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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세계 기독교 부흥-논쟁과 해석

Edith L. Blumhofer, Randll Balmer

 

서평: 김영석

 

 

일평생 단 한번만이라도 주의 부흥을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필자로서는 ‘부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를 통해 가장 탁월하고 비범한 주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목회하고 신앙하고 있다.

본서는 1989년 3월 30일과 4월1일에 미국복음주의자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America Evangelicals)의 후원으로 휘튼대학교에서 “근현대 세계 기독교 부흥: 비교 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된 논문들을 이디스 블럼호퍼와 랜달 발머가 편집하여 출판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일어났던 교회의 부흥을 다루고 있고, 지역적으로 대서양 양편에 있던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라틴 아메리카, 캐나다에서 일어난 부흥을 비교적 상세하고 다루고 있는 부흥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라 하겠다. 12명의 저자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부흥을 논하고 있다.

부흥이라고 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와 찰스 그랜디슨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일 것이다. 이들은 부흥을 이해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피니는 “인간의 행위”로 이해한다. 이렇듯 부흥을 이해하는 차이로 인하여 부흥을 정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뚜렷한 부흥의 정의는 없이 부흥의 특징을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첫 번째 부흥의 특징은 쇠락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찰스 피니의 “신앙부흥은 타락을 전제한다”는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글에서 밝히는 두 번째 부흥의 특징은 부흥이 공동체가 공유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개인행위는 집단행위라는 절대적인 힘이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부흥의 두 가지 특징을 전제해 놓고 이 논문들을 편집한 것이다.

먼저, 대서양 양편에서의 부흥에 경건주의가 끼친 영향을 이 책의 편집자인 랜달 발머가 첫 번째 부분의 글을 쓴다. 발머는 경건주의 영향으로는 핵심 규율, 개인 경건 강조, 술과 담배 및 춤 금지, 안식일 준수 같은 것들을 언급한다. 또 오늘날과 같은 복음주의 기도 모임이 18세기 “감리교”모임, 경건주의 비밀집회, 19세기 스칸디나비아인의 베데후스(기도의 집)에서 진행된 기도나 성경공부 모임과 유사함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주의 영향은 부흥이 일어나는 동안 신앙을 갱신하고 확신을 갖게 된 신자의 내면생활이다. 그러나, 경건주의를 이해하는데 장벽이 있음을 저자도 알고 있었다. 먼저는 정의의 문제이고 그 다음은 관련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일반역사학계가 거의 무시해온 것을 경건주의 이해의 장벽으로 들고 있다. 이런 장벽이 있으면서도 저자는 경건주의의 특징으로 만연해 있는 ‘대중적인 불만족을 이용’하는 것과 에큐메니컬의 특징을 주장한다. 그래서 18세기 경건주의는 성격상 대서양 양편을 포괄하는 운동이라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부흥에 있어서의 경건주의의 영향은 ‘에큐메니시티, 도덕성에 대한 정확한 기준, 예전의 형식주의와 신학의 스콜라주의 및 교회의 구조에 대한 의심, 지옥의 고통에 대한 경고와 함께’ 등장하는 “회심의 요구”라고 주장한다.

뒤이은 데비이드 베빙턴은 18세기 잉글랜드의 부흥과 계몽사상의 관련성을 말하면서, 흔히들 말하는 복음주의와 계몽주의의 ‘적대적’임을 거부한다. 저자는 많은 교육을 받은 복음주의자들은 계몽주의 문화에 소속된 일부라고 주장한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체험적인 영적 신앙을 이해하기 하기 위해서 계몽사상을 ‘경험주의적’으로 적용했고, 종말론에 나타나는 천년왕국은 계몽주의의 낙관적 특징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과거 복음주의 부흥 역사가들이 주장한 계몽주의와 부흥은 적대적이 아님을 주장한다. 일례를 들자면, 설교가 ‘경험적’이라는 말은 엄청난 칭찬으로 이해되었다. 또 행복은 개인과 사회의 온전한 목적이 되었다. 그렇기에 복음주의는 18세기 ‘진보적인 문화 환경에 굳게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이로써 베빙턴은 “부흥과 계몽주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제럴드 모런은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부흥 사례를 연구했다. 그는 뉴잉글랜드에서의 부흥은 전문적인 성직자 제도와 대서양 양편에서의 서신 왕래가 18세기 부흥 발생의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 모런 또한 쇠락과 부흥을 연결 고리로 이해하며, 이들 둘을 통한 문화 회복이라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윌리엄 맬룰린의 과거와의 단절이 더욱 극단적인 것이었던 것이 대각성이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성직자 권위의 붕괴, 회중의 타락, 정신의 지진, 전통 권위에 대한 반역과 같은 표현은 대각성 시기 뉴잉글랜드 목회와 교회의 역사적 상황과 일치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모런은 대각성 운동이 자기 갱신을 위한 청교도 체계의 역량을 입증한 것이라 본다.

