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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커르의 “칼빈의 생애와 신학”에 대한 서평

 

 

장호광(웨신대, 조직신학)

 

 

    본서의 저자인 빌렘 판 엇 스페이커르 교수는 네델란드 아펠도른(Apeldoorn)에 소재한 기독개혁교회 신학대학교(de theologische universiteit van 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에서 25년간 교회사 교수로 봉사하였으며 세계칼빈학회 상임위원으로 봉사한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1970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마틴 부처의 직분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칼빈뿐만 아니라 마르틴 루터와 마르틴 부처의 사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성령론과 교회론에 전문가이다.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칼빈이 걸어온 삶의 길과 그의 주요 신학적 사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칼빈에 관한 전기와 신학사상을 보다 구체적이며 깊이 알고자 하기 전, 먼저 개략적인 면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충분한 만족을 제공해 줄 것이다. 성격이 급한 나머지 짧은 시간에 칼빈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 한권이면 어느 정도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는 말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시대와 무관하지 않으며 역사적 진공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학자가 신학을 의미 있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요소들이 자신의 신학하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 금언은 칼빈에게 적용된다. 신학과 목회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보여준 칼빈의 활동성이 자기 시대에서 정상의 수준에 있었다는 사실 또한 본서에 잘 소개되어 있다. 바로 그런 점이 지금까지 칼빈의 생애와 신학사상을 다룬 많은 책이 한국어로 소개되었지만 이 책만이 가진 장점일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을 들자면, 칼빈의 생애와 신학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과, 그의 사역에 대한 역사적 논증을 매우 평이하면서도 간결한 언어와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서의 저자는 칼빈 신학의 핵심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로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그런 믿음과 삶을 함께 지속적으로 엮어 매는 원뿌리에 해당되며, 그 말씀이 죽은 말씀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살아 역동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사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이며 또한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칼빈의 그런 신학사상과 그 신학사상이 단순히 책상에 앉아 머리에서만 나오는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연루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칼빈의 생애와 신학사상 그리고 영향을 함께 엮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제 본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면, 본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째, 칼빈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16세기 초의 프랑스)과 둘째, 칼빈의 생애(칼빈의 초기 발전, 칼빈의 회심, 기독교강요, 제네바, 스트라스부르크,) 셋째, 칼빈 신학의 주요사상,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칼빈의 영향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그 중에서도 사회 ,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상황을 알아야한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소개가 1장 “칼빈의 생애와 신학의 시대적 배경”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장은 먼저 “정치적 상황”을 다룸으로 시작하여 “왕위와 교회”, “종교적 인문주의, 복음적 운동”이라는 소주제하에 칼빈의 주옥같은 신학사상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에 해당되는 내용을 잘 간추려 소개해 준다. 무엇보다 칼빈은 프랑수아 1세의 인문주의적이며 종교적인 힘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칼빈의 대표적 작품인 『기독교 강요』 서문의 ‘헌사’에 드러나 있다. 칼빈의 생애와 신학의 시대적 배경이 그의 전 신학사상의 이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칼빈의 전기(傳記)를 년도 별로 소개해주는데, 이 부분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은 2장에서 9장까지 이르는데, 먼저 2장은 “칼빈의 초기 발전”이라는 주제로 칼빈의 출생과정과 자라온 배경 그리고 교육과정을 소개한다. 특히 칼빈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기억력과 지적 재능과 헌신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뛰어난 자로 소개된다. 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고대문헌과 헬라 문학, 법학 그리고 고전어 배우는데 전력을 다한 나머지 칼빈이 평생 동안 많은 질병으로 고통 속에 살다가 급기야 죽음을 맞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수세기가 지나 오늘날까지도 그의 영향력이 시들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칼빈의 삶과 일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만, 이 종교개혁가 배후에 있는 인간의 모습, 그 중에서도 그의 회심에 대해서는 루터와는 달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바로 칼빈의 발언이 그의 영적인 전기를 어떻게 탐구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3장에서 저자는 칼빈의 회심을 주로 그의 『시편주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회심을 자신의 소명과 연결해서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음을 지적한다. 칼빈은 자신의 회심을 그의 고유한 신학적 특징 중 하나인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와 연결된 소명으로 이해한다. 이런 회심의 여정이 “예기치 못한 회심”, “파리에서의 사건”과 “중용의 길”이라는 주제로 다루어진다.

   또한 저자는 칼빈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기독교 강요』초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을 역사적 사건과 관련시켜 소개해 준다. 즉 스위스 개혁의 격동기 속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도시 바젤을 배경으로 펼쳐진 사건들과 관련시켜 『기독교 강요』초판을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강요』초판을 발간하게 된 목적을 초보적 원리를 통해 종교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 칼빈은 종교개혁 2세대에 속한 인물로서 루터와 쯔빙글리, 부처, 외콜람파디우스 외 다른 많은 학자들의 신학적 사상을 자신의 신학사상에 받아들여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킨 뛰어난 신학자로 소개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모든 거룩한 교리의 요체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칼빈에게 이러한 명제가 단순히 출발점이 아니라 모든 교리 어디서나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실존적 실체로서 역할을 한다. 이런 『기독교 강요』초판이 나오게 된 배경을 “바젤”, “『기독교 강요』초판”, “재현과 변형”, “교회와 성례” 그리고 “페라라에서 보낸 편지”라는 소주제로 구분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다.

