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이환봉 교수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교는 칭의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 뿐 아니라 인간의 협력에 의한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칭의와 성화는 실질적으로 동일시되었다. 그들은 성경 원문의 헬라어“의롭게하다”(dikaio-o, 롬3:28)를 법정적 의미를 지닌“의롭다고 선언하다”로 번역하지 않고 자신들의 불가타 라틴어 성경에서“의롭게 만들다”(justificare)로 잘못 번역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칭의를 단번에 이루어지는 법정에서의 선언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 편의 선한 행위와 성화의 노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즉 인간 자신을 의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1521년 독일어 신약성경을 번역하였을 때, 로마서 3:28을 사도 바울의 일관된 주장을 따라“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번역하였다. 루터는 인간의 모든 계략과 지옥의 문에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칭의”(justification)의 신조는“우리가 행위 없이도 그리스도에 대한 오직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다고 선언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믿음이 그 적절한 직무를 수행할 때, 믿음은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무엇도 바라보지 아니한다. 믿음은 이같이 말하지 아니한다. 즉 내가 무엇을 행하였는가? 내가 어떤 죄를 범하였는가? 내가 무슨 공로를 세웠는가? 믿음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행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 무슨 공로를 세우셨는가?”이는 우리의 구원적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 후 1530년 6월 25일 루터의 추종자 멜랑흐톤이 작성한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Augsburg Confession)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공로와 행위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는 다는 칭의의 교리(Article IV: Of Justification)가 구체적으로 고백되었다. 칼빈 역시 칭의론에서“의의 전가”를 주장하면서“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값없는 의를 얻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오시안더(Osiander)가“dikaio-o”를 “의롭게 만들다”로 설명한 것을 비판하였다.
개혁자들이 이해한 칭의는 개인의 영적 도덕적 진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오직 믿음으로”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완벽한 거룩을 옷 입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전가(imputation, 전달되어 소유됨)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실제로 의롭게 되기 이전에, 그리고 아직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오직 믿음을 수단으로 단번에 자신의 의를 우리의 의로 선언하시고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오직 믿음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칭의의 수단이다. 칭의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이며, 믿음도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주권적 은혜의 선물(엡2:8-10, 빌1:29)이기에 인간의 믿음이 칭의를 받을 수 있는 근거와 공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개혁자들은“오직 믿음으로”의 원리를 통해 율법폐기론자들처럼 행위는 모두 필요 없다거나 행위는 아무렇게 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인간의 선행과 성화의 노력이 구원(칭의)의 근거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한 것이다. 선행과 성화는 칭의의 열매와 표시이지 결코 구원의 전제와 수단이 아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실질적 원리로 불리는“오직 믿음으로”의 원리는 구원적 신앙의 조건(수단)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성령의 선물인 신앙은 신학의 내적원리로써 외적원리인 말씀과 더불어 개혁신학을 말씀과 성령 즉 주객관의 균형을 가진 신학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의 도덕주의와 율법주의에로의 회귀를 막아주는 원리이기도 하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이“로마 카톨릭과 복음주의 연대”(Roman Catholics and Evangelical Together, 1994년 3월 29일)라는 공동 성명에서“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진리에 동의한다”고 함께 선언하였다. 이 성명서에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팩커(J. I. Packer), 빌브라이트(Bill Bright) 등의 유수한 복음주의자들이 함께 서명하였다. 그러나 유의해야할 점은“오직”(Sola)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로마 카톨릭은 트랜트 종교회의(1547년)가 결정한 바대로“만약 누군가 칭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그 어떤 다른 협력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 그에게는 저주가 있을 지어다”라는 교리적 선언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오늘날 로마교는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의 교리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성례준수와 선한 행위가 구원(칭의)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추가되어 있는 한에서의 동의를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세례를 통해 주어진 성령 하나님의 주입된 의를 사용하여 스스로 자신을 더욱 의롭게 만들어 주고 자신의 죄를 갚을 수 있는 사랑과 자비를 행하는 인간 죄인의 공로가 협력할 때에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신인협력에 의한 구원의 교리를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은 루터교 세계연맹(1999년)과 서울 감리교 세계대회(2006년)를 통해서 자신들의 칭의 교리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었다. 이제 로마 카톨릭은 개신교의“마지노 라인”(최후 방어선)과도 같은 개혁주의(칼빈주의)를 주적(main enemy)으로 규정하고 특히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구원에 대한 5대 교리를 웹사이트 등을 통해 집중 공격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와의 연대를 통한 협공에 진력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오직 믿음으로”의 교리를 참된 복음의 핵심적인 본질로 생각하여“교회가 일어서고 또는 넘어지는 신앙조항”(articulus cadentis et stantis ecclesiae)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이신칭의의 교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자는 사실상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오직 믿음으로”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재확인한다. 칭의를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유일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믿는다. 칭의가 우리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그 어떤 인간적 공로에나 우리 안에 주입된 그리스도의 의와 그 어떤 인간적 제도와 의식에 근거한다는 것을 단호히 부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용납 받을 수 있다는 그 어떤 근거(종교적 헌신과 윤리적 삶)도 부정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선포하는 것이지 구원의 하나님께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