미국의 옛 남부의 부흥을 연구한 존 볼스는 남북 전쟁 전 남주의 대부흥 시기에 나타난 종교의 특징을 정리한다. 이 시기 남부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평신도의 교회주도, 평이한 대중 언어, 내면적 신앙이 특징이다. 즉 신앙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었다. 부흥의 시기에서 있어서도 최남부에 엄청난 숫자의 이민자가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또 남부의 복음주의 교회 성장은 노예제와의 원칙적인 타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지만, 경건한 흑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노예제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태도 변화가 있었음을 주장한다. 볼스는 남부가 더 감정적이고 더 힘차고 더 열정적이었지 사색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흥이 남부에서 특히 복음주의 교단들의 성공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즉, 부흥은 백인과 흑인의 관계를 교화했고, 백인사회 내에서의 서로 다른 사회계층을 중재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리처드 가워딘은 제2차 대각성 운동에 나타난 미국과 영국의 부흥과 문화를 비교,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초기에 나타난 미국에서의 대중종교의 종교개혁이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과 영국의 부흥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를 원했다. 그는 영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의 발생의 내외부적인 요인을 미국의 그것과 비교해 본 결과, 산업화에 따른 연쇄적인 사회, 경제 변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과 같이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시장혁명의 영향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과 유사함을 지적하면서, 영국과 미국의 대각성을 모두 “새로운 경제 질서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했다. 그 유사함은 찰스 피니가 이끈 미국에서의 대각성이 남북 전쟁의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영국에서의 그것은 천년왕국과 완전주의 사상이라는 튼튼한 사상 조류가 그 동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 대서양 양편에서의 부흥은 진보적인 인도주의와 도덕 개혁의 촉매가 되었다.

프레드릭 헤일은 미국 배경의 부흥에 대한 용어의 편협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부흥운동(1875·1914)”을 연구했다. 편집자가 밝혀주고 있지만, 헤일은 부흥이라는 단어가 다른 나라 배경, 즉 노르웨이 배경에서 사용할 때에는 추가적인 질문들을 유발시키는 “문제가 발생”함을 주장한다. 노르웨이 부흥운동, 특히 루터교 부흥운동은 “평신도 설교가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시골지역적인 특징이 있다. 또 프란손과 같은 강력한 천년왕국 부흥도 빼놓을 수는 없다. 노르웨이에서의 부흥의 특징은 두 지역에서 뚜렷하게 빨랐던 진행 속도이다. 경건주의 전통이 두드러졌던 시골 지역과 이민인구가 증가한 해안도시였다. 그러나, 노르웨이를 위시한 스칸디나비아 부흥의 난점도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신앙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부흥의 결과는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와 해외선교에 관심으로 자원 종교단체의 증가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1875년 이래로 매년 신앙집회가 열리는 도시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레이크컨트리에 위치한 케직. 케직사경회와 미국 복음주의와의 관계를 데이비드 번디가 논하고 있다. 번디는 경건의 흐름과 미국에서의 성결의 가르침과의 상호관계를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여 연구했다. 그는 케직이 많은 논란의 ‘일부 완전주의 특징을 제거한 상태의 미국 웨슬리파/ 성경운동 영성’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결론에서 케직은 일단의 미국 웨슬리/ 성결 전도자들의 노력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데서(ex nihilo) 발전한 단독운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케직 전도자들의 한 일을 마일드메이 대회와 복음주의 연맹에서 기원한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잉글랜드 네트워크임을 강조한다.

