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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로더의 「신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발달: 영의 논리」

             

                                    

                                                                                                           (서평자: 조성국(고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

 

 

   미국 장로교 신학교육기관으로 잘 알려진 프린스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독교교육전공 교수였던 제임스 로더(James E(dwin) Loder, 1931-2001)의 주요 저서중 하나인 「영의 논리: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발달」(1998)이 백석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유명복 교수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교육학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 외 영어문헌독서에 익숙하지 않아 직접 읽지 못했던 우리나라 기독교교육 및 실천신학 학도, 그리고 목회자들의 답답함이 있어왔는데, 이 책의 번역은 그러한 독자들의 인간이해 그리고 인간발달이해 증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제임스 로더는 이 책 외에도 「변형의 순간: 확신경험이해」, 「기사의 진행: 신학과 과학에서의 영의 관계적 논리」, 「실천신학에서의 구속적 변형」, 「종교병리학과 기독교신앙」등의 저서들을 출간하였다. 이 책들의 제목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처럼 제임스 로더는 인간의 종교적 회심과 변화에 특별한 학문적 관심을 가졌고, 그 종교심리 현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되 심리학과의 통합적 해명방법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20세기 중반의 기독교교육학자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신정통주의 신학과 심층심리학의 통합,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기독교교육학자들이 심층심리학에서 더하여 수용한 발달심리학과의 통합적 해명시도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유명복 교수는 한국에서 영어를, 그리고 미국에서 신학과 교육심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한 학자로서, 이 책의 전문적인 내용 배경을 이해하면서 번역하는 일에 적임자였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자의 신학 및 교육심리학 공부가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져 그의 번역어휘는 한글로의 의미소통에 큰 문제는 없지만 몇몇 부분에서 한국의 심리학과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대신 다른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해당분야의 이해를 가진 한국의 신학도와 심리학도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더러 있고, 또 학술적인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시도하다보니 이 분야의 학문배경을 가진 독자도 읽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본 서평자는 이 책 자체의 성격이 번역을 어려운 작업으로 만들었다는 동정적 이해를 갖는다. 왜냐하면 관찰 가능한 대상에 대한 실증주의적 학문의 명료함과 논리성에 비할 때, 이 책은 인간의 영혼과 심리 현상에 대한 신학적, 심리학적 해명이기 때문에 언어적 기술의 명료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통신학과 실존주의의 통합을 시도한 신정통주의 신학, 거기에 추가적으로 일반학문인 애매성을 포함하는 심층심리학, 그리고 발달심리학, 상담심리학의 다학문적 통합시도는 각 개별학문 안에서 소통해 온 전문용어와 논리들의 복잡한 통합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대중적인 문헌이 아니라 해당학문들의 배경을 잘 알아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전문연구서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이 책의 내용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수고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이건, 그 수고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인간의 영혼과 심리와 발달에 관련된 문제 이해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도록 한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통하여 제임스 로더는 그보다 앞서 다른 두 학자가 쓴 두 권의 책에서 출발하여 그 저자들과 방법 및 관심사를 공유하면서도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논의를 더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첫 번째의 책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의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이다. 판넨베르그와 로더의 책 제목들 간의 차이는 판넨베르그가 “인간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반면, 로더는 “인간발달”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로더는 판넨베르그처럼 인문과학과의 상관성 논의에서 신학적 접근을 시도하되 판넨베르그의 신학적 혹은 철학적 인간본성에 대한 논의가 신학적 함의를 충분히 깊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 더 발전적으로 논하기를 원했고, 또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인 판넨베르그와 달리 기독교심리학과 기독교교육학자인 로더는 인간을 구체적인 발달 과정으로부터 전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하였다. 인간의 본성을 이처럼 발달심리이론으로부터 파악하려한 것은 두 번째 저자의 책과 연결된다.

