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불가완해성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명기 29:29)

   종교개혁자 칼빈(Calvin)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항상 말을 더듬어신다고 하였다. 부모가 유아기 자녀들과 대화할 때 “어린아이의 말투”(baby talk)를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시기 위해 인간의 수준에 적응하여 말씀하시는 소위 “눈 높이 대화”를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質的 差異)에서 기인한다. 즉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무한한 하나님의 본질을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불가완해성”(不可完解性, incomprehensibility)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또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해를 완전 초월해 계시다면, 우리는 헬라인들처럼 “알지 못하는 신”(행17:23)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의 불가완해성은 신의 ‘가지성’(可知性, knowability)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하고 확언해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불가완해성이 의미하는 바는 다만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부분적이고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께서 성경에 자신을 계시하신 만큼 그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참되고 실제적이며 유효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관련된 하나님의 모든 진리 지식이 충분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선물인 신앙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온전히 참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말한 바대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본질 그 전부를 꿰뚫어 다 파악할 수는 없다.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한 유한한 인간지식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계시하시지 아니한 신비가 있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도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깊이가 남아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존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지식에 있어서도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다 파악할 수 없는 계시의 비밀스러운 그 깊이를 다 아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식의 정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한 대상(진리 명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의도하신 그 지식을 하나님 자신께서 이해하시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우리에게 충분히 전하실 수는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장미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창조주의 지식과 피조물의 지식 사이에는 분명한 질적 차이(불연속성)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장미이다”는 명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동일한 종류의 이해(연속성)를 할 수는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계시하신 구원의 진리를 인간에게 의도하신 그대로 참되고 명료한 것으로 전달하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핑계할 길이 없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11:7, 참조: 시139:6, 145:3, 롬11:33)고 말씀하는 동시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참조: 요일5:20, 렘9:23-24, 히8:11, 요일2:13)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과 영생의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빛과 충만한 영광중에 거하시는 그 하나님을 인간이 완해(完解)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불가완해성은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의 심원한 의식을 항상 우리에게 심어주며, 우리를 깊은 묵상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으로 나아가게 한다(시139: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