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칼빈 출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곳곳에서 칼빈과 관련된 행사와 모임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행사와 모임을 통해 칼빈 정신을 올바로
살피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
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개혁이 절실하면서도, 또 그에 대한 공감의 목소리가 높
아져 가면서도 정작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말
씀에 근거하지 않은 편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로 말미
암아 한국교회는 더욱 어지러운 형편 가운데 처하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
라고 판단된다.

대다수 장로교회들과 신학 교수들이 참여하는 ‘칼빈탄생500주년기념사업
회’는 그 사업의 일환으로 칼빈의 흉상을 만들어 세우고, 서울에 있는 한
도로의 이름을 ‘칼빈로’로 지명하고, 칼빈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의
일들을 통해 칼빈을 기념하겠다고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을 진행하는 것과 칼빈의 정신을 바르게 계승하는 것과
는 별개의 문제이다. 칼빈이 한평생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통
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개혁하고 섬긴 본을 한국 교회에 적용함에 있어 과
연 그러한 행사들이 유익을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1907년 평양 부흥 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한국교회
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회개하고 나면 무언가 크게 바뀌고 한국교회에 다시
부흥이 찾아 올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잠잠해지고 시들어버린 일을 아
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칼빈 출생 500주년을 맞이했다며 크
게 한번 행사라도 치러보자는 식이라면 이 역시 교회를 말씀으로 개혁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아직도 교회로서의 본질, 하나님을 경배하는 공예배, 그
공예배의 중심인 강단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신앙의 상속에는 그다
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도 각종 절기를 지
키고, 그 절기를 행사화 하고, 각종 기념일을 만들어 지키는 데에 모든 시간
과 힘과 노력을 쏟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서 신자들은 한국교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체험하며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인가, 이 말씀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가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정작 말씀을 맡은 직분자인 목사들과 신학 교수들은 올바른 말씀 선
포를 통한 교회의 개혁과 상속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니 안타깝기 그
지 없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그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역사가운데 신앙의 선배들이 말씀을 잘 살펴서 올
바른 신앙의 도리들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 훌륭한 유산들
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회들이 그것을 하찮게 취급하
고 있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장로교회와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개혁파 교회는 신앙고백서를
살피고 가르치는 데 상당히 철저히 하고 있는 편이다. 그들은 역사적, 전통
적 신앙고백서를 가르치고 배우는 데 더 많은 열심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계시된 말씀과 잘 조화되는지를 살피는 일에 있어서도 또한 매우 중
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장로교회가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
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칼빈을 칭송하고 칼빈을 높이며 칼빈을 쉴 새 없이 이야
기하지만 정작 칼빈이 말한 바 올바른 신앙의 도리와 교회의 참된 모습에 대
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칼빈을 ‘기념’하기는 하지만 칼빈을 ‘계승’하
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이제는 칼빈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한국 장로교회를 이야기할 때이다. 칼
빈의 후예로 자처하면서도 말씀으로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한국 장로교회의
모습, 은혜의 방편을 하찮게 취급하고 엉뚱한 종교 행사와 각종 프로그램으
로 신앙의 도리를 대체하고 있는 한국 장로교회를 올바로 진단하고 평가해
야 할 때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자신의 모습도 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면서 칼빈을 평가하고
자 하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이제 말씀의 거울 앞에 스스로를 겸손히 비추
어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로교회의 목사와 신학자들이 장로교회가 고백
하는 역사적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이를 통해 건전한 신앙의 상
속이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와 우리의 자녀, 다음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
씀을 경외하는 본이 될 것이며 우리와 한국 장로교회를 살리는 방편이 될 것
이다.

기독교개혁신보 2009-06-24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