 

    다음 5장에서 9장까지는 칼빈의 종교개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던 도시, 제네바와 스트라스부르크를 중심으로 시대별로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먼저 5장은 “제네바, 1536-1538” 제목 하에, 제네바 개혁의 초기 역사는 사보이 공작의 통치에서 이 도시를 해방시켰던 정치적 사건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다루는 주제 “배경”, 종교적인 일들은 정치적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는 내용을 담은 주제 “동맹의 중요성”, 제네바 종교개혁의 중대한 결정에 있어서 정치적 요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담은 주제 “종교개혁의 돌파구”, 제네바에서 본격적인 개혁을 향한 활동을 펼치려 했을 때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정돈되지 않았던 초기 제네바의 “혼란”의 상태, 이런 혼란의 상태에서 제네바 교회의 예배, 그 중에서도 성찬을 중심으로 교회의 전체적 구조를 조직하고 교회 찬송의 중요성을 밝히며 무엇보다 교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교회법과 교리교육서”, 재세례파의 등장으로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에 찬 물을 끼얹게 한 장본인인 “피에르 카롤리”사건 그리고 제네바 ‘소의회’의 결정에 복종을 거부하여 칼빈을 비롯한 다른 설교자들을 추방하게 만든 내용을 담은 주제 “첨예한 대립”은 1536년부터 1538년까지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종교개혁 활동사를 그리고 있다.

   마침내 칼빈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프랑스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크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칼빈이 제네바에서 이루지 못했던 종교개혁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계속 이어나가는 활약상을 6장 “스트라스부르크, 1538-1541”에서 보여준다. 이곳에서 피난민을 대상으로 목회 일에 전념하게 되는 칼빈의 목회자 상이 그려진다. 제네바와는 달리 이곳의 종교개혁은 어느 정도 자기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바탕을 배경으로 칼빈은 교회 예식서의 초안을 작성하였고 성찬식과 교회치리를 보다 강화시켜 나갔다. 그는 목회에 관련된 일 뿐만 아니라 성경 주석작업에도 매진하여 후에 『로마서 주석』을 비롯한 여러 주석서와 『기독교 강요』의 증보판이 나오게 되는 발판이 이곳에서 마련된다. 그런 활약상이 “배경”, “부처와 교구감독들”, “프랑스 피난민들 가운데서의 설교와 목회”, “주석 작업”, “1539년 『기독교 강요』”, “성찬 논고”, “하게나우, 보름스 그리고 레겐스부르크”, “결혼”, “제네바와의 연관”이라는 주제 하에서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리고 제네바에서 교회의 하나 됨의 간절한 소망과 정치적 변화라는 두 가지 이유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제네바로 다시 복귀하게 되는 과정이 “제네바 복귀”라는 주제로 다루어진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활동을 마친 후 제네바로 다시 돌아온 칼빈은 파렐과 함께 교회 치리의 수립과 유지를 위해 제네바는 교구별로 나누어져야 하며 올바른 성찬식과 출교 행사권의 회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보다 조직화되는 과정이 7장 “제네바, 1541-1546:조직화”라는 제목에서 잘 묘사된다. 그런 목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목사와 장로, 교사 그리고 집사 직분의 당위성을 다루는 주제 “네 가지 직분”, 교회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교리의 일치인데 이 조건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목회자들이 매주 금요일 회합을 가진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주제 “목사회합”,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치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직분을 소개한 주제 “장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정부와 당회 사이의 갈등관계를 다루고 있는 주제 “시정부와 당회 사이의 긴장”, 교회의 하나 됨은 경건한 교리의 일치에 있다는 점과 교회의 기도와 찬송의 중요성을 다룬 주제 “교리교육과 예배론”, 교회교리를 어겼을 경우 징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주제 “교리와 징계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로 칼빈과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오 사이의 갈등관계를 다룬 주제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오”가 이 장에서 다루어진다.

