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송영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8)

 

주기도문의 이 마지막 송영(doxology, 영광송) 부분이 성경의 많은 고대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아 아마 후에 제자들이 예배용으로 덧붙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예수님께서 이 송영이 없는 주기도문을 주셨을지라도 제자들이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과 성경기자들의 관습(대상 9:11, 딤후 4:18)처럼 하나님에 대한 적절한 찬양으로 주기도문을 끝내기를 분명히 원하였을 것이다. 기도와 찬양은 마치 새의 두 날개와도 같아서 우리의 모든 간구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도록 해 준다.

송영의 첫 단어인 “대개” 라는 접속사는 “왜냐하면” 또는 “때문에”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말로써 앞의 모든 간구들과 송영의 상호 관련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모든 간구를 마친 다음에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뜨거운 확신과 감사의 근거를 담은 찬양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 소리 높여 호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가지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면 앞의 모든 간구들은 무의미하다. 살아계신 오직 한분, 그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위대하신 능력에 대한 확신 속에서 우리의 기도는 진실로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나라와 권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실제적인 지배와 통치를 말해 준다(시 103:19). 우리의 심령, 가정, 교회, 국가, 즉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계11:15) 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언제나 확신 속에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주님의 “권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우리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목적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놀라운 권세이다(시 62:11, 요 15:5, 엡 1:19~20).

오늘도 우리는 시험과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죽음까지도 정복 할 수 있는 힘을 그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이 마지막 송영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출구를 제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늘 우리의 모든 간구와 소원의 유일한 근거이심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활동이므로 하나님이 나타나사 역사하시는 곳에는 그의 영광이 언제나 밝히 드러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힘으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반드시 나타나는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또한 이 영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출현이며(요1:4), 그 주님의 인격과 생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결정체였다.

주님은 오늘도 권능으로 교회 중에서 자신의 그 영광을 나타내시면서 (시 102:16, 출 15:6) 오직 자신만이 기도의 응답자라는 영광을 소유하고 계신다. 따하서 이 마지막 송영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는 선지자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하사 그 영광을 온 세상에 높이 선포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기도이다.

시대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 기도를 통하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확대되어 마침내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아멘”은 “그렇게 되어지이다”, “그렇게 이루어지이다”는 뜻으로서 확실한 응답을 바라는 소원의 뜻이 담겨 있다. 또한 단순한 소원 이 상의 “꼭 그렇게 됩니다” 라는 확신을 나타내기도 한다(고후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