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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영혼

 

정 병 갑 교수

고신대 생명과학부

 

 

과학과 종교는 어떠한 관계일까? 과학과 신앙은 또 어떠한 관계일까? 이 두 가지 질문은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Nancy E. Peardey 와 Charls B. Thaxron이 집필하고 이신열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을 처음 접하고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독자의 심금을 울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과학과 신앙에 대한 접근 보다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접근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가슴이 먼저 답답해져 왔고 이어서 머리가 점점 답답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Nancy R. Peardey는 대학에서 철학과 음악을 공부한 후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수학하였고 성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세계관-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완전한 진리』는 현대문화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서술하여 “세계관-자연주의(진화론)-복음주의-생활에서의 적용”으로 이어지는 신앙적 접근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공동 저자인 Charles B. Taxton은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물리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로서 그의 저서 「The Mystery of Life's Origin」에서 진화론 - 특히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인 화학 진화설-이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하므로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주장한 창조론자이다. 특히 이 책은 세계관적 접근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을 통하여 물리, 화학, 생물 등의 순수과학 전공자가 과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읽기에는 부담이 되지만 과학철학 및 세계관적 접근을 하려는 분들이 읽으면 자연과학적 지식의 습득은 물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핑계하지 못할 결론을 분명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인 이신열 교수도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자연과학도 출신으로 조직신학을 전공한 자연과학적 신학자(?)인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인 과학적 발견 및 과학사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이 책을 번역했을 것이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당시의 과학자들이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밝혀진 내용들을 수정하는 수리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6일 동안 완료한 창조사역을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려는 것은 신학자이건 자연과학자이건 간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자연과학자는 자연의 법칙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짐작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기에 이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에 나타난 창조주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들마저도 발표된 지 불과 150여년 밖에 안 된 진화론적 세계관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기독교인 과학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처음 등장 할 때부터 “과학적”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등장했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적이고 성경의 기록은 비과학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성경의 모든 기록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에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있고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발견되었으며 어떻게 이론으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하여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세밀한 고찰을 통하여 과학세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수학과 철학, 물리학과 천문학, 생물학과 화학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독자들을 압도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물리학, 현대 분자생물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내용이 기술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 DNA 연구결과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내용이 발표되고 있지만, 1994년에 출판된 책으로서는 이러한 내용을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한계라고 생각되지만 2009년에 번역된 책으로서 “역자 주” 형태로 라도 최근의 정보를 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DNA 정보가 불규칙하다는 내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저술 당시의 지식으로는 불규칙하다고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눈으로 창조주의 능력을 보려는 전형적인 인본주의적 접근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누가 DNA 정보를 불규칙 하다고 하는가? 건물의 설계도가 불규칙적으로 그려졌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생명체는 창조주가 설계한 것이고, 설계되었다는 증거는 생명의 설계도 DNA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DNA에 담겨진 생명의 설계 정보는 인간의 시각으로 본다면 불규칙적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규칙적으로 설계되었음이 분명하고 이러한 내용들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전술한 대로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집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술과정이 자료의 근거인 저자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인문학, 사회과학 및 철학 서적이 내용중심으로 서술되지 않고 저자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자연과학 서적은 결코 저자 중심으로 서술되지 않고 내용중심으로 서술된다. 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저자가 제시한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계를 넘지 못해서 자연과학적 소양을 지닌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불편한 책이다.

 

한편으로는 과학과 종교와의 역사적 관계에 국한하여 서술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과학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래의 과학은 기독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과학과 신앙은 어떻게 성경적으로 조화되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방향이 제시되었더라면 훨씬 더 좋은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많은 독자들의 탐독을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