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구원의 확신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벧후 1:10)

 

 

 “구원은 구원받는 것 그 이상이다.” 구원열차는 천국행 열차만을 의미치 않고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여행의 일정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라고 외쳤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의 기쁨과 구원 안에 허락된 모든 은사를 누리는 풍성한 삶을 계속 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기쁨은 상실하고 또 다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본다. 그들은 실로 다윗처럼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구원의 은혜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을 날로 새롭고 더욱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은 이미 그 구원과 더불어 모든 것을 선물로 허락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꺼번에 발견되거나 단번에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 이 영생과 함께 너무도 놀라운 풍성한 것이 준비되어 있다. 성령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에게 보이실 것을 골라 우리의 즐거움이 계속되게 하시고 점점 더 깊고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아직 완전히 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연약하여 의심과 불안으로 흔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기르도록 권면하고 있다.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만일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의심이 엄습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의심 자체가 곧 구원받지 못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우리 형제들의 참소자”(계 12:10)로서 항상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도적질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도 이와 같이 기도해야 한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소서”(시 51:12)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이러한 기도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그 구원의 확신은 때를 따라 늘 새로워져야 함을 보여 준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은 처음부터 성경을 통해 우리로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하셨고 또한 계속 그 방법을 사용하신다. 칼빈도 “구원의 확신에 이르려면 우리는 말씀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확신의 근거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에서 찾아야 한다.

 

(3) 우리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증거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에 이 증거에만 근거하여 단정함은 불완전할 수도 있다.(고전 4:3) 그러나 요한일서에 나타난 그 구원의 은혜의 증거들을 살펴보아 알 수 있다.

1)죄에 대한 나의 태도: 하나님의 자녀는 계속 반복하여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에 거할 수 없다.(요일 3:9) 죄를 벗고자 애쓰며 죄와 싸우며 근심하는 것은 곧 내가 중생하여 죄의 쾌락으로부터 벗어난 증거이다.

2)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나의 믿음: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 5:1)라고 한 것처럼 참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3)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나의 믿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일 5:1)라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며 진정 사랑하는 것이 곧 구원의 표징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자신의 아버지 되심을 의심하여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연약한 자일지라도 열심히 구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확신과 즐거움을 속히 회복시키기를 언제나 기뻐하신다.