   두 번째의 책은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의 단계: 인간발달의 심리학과 의미탐구」이다. 파울러의 책 제목처럼 로더의 책은 “콜론(:)”으로 책의 제목을 부연설명하고 있다. 파울러의 “신앙”이라는 표현대신 로더는 “영”을, 그리고 파울러의 “단계”라는 표현대신 로더는 “논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두 책 사이에 차이가 있다. 로더는 파울러가 심리학의 편에 서서 인간의 심리적 발달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역동성을 신앙으로 파악한 것이 인간 본성이해에 불충분하다고 보고 신학의 편에 서서 신앙의 주체인 “영”을 드러내어 표현하고 싶어 하였다. 그리고 파울러가 인간발달 단계의 심리적 특성과 발전, 그리고 상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로더는 인간발달을 규명하되 전체로서의 발달에 드러나는 일관성 있는 법칙성, 곧 논리라는 특성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로더는 파울러가 인간발달을 기술함에 있어 좀 부족하다고 보았던 신학적 특성을 더 발전시키려 했다.

  이상에서 해명한 바와 같이 로더의 책 제목은 위의 두 책 제목의 기초에서 발전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다. 로더의 이러한 의도를 고려한다면 번역서가 취한 제목배열인 「신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발달: 영의 논리」대신, 로더의 원 의도처럼 「영의 논리: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발달」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배열은 번역자의 의도와 달리 종종 출판사 편집자와 북 디자이너의 판단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을 돕기 위해 책 제목에 표현된 용어의 함의를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로더가 말하는 “신학적 관점”이란 신정통주의 신학을 말한다. 특히 키에르케고르, 바르트, 토렌스, 판넨베르그, 에벨링의 통찰은 그의 신학적 입장의 기초가 된다. 죄렌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경험, 곧 불안과 부조리 경험과 변형은 이 책의 전체 구조의 기초가 된다. 이 특성은 인간 영혼의 본성적 특성으로 간주되었다.

   제임스 로더는 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신학의 특수성, 그리고 기독론적 특성을 수용하되, 그것을 인간발달논의의 방법론으로도 삼는다. 그래서 그에게 신학적 관점이라는 표현은 그가 사용하는 학문적 방법론의 신학적 정당성의 근거를 표현하는 말이다. 신학적 인간학을 위해 판넨베르그는 신학과 철학과 사회역사의 논의가 역사적 발전에 따라 수렴되고 있다는 근거에서 신학과 인문과학의 통합적 논의 방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바르트가 신학과 인문자연과학 사이의 가정을 서로 종합시키는 것을 거부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토렌스는 바르트의 거부의 내면적 의도를 무조건적인 부정으로 보지 않았고 바르트로부터 긍정적인 함의를 발전시켜 신학과 인문자연과학의 변증법적 통합연구방법론을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인문자연과학의 지식이 신학적 관점으로부터의 변형을 통해 신학적 논의와 통합적으로 인간문제를 해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로더는 이러한 토렌스의 입장을 수용하였다.

 

   로더는 신학과 인문자연과학의 통합연구 및 해명모델을, 바르트가 칼케돈 신조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구별성 및 통일성을 설명한 부분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바르트의 설명으로부터 로더는 그리스도에게 있어 신성과 인성은 각각 독립적으로 동시에 관계적으로, 그래서 개별적 구별성과 신비한 통일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성이 인성에 우선한다는 사실이 이러한 통합연구모델의 기초 원리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제임스 로더는 신정통주의 학문방법론에 따라 물리학, 신경학과 같은 자연과학적 지식, 특히 심층심리학 및 발달심리학, 상담심리학을 포함하여 인간심리에 대한 최근의 심리학 연구들을 인간 영혼 해명에 필요한 자료로 간주하여 광범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로더는 인문자연과학이 한편으로 인간 영혼을 해명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지식이 활용 가능한 것은 “창조주 영”이 자연과 인간 전체에 일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 영혼도, 그 모두에 공통되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어의 문법처럼, 사고의 논리처럼, 인간 영혼과 그 영혼의 발달에도 법칙성이라는 의미의 논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칼케돈 모델의 그리스도의 인성부분이며 학문에 있어 아래로부터의 관점이다.

