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눅 22:22)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과 자유를 동시에 강조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자시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을 따라서 만물과 인간의 행동을 시종일관 주관하시고 통제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엡 3:9~11, 롬 9:19~20, 엡 1:5,11, 히 6:17). 또 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결정한 선택과 행동에 대하여 각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롬 2:1~16, 3:9~23, 계 20:11~13등).

이와 같이 성경이 증거하는 이 명백한 두 가지의 사실은 인간적인 논리에 의하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분명한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둘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실재(實在, reality)이다.

 

흔히 사람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은 실재하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것으로 쉽게 단정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논리라는 것은 모든 실재하는 사실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논리 와 이론은 우리의 풍부한 일상경험의 매우 부족한 대변자일 뿐이요, 어떤 때는 생생한 실재의 경험을 제한하고 걸러내고 심지어 부정해 버리기도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에는 인간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광대한 실재의 영역들로 가득차 있으며, 실상 우리의 일상생활도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실재의 사실들에 기초하여 살아간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명백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빛은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시에 미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신비로운 사실이 각기 확실한 증거에 기초하여 공히 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실재의 사실이 각각 그 자체로는 참이지만 그것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성경의 진리에도 부인할 수 없는(물론 하나님은 완벽한 상호조화 속에서 파악하고 계시지만)신비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행동할 때 자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유의지‘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원인으로 규정하지 이전 단계이기 때문에 사실상 원인을 따지는 논리적(과학적) 사고방식(“…이면 …이다” 또는 “…일 때 …이다”)으로 분석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예정과 관련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책임)는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다가 결국 그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부정함으로서 상호관계에 논리적 모순을 말끔하게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예정(주권)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거나, 또는 인간의 책임을 폐기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예정을 단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논리적 요구일 뿐이지 성격의 가르침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자유)의 문제를 인간의 논리적 사고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명백한 계시와 우리 신앙의 체험적 실재에 근거하여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은 둘 다 성경에 명백히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 각기 그 성경적 근거를 말해 주는 많은 성경 구절이 있다. 심지어 성경의 한 본문 안에서도 두 사실을 나란히 증거하기도 한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대로 가거니와(예정) 그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책임)”(눅 22:22).

그리고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예정)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책임)”(행 2:23)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사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보장하는 진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으면서도 역시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인 것이다.

 

(2)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은 둘 다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체험적 실재이다. 우리도 인간관계에서 종종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없이 실제적으로 상대편의 행동을 지도할 수 있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간의 자유를 강압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뜻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의 자신에 대한 예언(예정)을 그 당시에 자신이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또는 자신이 이루어갈 수밖에 없는 강압을 느끼면서)을 전혀 의식조차하지 않았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거짓된 욕망을 따라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한 일을 행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 가룟 유다의 그 모든 배신행위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실은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으니 죄가 있도다”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후회하며 결국 자살할 것이다(베드로의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자유)은 동시에 성립 가능한 부인할 수 없는 체험적 실재이다.

그것을 어떻게 인간적 논리로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두 관계를 인간의 논리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사실상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엡 3:9~11), 유한이 무한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함은 합리적인 결론이다(롬 11:33).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비약이며 비합리적인 주장일 뿐이다.

인간의 머리로 다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계시이며, 부인할 수 없는 체험적 실재이다. 따라서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부인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동시에 비합리적이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적인 뜻과 계획 속에 이루어진다는 예정교리는 실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무한한 안정감과 용기의 근원이 되며(롬 8:28), 우리가 받은 구원의 확실성을 확고히 보상해 주는 영원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