은 우리에게 신들과 마귀들에 관한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그것들의 이름들과 역사들을 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사건들을 만들어 내며, 종종 매우 상세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안다고 상상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안다는(known) 착각 아래에 살고, 그들의 자세는 그와 일치한다.
아아! 그러한 이교도가 저절로 덜 확실하게 될 때, 그 추종자들이 스스로 정직하게 될 때, 실제적인 진실이 주어진 한 순간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를 반성할 때, 그 때 그들의 가슴은 무거워 지고, 의심은 그들의 마음을 뒤덮게 되며, 그리고 그들이 알려 지지 않은 분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들은 얼마나 긴장할 것인가!
그들은 이 모든 옛날 이야기들이 발명품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즉 그들은 인간의 환상의 가지와 잎들을 가지고 알려지지 않은 분의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의 꿈과 사상으로 자신의 무지의 공허를 채움으로서 스스로를 속이는데 열중해 왔다. 그리고 눈가리개(blindfold)가 눈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들은 불쾌한 상처와 쓰디쓴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스스로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을 화려하게 장식한 제단 앞에 빈손으로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직관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직관은 세력을 잃어버렸고 어떤 진실된 만족도 줄 수 없으며 제한적인 하나의 이해력에 불과하다.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이 제단은 최근까지 인간사를 대신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이야기, 즉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교도의 이야기(disillusioned paganism)와 착각의 눈가리개(blindfold of delusion)가 떨어져 나간자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어디서나 인간이 우상과 거짓 신에게 예배한 곳에서는 얼마가지 않아 격렬한 의심들과 자각적인 고민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존재하시는 그 알려지지 않은 분과 여전히 직면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알려지지 않은 분을 숨겨 놓은 그 휘장 앞에 다른 태도로 설 수 있다. 인간은 그를 혼란시키는 몇몇의 수수께끼를 알기위해 찾고 간청하며 밝히려고 시도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수수께끼가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조용히 체념한 채로 묵묵히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가 함께 해야 하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는 그 무서운 사실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거기에서 자신의 어리석은 허영심에 대하여 심한 조롱과 조소로 비웃으며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거기에서 저 휘장 너머에 실제로 어떤 존재가 있는지 의심하면서 그의 마음에 커다란 의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혹 단단하고 비인격적인 운명이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미심쩍어 하면서 깊고 없앨 수 없는 직관은 여전히 그의 참 존재 속에 남아 있다.
모든 것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그 신비로운 알려지지 않는 분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존재하심을 부인할 수 없으며 결코 우리의 사고로 부터 그분을 완전히 추방하거나 쫓아내어 버릴 수 없다.
우리 인생의 골수(pith)과 심장(core)이 날마다 그분(the Other) 즉 알려지지 않은 그분과 함께나누는 신비스러운 대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에 직면케 할 것이다.
내가 그 이름 -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 - 을 말할 때(말한다면) 우리의 생각들은 수 백 년 전 아덴(Athens)에서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저 이교도의 도시에 있는 제단과 신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그의 눈이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To the unknow God) 라고 의미심장하게 새겨진 한 제단에 쓸렸던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바울이 그 제단 앞에 섰을 때 그는 그것이 무섭도록 사실적인 방법으로 이교도의 비극(the tragedy of paganism)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한 지고의 존재자(a Higher Being) 즉 한 하나님이 계시며 이 하나님이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근절할 수 없는 직관(ineradicable intuition)이 인간에게는 있다. 인간은 이 눈먼 그리고 눈부신 세계가 마술적인 사건들의 소용돌이로써, 뚫을 수 없는 휘장(impenetrable curtain)을 형성하며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광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인간에게는 이런 볼 수 없는 능력에 스스로 의존하는 애매한 지각이 있다.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찾으려하고 그것에 예배하려고 하는 충동을 느낀다.
바울은 그가 그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제단 앞에 섰을 때 그렇게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중대한 현상을 섬광처럼 알려준다. 이교도에서 우리는 종종 사물들을 잘 안다는 착각(delusion)을 발견하곤 한다. 이교도의 선생들은 우리에게 신들과 마귀들에 관한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그것들의 이름들과 역사들을 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사건들을 만들어 내며, 종종 매우 상세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안다고 상상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안다는(known) 착각 아래에 살고, 그들의 자세는 그와 일치한다.
아아! 그러한 이교도가 저절로 덜 확실하게 될 때, 그 추종자들이 스스로 정직하게 될 때, 실제적인 진실이 주어진 한 순간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를 반성할 때, 그 때 그들의 가슴은 무거워 지고, 의심은 그들의 마음을 뒤덮게 되며, 그리고 그들이 알려 지지 않은 분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들은 얼마나 긴장할 것인가!
그들은 이 모든 옛날 이야기들이 발명품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즉 그들은 인간의 환상의 가지와 잎들을 가지고 알려지지 않은 분의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의 꿈과 사상으로 자신의 무지의 공허를 채움으로서 스스로를 속이는데 열중해 왔다. 그리고 눈가리개(blindfold)가 눈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들은 불쾌한 상처와 쓰디쓴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스스로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을 화려하게 장식한 제단 앞에 빈손으로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직관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직관은 세력을 잃어버렸고 어떤 진실된 만족도 줄 수 없으며 제한적인 하나의 이해력에 불과하다.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이 제단은 최근까지 인간사를 대신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이야기, 즉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교도의 이야기(disillusioned paganism)와 착각의 눈가리개(blindfold of delusion)가 떨어져 나간자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어디서나 인간이 우상과 거짓 신에게 예배한 곳에서는 얼마가지 않아 격렬한 의심들과 자각적인 고민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존재하시는 그 알려지지 않은 분과 여전히 직면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알려지지 않은 분을 숨겨 놓은 그 휘장 앞에 다른 태도로 설 수 있다. 인간은 그를 혼란시키는 몇몇의 수수께끼를 알기위해 찾고 간청하며 밝히려고 시도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수수께끼가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조용히 체념한 채로 묵묵히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가 함께 해야 하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는 그 무서운 사실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거기에서 자신의 어리석은 허영심에 대하여 심한 조롱과 조소로 비웃으며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거기에서 저 휘장 너머에 실제로 어떤 존재가 있는지 의심하면서 그의 마음에 커다란 의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혹 단단하고 비인격적인 운명이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미심쩍어 하면서 깊고 없앨 수 없는 직관은 여전히 그의 참 존재 속에 남아 있다.
모든 것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그 신비로운 알려지지 않는 분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존재하심을 부인할 수 없으며 결코 우리의 사고로 부터 그분을 완전히 추방하거나 쫓아내어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