   동시에 로더는 칼케돈 모델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처럼, 인간 영혼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개별적이면서도 가장 심층적인,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인간 본성을 해명한다고 본다. 그래서 신학은 학문에 있어 위로부터의 관점이다. 칼케돈 모델에서 신성이 인성에 우선적인 것이므로, 신학이 인문자연과학과 나란히 있다고 가정되어 그 자료들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변증법적인 방법에 따라 인문과학의 자료들은 신학적 관점에서 비평받아 변형되어야 수용될 수 있다. 그래서 로더는 프로이드, 융, 에릭슨을 비롯한 정신분석학파 및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연구들을 철저하게 비평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여 그 연구결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로더는 신성이 인성에 우선하는 원리에 따라, 인문자연과학이 논의하지 않는 인간 영혼의 실체가 인간학 및 인간발달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영혼의 주도성에 따라 인문자연과학적 해명이 통합적으로 살로 붙여져 인간에 대한 전인적 모습이 규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인간발달에 대한 인문자연과학의 한계 안에서만 인간의 영혼이 해명되는 것이 아니라 변형을 위한 성령님의 개입과 계시가 허용되고, 주도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기초에서 제임스 로더는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발달의 핵심 및 전체 양상의 특성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려 했다. 그에 따르면 창조주 영의 일하심 안에서 형성된 인간 영혼은, 창조주 영을 향한 근원적인 관계를 느끼면서 개별적 영으로 발달하여 성숙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 간다. 로더는 그 과정에서 거부와 투쟁의 단계들을 거쳐 해방, 곧 하나님과의 연합적 관계를 형성해가는 결말의 방향에 맞추어, 종교적 심리의 기원에 대한 심리학적 해명들, 프로이드의 심리역동성과 발달에 대한 해명, 에릭슨의 정서적 발달단계, 피아제의 인지적 발달단계, 콜버그의 도덕적 판단의 발달단계, 파울러의 신앙발달단계, 레빈슨의 생애발달단계 등의 연구결과들을 활용하면서 전체의 살을 붙였다.

 