이디스 L. 블럼호퍼는 초기 미국의 오순절 신앙을 1906년에 발생한 강력한 샌프란시스코 지진에 대한 사도신앙선교회에 모인 일련의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오순절 신자들의 부흥 이해를 연구했다. 그들은 지진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며 다음 지역을 예언하며 그 전에 구원얻을 부흥이 일어나야함을 강조하며 종말이 근접해 있음을 경고하고 부흥이 진행 중임을 주장했다. “부흥이자 표적으로서의 오순절 신앙”은 ‘늦은비’에 반대하는 복음주의자들이 당한 끔찍한 영적 피폐와 무력함으로 고통당할 불길한 경고였고, 이 운동에 참여한 자들에게는 엄중한 도전이었다. 블럼호퍼는 이 때문에 오순절 신앙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미국 종교 세계에 강렬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대니얼 베이스는 중국을 중심으로 부흥을 연구했다. 미국의 부흥과 연결하면서, 중국에서 선교사 후원 아래서의 부흥과 중국인 지도자가 주도한 부흥을 비교, 검토했다.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중국의 부흥은 중국에서의 기독교 수용 분위기와 관련이 있음을 설명하는 베이스는 중국에서의 부흥이 일어난 주된 요인으로 중국에서 기독교 수용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화한데서 찾는다. 우리 한국성도로서 재밌는 것은 한국에서의 부흥에 대한 보고도 중국에 이시기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리딩 메이와 니 두오솅을 중심으로 중국인 지도자가 주도가 부흥의 새로운 주요 요소로 지적한다. 특히 니 두오솅은 선교와 외국 그리스도인에 대한 적대감이 사역의 특징이었을 정도다. 결론적으로, 베이스는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선교사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는 편리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부흥이었다”고 주장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부흥을 연구한 에버릿 A. 윌슨은 복음주의자들이 외국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영적 재건을 시작하는 역할을 맡았음을 인식했다고 설명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부흥의 사회지향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에드윈 헤럴 2세는 빌리 그래함에서 로벗슨까지 미국 부흥운동의 주요 부흥사들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 부흥 신앙이 남부화되고, 남부 신앙이 미국화된 역사적 상황을 보여 준다.

끝으로 조지 A. 롤릭은 캐나다 부흥과 부흥사에 대한 관심으로 18세기, 19세기 캐나다 대서양 지역 부흥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수없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의 부흥을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확인했지만, 그 연구의 난관을 피력한다. 20세기 말 캐나다에서는 기독교를 아예 배어 버리겠다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를 가장 중요한 종교운동으로 표현한 롤릭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속 운동이 오히려 복음주의 전통을 살리는데 기여했음을 말한다. 롤릭은 자신의 연구를 위해 기반을 제공한 여러 이론들을 설명하고 지지하는 글을 인용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은 18세기로부터 20세기에 일어난 부흥운동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인데 이들은 휘튼대학에서 열렸던 학술대회 논문을 묶은 것이다. 18세기 미국 중부 경건주의, 청교도 뉴잉글랜드, 19세기 남북전쟁 전 옛남부, 제2차 대각성운동, 케직사경회, 20세기 오순절신앙, 현대 부흥사들이 미국 부흥운동과 복음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과 상호 관련성을 연구한 12편의 논문들이다.

중국부흥을 소개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영미권에 나타난 부흥만을 소개함으로 전세계적인 부흥의 역사를 기술하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다. 특히 한국의 평양대부흥이 구주대륙의 이슈가 되었음에도 다루지 않음에 아쉬움을 표한다.

또, 부흥이란 용어를 정의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 말하면서도 섣불리 한 방향의 정의를 사용하고 있음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부흥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해한 조나단 에드워즈를 뒤로하고, 찰스 그랜디슨 피니의 의견대로 논자들은 부흥을 철저히 “인간의 행위”로 이해하고 논지를 이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만 치부함으로써, 쇠락을 전제한 부흥이라 주장하며 부흥을 하나의 운동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200여년 간의 부흥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현대 부흥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서 복음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청교도 신앙과 경건주의, 복음주의 신앙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으로 사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