칼빈의 복귀가 종교개혁으로 인해 발생한 제네바 시의 모든 갈등을 해소시키지는 않았다. 즉 칼빈의 신학적 사상이 모두에게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의 교리는 거짓된 것이며 설교 또한 건건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봇몰처럼 일어났으며, 이 문제로 급기야 시의회가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교회 징계에 대해 반기를 든 “자유파”가 등장하여 이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에 더하여 칼빈 전체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예정론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되었는데,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요 폭군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세르베투스가 정통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칼빈이 나서서 그런 세르베투스를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사악한 이단자로 판결하여 결국에는 화형대에서 죽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런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제네바 시의 개혁적 상황이 시의회가 칼빈의 교리와 신학사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며, 이로 인해 제네바의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8장 “제네바, 1546-1555:위기”라는 제목 하에서 “피에르 아모”, “교회 권위에 대한 도전”, “세례명”, “긴장과 위협”, “히예로니무스 볼섹”, “장 트롤리예”, “미카엘 세르베투스”, “세르베투스 판결과 칼빈의 역할”, “교회의 고유한 권한에 관한 투쟁” 그리고 “자유파의 축출”이라는 소주제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제네바 시의 종교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영역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는 칼빈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러나 페랭과 그의 추종자들이 사라진 후 그 도시는 마침내 칼빈이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이상적 모델로 변모해 갔다. 그런 칼빈의 꿈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이 9장 “제네바, 1555-1564: 강화”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칼빈은 교회법으로 교회의 질서를 세워나가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법에도 영향을 끼쳤다. 즉 결혼은 중요한 미덕으로 고무되었고, 간통과 매춘은 엄하게 처벌되었고, 의복과 음식의 사치는 제한되었고, 축하 행사는 검소한 방식으로만 치루어야 함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영역까지도 개혁의 손을 뻗쳤다. 심지어 고리대금업을 반대하였지만, 무역과 산업이 증진할 수 있는 합당한 이자율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경제적 영역까지도 영향력을 끼쳤다. 이뿐 아니라 제네바의 교육을 선도하는 아카데미의 설립을 통해 종교개혁운동이 스위스 제네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전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이런 구체적 상황들이 “베른과의 관계”, “도시에 미친 칼빈의 영향”, “아카데미”, “『기독교 강요』1559년”, “중심에 있는 교회”, “천주교회와의 관계”, “츠빙글리파와 루터파와의 관계: 성찬 논쟁”, “교회일치에 대한 칼빈의 견해” 그리고 “마지막 생애”라는 주제로 상세히 다루어진다.

    칼빈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결혼 후 그의 아내 이델레테 반 부런(Idelette van Buren)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금방 죽게 되었고 그의 아내 역시 칼빈과 결혼한 지 겨우 8년 만에 죽었다. 칼빈도 극히 허약한 체질 탓에 갖은 질병으로 늘 심하게 앓아야 했고 그 결과 끊임없이 진통과 피로에 시달렸다. 게다가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공격들, 계속되는 인신공격, 끊일 줄 모르는 과로,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연루관계, 그리고 무거운 향수의 짐 등이 거기에 더해졌다. 칼빈은 인간이 감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 즉 아픔, 패배감, 공포, 의심, 희망, 염려, 두려움, 그리고 혼란스러움, 요컨대 인간을 내면에서 이리저리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이 책에 기술되어있다. 칼빈의 그런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 그의 신학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바로 그런 그의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칼빈 신학의 핵심적 사상을 소개하기 전에 그의 생애를 먼저 다루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10장부터 “칼빈 신학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칼빈 신학의 핵심사상이 소개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칼빈이 의도한 신학은 소수 사람들, 즉 목회자와 신학자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즉 평신도들 역시 알아야 할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의 신학의 주요사상을 간추려 소개한다. 이것은 신학은 목회자나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오늘 한국교회, 특히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칼빈 신학의 핵심적 사상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관계, 은혜론, 선택론, 기독론과 교회론이 “스콜라 신학에 대한 혐오”, “에라스무스, 루터와 부처”, “다른 접근, 하지만 동일한 메시지”, “말씀과 성령”, “은혜”, “선택”, “그리스도와의 교제로서의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과 기독교 세계”라는 소주제로 이 장에서 다루어진다. 특히 이 장에서 저자는 칼빈의 선택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함을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그의 선택론은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선택에 관해 말하면서 자기 앞에 있는 피난민들을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선택의 표지는 압박과 비방과 추방, 요컨대 선택의 표지는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선택의 수단이지만 또 선택의 열매이기도 하다.

마지막 11장은 “칼빈의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삶이 오롯이 묻어난 신학과 종교개혁운동은 단순히 스위스 제네바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나라를 지나 거의 전 세계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모델로서의 제네바 교회”, “서신교환”, “헌사들”, “프랑스 신앙고백서”, “교회법”, “네델란드”, “스코틀랜드”, “영국”, “팔츠”, “하이델베르크” 그리고 “칼빈주의: 다양성 가운데 일치”라는 소주제로 구분하여 다룬다.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John Calvin)은 높은 합리성과 논리성을 주창한 철학가나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머리나 입으로만 자신의 신학사상을 펼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시대의 격랑 속에서 나온 삶의 사상이다. 그의 신학사상에는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려져 있으며 인간의 고통과 애환을 드러내며 살아 움직이는, 즉 역동적인 삶이 표현되어 있다. 바로 그런 그의 신학적 사상이 본서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점을 찾으려면 칼빈의 시대로 되돌아가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발생하는 문제점은 수세기가 흘렀지만 칼빈 당시의 시대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사실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