   인간발달 전체는 인간 영혼의 외침, 거부, 해방, 변형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인간의 영혼 안에 역사하는 창조주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인간 영혼의 심층에 있는 거부와 부정과 회의와 고독으로부터의 투쟁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변화, 해방시켜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와 능력은 모든 단계에서 확인되며, 모든 단계에서 다양한 방해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면서 인간 영혼을 변형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역사는 개인 영혼의 실존적 역사에 통합되어 반복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러한 전체 논지를 통하여 제임스 로더는 영의 논리가 인간본성과 발달의 중심이 된다고 주장하고 영적 인간을 본질에서 발달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책의 공헌과 문제점을 각각 2가지씩만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은 인간 해명에서 그 동안 인간의 영혼, 종교,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님, 변형 등의 표현들을 비과학적인 것들로 간주하여 제외하거나 부정적으로 해석하였고, 부분적으로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실체성이 없는 원형 정도로만 고려하였다. 심리학의 주류는 인간의 생물-심리적인 퍼스날리티, 그리고 자연적인 발달원리와 특성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신학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기독교적 독특성과 구속적 원리 등은 학문적 인간이해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학문적 상황에서 제임스 파울러에 이어 제임스 로더는, 심리학의 논의 안에, 혹은 심리학 전공분야의 해박한 이해를 기초로, 종교와 신학의 부분을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 통찰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의 발달의 주도적인 힘을 제대로 해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에서 종교를 고려하기를 거부해온 일반 심리학자들에게, 접근 자체가 심리학 안에서 논의한 것이어서 종교와 영혼을 학문적 논의에서 무조건 거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 인간 발달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얻고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목회와 교육과 상담에서 사람들을 돕는 사역자들에게, 기독교적 관점에서 심리학 연구결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지침서가 된다. 로더는 신학적 관점에서 일반 심리학 이론들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부분에서 상세하게 논의함으로써 이러한 이해를 증진시켰다. 제임스 파울러와 더불어 제임스 로더의 이 책은 가장 최근의, 그리고 구체적인, 그리고 과학적이면서 다학문적인 상세한 기독교 인간발달심리 이론서 및 교과서이다. 게다가 인간의 종교적 본성, 본성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 등이 인간의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목회와 교육과 상담에서 기독교적 사역의 의의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인문자연과학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변혁하여 수용하려는 그의 모델은 기독교세계관에 비추어볼 때 적절한 방향으로 간주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존재적 특성인 인성과 신성에 대한 칼케돈 신조 내용을, 인간존재 내지 학문 방법론의 모델로 간주한 것은 로더가 자신의 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끌어온 신학적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신성과 인성의 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 곧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에 있어 인간과 동일시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칼케돈 신조를 비롯한 정통신조들이 말하는 바는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모두가 신비한 통일성 가운데 있는 분이시지만, 인간은 몸과 영혼의 인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인간은 존재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신성과 인성의 칼케돈 모델을 인간이해에 적용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 상당한 수용성을 보이는 영성의 논의 배경에서, 로더가 인간의 중심을 “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통적 고백문서들과 개혁주의 신조들은 비록 인간에 대하여 영이라는 표현을 아주 드물게 사용했으나 의도적으로 절제하였고 그 대신 “영혼”이라는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은 신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영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영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영으로서 동일한 본성, 적어도 그와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께 반응하고 그 분과 교제하는 “영적” 존재일 뿐이며, 신성이 아닌 인성에 포함되는 인간 “영혼”의 존재이다. 인간 영혼은 인성에 속한 것이어서 실제로 심리학자들이 서술한 신체-심리적 특성으로 구체화되어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본 서평자는 제임스 로더와 달리 “영”이라는 표현대신 “영혼”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로더의 생각처럼 칼케돈 신조에 고백된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 특성이 인간 학문방법론의 모델로 간주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이 신조에 원래 의도된 것인지 의문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절대 필요한 조건이었으나, 그것을 인간의 학문방법 모델로 간주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충분한 대가 지불 그리고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래서 우리의 개인적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인에 있어서 인간 영혼, 그리고 학문에 있어 신학적 관점 자체가 신성과 동일시될 수는 없는 일이다. 넷째, 심리학 분야에서 시도한 제임스 로더의 수고로운 기독교 변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경과 교리에 기초한 교의학적 인간론을 신학과 인문학을 통합하는 신학적 인간학으로 대체하였던 판넨베르그처럼, 비록 판넨베르그보다 인문자연과학에 더 비평적임에도 불구하고, 로더는 인간발달의 종합적 서술에서 세속적인 인문자연과학 연구결과들을 잠정적인 것 이상으로 여전히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교의학적 인간론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제가 다른 이질적인 분야들, 곧 신학적 서술과 인문자연과학적 서술을 단순한 이해로 엮어내는 일에서 비록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부자연스러움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시도에 따르는 부득이한 결과이다. 꿈과 환상과 개인 사례의 다소 애매한 것들,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을 억지로 맞추어 엮어가는 과정에서도 무리한 것들이 발견된다.

   그래서 그가 인용하거나 활용한 심리학적 자료의 연구자들이 그의 이러한 설명에 동의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예상하지 않았지만 인간 본질과 구원에 대한 명료한 신학적 고백과 설명들이 이러한 시도에서 오히려 불명료해지는 부작용도 피하기 어렵다. 그가 긍정적으로 수용한 인문자연과학의 지식들은 변형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그 완전한 변형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문자연과학의 연구결과들은 단지 잠정적인 한계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은 유사성도 있지만 그 보다는 차별성이 더 크다. 발달단계이론에서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종합할 때 자연적인 것이 초자연적인 것에 대등하게 높여지고, 초월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에로 낮추어지는 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동시에 역설적이지만 그가 초자연적인 것을 보편화함으로써 인간발달이론이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명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 발달단계에서 비기독교인의 발달단계가 거꾸로 소외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학과 인문자연과학의 진술이 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동일한 것을 말하는 뫼비우스의 띠로 가정되는 것은 지나친 낙관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