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The Unknown God)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할 때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심지어 내가 (내게 있는 것과 동일한 특성과 나약함을 가진) 나의 동료에 관하여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나는 언제든지 그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한 위험에 빠졌던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나의 동료의 말과 행동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지만 내면의 동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물며 우리가 감히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려고 할 때, 우리는 얼마나 큰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겠는가!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쫓아 그의 생각하심(thoughts)을 판단할 수 없으며 그의 의도(motives)를 헤아리거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greatness)과 거룩하심(holiness)을 정당하게 인정하기가 아주 어려우리라는 것을 안다. 또한 내가 그분에 관하여 표현하는 모든 사고에서 그를 내 자신의 생활과 사고의 차원(niveau)에로 끌어내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언어가 하나님의 존재하심(His Being)의 형언할 수 없는 위엄(ineffable majesty)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구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The Unknown God)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왕좌에 둘려져 있는 구름과 어둠에서 부터, 그 영원한 아버지(the Eternal Father)는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내려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만난다. 그것은 여러 세대 동안 그분이 알려지지 않은 분(the Unknown)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을 알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매일의 삶속에서 그리고 행동(walk)과 실천(practice)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보잘것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세계이다. 자연의 압도적인 위대함에서 사람은 어떤 논리적인 증명이나 신중하게 내려진 결론이 없이도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열린 눈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엄청난 놀라움을 바라봄으로 압도되는 모든 사람은, 저항 할 수 없고 의심의 여지없이 그 모든 장관(splendor)을 포함하는 절대자, 절대적인 무엇이 있어야만 함(that there must be SOMETHING, that there must be One)을 스스로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절대자를 자연의 광대함에서 만난다.

 

  자연 그 자체는 헤아릴 수 없는(unfathomable riddle) 수수께끼이다. 그것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태양은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비취며, 비는 의인과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내린다. 자연의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이다.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두 번째 방법은 인도하심(guidance)과 지도하심(direction)의 방법이다. 선한시대와 악한 시대가 있다. 모든 종류의 상황과 환경이 있으며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우리의 삶의 위대한 통치자(great Ruler)는 우리에게 말한다. 너와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리고 민족과 종족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 모든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의 방법에서 만나려는 그 하나님을 나는 우리 삶의 섭리자(the Regent)로 부르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그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은 헤아릴 수 없는 수수께끼이며 우리가 풀 수 없는 의도와 생각이다. 우리 삶의 섭리자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세 번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분의 계시의 방법이다.

 

  신앙생활에서 직면하는 커다란 어려움은 이것이다. 즉 우리는 이 세 가지 방법이 연합하거나 하나로 동화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행성과 별들에 생명을 주시는 자연의 하나님이 바로 근원적 생명의 섭리자이시며 그분이 바로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며 지도하시는 분으로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생명의 섭리자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그의 손안에 가지고 계시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던 그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은 알려진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의 거룩한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을 배워야 한다. 영원한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으며 그의 섭리로 친히 다스리시며 지키시는 그분이 바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배워야 한다.

 

  이 세 방법을 하나로 소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스트레스와 긴장, 초조함을 겪게 된다. 하나님의 비밀이 여기에 놓여 있다. 경건한 말투나 부드러움, 현명한 공식들을 약간 좋게 들음으로서 우리의 방법을 찾아 낼 수는 없다. 하나님에 관해 소름끼치도록 무지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전율한다. 우리의 일그러지고(distorted) 망가진(mangled) 세계를 향한 그분의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가?

 

  내 귀로 듣는 모든 음성들에서, 내가 보는 모든 책에서, 나는 엄청난 비밀을 가지신 분 즉, 생명의 섭리자요 모든 국가의 통치자이신 그분을 만나고 깨닫는다.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지고서도 미지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내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종종, 나는 공포와 무서움에 짓눌린다. 이들의 합류점을 알 수 없고, 그것들이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없으며 그리고 모든 것이 멸망하고 파멸되어질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우리를 초조하게 하며 긴장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율한다!

 

  우리가 미지의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항상 자연의 방법과 인도와 지시의 방법사이에 예리한 묘사(sharp delineation)를 알아 낼 수는 없다. 이들은 종종 함께 있기도 하며, 이 두 방법에서 인간은 미지의 분을 만난다. 이 수수께끼는 많은 걱정거리와 낙담하게 하는 분위기를 일으킨다. 이러한 수수께끼로부터의 스트레스와 긴장, 초조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들 중에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